1882년 임오군란때 청나라 군대가 명동에 주둔했고, 3년뒤 청나라 공관이 들어섰다. 광복후 같은자리에 대만 대사관, 1992년 중국 대사관이 자리잡았고 일대에도 중국 학교와 상점이 들어서며 중국인거리가 생겼다.
위풍 당당한 중국 대사관
초라한 과거 중화민국 대사관 건물
1945년~1990년까지 명동을 지켰던 서점. " 서점이 없으면 명동은 암동된다" 는 사장 김희봉의 신념에 따라 오랜세월
명동 문화의 파수꾼 역할을 했다.
1969년 문을 연 통기타 쌀롱
1970년대 청년문화의 산실, 송창식, 조영남,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등 쟁쟁한 포크 가수들이 오비스캐빈에서
이름을 알렸다.
의열단 소속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수탈 횡포에 저항하기 위해 폭탄을 던졌던 자리. 불행히 폭탄은 불발했고 나석주는 일본 경찰과의 총격전중 자결하였다.
조선시대 음악과 무용을 담당했던 관청
<오성과 한음> 의 오성 이항복의 10대손 이회영의 집터. 일제 강점당시 조선 최고의 갑부였으나 부귀영화를 멀리하고 만주로 떠나면서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내놓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귀감이 되는 가문.
1884년 갑신정변의 현장. 1915년 설립된 르네상스식 건축물. 광복후 서울 중앙 우체국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크게 파손되었다. 2007년 현재의 포스트타워가 들어서고 1년뒤 우체국 박물관이 개관했다.
조선시대의 명례방. 일제강점기에는 명치정이라 불렸던 명동, 광복후 일본식 동명을 개정하여 지금의 명동으로 불림.
1898년 조선 최조의 순교자였던 김범우의 집터에 설립. 한반도에 처음 세워진 대규모 고딕 교회당
이후 한국 천구죠의 종심지로서 역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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