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독일 영화로 과거 독일 통일전 동독 시절의 감청요원 이야기다. 직무상 감청업무를 수행하는 스파이가 감청 대상자와 동일시되는
혼란을 경험하면서 도와주게 된다는 내용이다. 제목이 기억 안나는 어느 프랑스작품에서도 내가 꿈속의 나인지 실재로 살아있는 나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참 동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 주인공은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절벽에서 떨어지는데 죽지 않는다. 결국 죽을 수 없는 자신은 그저 다른이의 꿈속에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나는 정말 나 자신인가? 내가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인가 아님 저절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나인가? 마음이 나인가 아님 내가 마음인가?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결국 에피소드로 끝날 단지 꿈속의 허상일 뿐은 아닐까? 사람이라면 제법 다 한가지씩 하는 일장 춘몽의 한 단편일뿐 아닐까?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큰 매력이다. 특히 첨단 과학이 동원된 시각효과까지 첨가되면 최상의 조건으로 인체 오감이 최대한 자극된다. 영화 <토탈 리콜>에서와 같이 여행을 그저 기계를 이용하여 상상속에서 다녀오는 미래가 곧 오리라 믿는다. 비인간적이긴 하지만 얼마나 실용적이고 건설적이며 또한 정치적인가?
좋은 꿈 꾸고 난 다음의 쾌감을 자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은 노벨 평화상감 아닐까?
혹시 이것도 게임 중독 만큼 폐인이 될까?
그보다는 덜 자극적이지만 오래 여운이 남게하는 것이 책이다.
특히 다큐멘터리 형식의 것은 내 취향에 맞아 매우 선호한다. 요즘은 유방암 전문의사로 환자를 치료하는 대학 교수님의 블로그를 보는데
볼때마다 참 마음이 답답하다. 환자 자신이나 가족들의 고통, 병과 그분들 사이에서 고뇌하는 의료진의 애잔함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내용이 마음을 쓰리게 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자꾸 보게 되는 것은 왜일까? 그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도 누구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아름답다 아무리 소리쳐도 죽음을 앞에둔 사람만큼 그 진실을 깨닳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화상 입은 상처에 소금 뿌리는 듯한 남의 고통을 알고 싶지도 않으면서 관심을 둘 수록 상대적인 나의 행복을 깨우치게 되니 참 나도 이기적이다.
그들에게는 현실이 꿈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니면 그냥 여러 현실을 겪는 것처럼 꿈을 계속 꿀 수 있게 해준다면 어떨까? 과거 자신이 재벌이라 착각하면서 같은 정신병동 환자들에게 수첩 종이를 찢어 주면서 행복해 하는 환자의 병을 정신과 의사는 기어히 고친다. 결국
그 환자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살한다. 정신과 의사의 치료는 옳은것일까?
그냥 행복을 위해서만 모든 치료 목표가 고정된다면?
현재 의사로서의 내 위치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앞으로의 미래가 어떨지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사실 특별한 것은 없을 인생일 것 같아
이제는 궁굼하지도 않다. 곧 50이 될 이나이에 의사로서 뭘 다시 새롭게 해보겠는가? 이제는 눈 초점이 안맞아 봉합실 뽑기도 불편하다.
지금의 있는 그 자체로의 나를 토대로 내 가족과 이웃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마무리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래도 꿈은 좀더 꿔보고 싶다. 혹시 제 2의 인생이 또 내게 있을지 모르지 않나?
남의 삶을 보면서 나를 느끼고 나의 현실을 승화시키는 꿈을 계속 꾸면서 조금은 뒷꿈치를 들고 고개 쳐들어 저 멀리 무지개 끝을
쳐다보면서 살고 싶다.
아직은 그래도 될 나이가 아닐까? 50이면 60보다 젊고 70이면 80보다 젊으니까 말이다.
고통속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기원한다.
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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