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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고흐와 고갱 (펌)

나쁜 미술가들은 모방을 하고,
좋은 미술가들은 훔쳐 온다.
( Bad artists copy, Good artists steal.)
파블로 피카소의 말이다.
이 말처럼 피카소는 평생 남의 그림을
아주 능숙하게 훔쳐다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카피만 하는 나쁜작가에서 훔쳐오는 좋은 작가는
고흐의 예술역정이기도 하다.
고흐는 피카소 말대로 나쁜 미술작가로
남의 것을 37세의 짧은 생애중 34살까지 모방만한다.
그에겐 미술작가로선 아무런 재능도 없었다.
천재라고 알려진 것은 터무니 없는 과장일 뿐..
처음 목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예비목회자가 되어,
잠시 사역하다, 런던의 화랑 점원으로 일하면서
미술가가 되기를 희망해, 미술대학에 지원헸으나
낙방한다.
그는 처음에 밀레의 그림을 카피하며,
미술을 시작한다.
그의 카피작업은 밀레 뿐만 아니라, 드라크르와,
고전 그림, 친구인 점묘파 화가 쇠라 등등
주변 작가들의 그림을 복제했다.
그러는 와중에 1886년 동생인 테오에 덕에
그는 파리로 이주하면서, 인상파 화가들가 교류를
갖게 된다.
피카소 말대로 카피하는 나쁜 작가에서
훔쳐오는 좋은 작가로 변신하게 된 것은 1888년 이후,
결정적인 계기는 악연으로 끝나게 된,
폴 고갱과의 인연이었다.
형의 작업이 미숙하고, 카피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동생 테오는 고갱에게 사정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작업실을 무료로 주고, 작품을 사줄테니
형 옆에서 작업을 하면 어떻겠느냐?’
당시 고갱은 증권업을 하던 것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출발할 때이고,
그나마 작품이 인기를 끌기 시작해,
동생 테오가 형의 작업에 도움이 될까해
고갱에게 제안한 것이다.
고갱의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반 사람들은 고흐가 대단히 가난한 처지에서
힘들게 작업을 했다고 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감부터 모든 재료와 작업실 임대료까지
당시 화상이었던 동생 테흐가 모두 제공해 해주어
아주 걱정없이 편하게 작업을 했다.
1888년, 테흐가 임대해준 고흐의 네 칸 집,
그 중 하나인 작업실로 옮긴 고갱과의 몇 달 간의
짧은 동거는 고흐의 작업에 큰 변화를 준다.
그의 대부분 대표작은 1888년부터
자살로 삶을 마감한 1890년까지다.
이 때 그는 카피작가에서 ‘훔쳐오는 좋은 작가’로
변신을 하게 된다.
초창기 바르비종파 대가인 밀레 그림을 카피하다,
다시 드라크르와 여러 작가 작품을 기웃거리며
복제수준의 형편없는 작업을하다,
드디어 훔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데,
1. 고흐가 홈쳐 온 기법은 일본 부세판화의 대담한 선과
목판의 칼자국이 프린트 되어 나오는 강력한 선,
2, 고갱의 대담한 구도와 칼라,
3, 쇠라의 점묘파 스타일로 점을 찍는 기법 등을
자신의 작품에 효과적으로 응용하게 된다.
그는 천재도 재능이 특별난 화가도 아니었다.
가난하게 작업한 화가도 아니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동생의 재정적 후원으로
비교적 편하게 작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고흐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노력해 자신의 무재능을
극복한 작가였을 뿐…
대중들의 고흐에 대한 판타지와 신비화,
신화화가 만든 것이 고흐의 천재성이었고,
고흐를 피해를 당한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고갱을 악한으로 만든 것이….
 

사진 1. 고갱과 고흐,

그림 2, 고갱이 그린 고흐의 초상

 

 
 
 

그림 3, 4, 5 고흐의 초기그림으로 밀레를 추종하며 그린 작업들

그림 6.7.8 밀레를 모방해서 그린 그림들
 
그림 9.10,11, 드라크르와 등등 작가를 카피한 작업
 

 

그림 12,13, 일본의 판화를 카피한 작업
 
그림 14,15 복제에서 벗어나 카피로 습득한 것을 응용해
자신만의 개성화 작품이 그려진 작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