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지혜로 깊어지려면 순수한 집중을 통해 생의 밀도를 의식해야한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을 응시함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해 지각해야한다. ( 법정 )
내가 좋아하는 글이면서 나를 선의 세계로 인도한 글이다.
내겐 이런 참선(앉아서 하는)이나 행선 (걸으면서 하는)의 척도를 알 수 있는 남다른 동반자가 있다.
바로 이명 즉 귀의 시끄러운 잡음이다.
내가 산악부 써클하면서 대학1학년 겨울에 빙벽 등반 연습을 하다가 떨어지며서 머리와 귀의 손상으로
응급실 간후 지금까지 우측 귀에서 이명과 같이 살고 있다.
한참 ENT치료를 했는데 결국 후유증으로 그렇게 됐는데 선배들은 그냥 그렇게 살라고 쉽게 말하지만 내겐 참 힘든 나날들이었다.
공부에 방해됨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에 항상 잡음이 들리니 (주전자 물끓어 김빠지는 고음 )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강의시간에도, 데이트 할 때도, 잠자기 전에도, 화장실의 적막속에서도 항상 따라다니는 이명은 큰 고통이었다. 순간의 실수로 더이상 고요한 적막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없게된다는 자체가 너무나 황당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즐기는 고요함, 새벽 풀벌레소리, 산속의 잔잔한 바람 물결 소리, 깊은밤 별쏟아지는 짙은 밤공기속의 절대적인 침묵등 아무것도 내겐 더 이상 사치가 되어버렸다.
산에 다니는 것을 싫어하시던 부모님께 말씀도 못드리고 간신히 용돈 모아
유명하다는 종로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좋다는 약 수없이 먹었다. 그때 약국마다 만난 사람들이 다 약사가 아니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다. 그러다 보니 가만히 사색하는 성격은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야하는 적극성(?)으로 변했고 어떤일에 집중을 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두통이 왔다. 툭하면 혜화동에서 수업끝나고 여의도 집까지 3시간여 걸어서 가곤했고 미친 듯이 다닌 산행으로 지금의 강한 하체 체력이 만들어졌으니 그건 다행이다.
그런데 이제와 보니 그것이 선의 일종인 행선을 해온 것이었다.
지금은 많이 적응되어 같이 살아가지만 아마 나같은 무던한 사람이니까 살지 예민한 종류의 인간이었으면
거의 정신이 집밖을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이런 이명이 나와 평생 동행하는 친구가 되어 이젠 편안하다. 마음을 비우고 무관심해지면
시끄러운 이명 소리를 잊게 된다. 결국 이제는 나의 참선 수준의 척도를 알려주는 동반자이가 바로미터인 꼴이다.
세상 모든일들이 다 이렇게 제3자의 생각으로 마음을 놔주면 만사가 왠만하면 안정된다.
모든 일들이 다 지나간다.
계곡 물이 아래를 찾아 돌고 돌아 아닌 듯 흐르듯이 세상 만사가 다 결국 지나간다
바람에 화를 내는 허수아비 되지말아야지.
모든 감정은 다 지나가는 허상일뿐 그것을 받아 드리는 마음의 문제다.
모든 감정은 다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물론 아직 쉽지 않다.
아니 한참 멀었다.
그래도 이젠 견딜만은 하다.
많은 것을 이젠 놔주자... 내가 뭐 별건가...
< 일정량 모이면 미련없이 비워 버리는 연꽃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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