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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여운들

박감독 2013. 2. 1. 14:30

우리 몸에서 제일 더러운 곳은 입이다. 과학적으로 화장실 변기 둘레나 신발 속보다 더 더럽다고 되어있다. 그만큼 균이 많은 곳이다.
물론 몸에 이로운 균들도 있기에 구강 청정제로 무조건 다 없애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치과의사들은 조언한다. 대중교통의 손잡이나
강의실의 책 걸상 등 얼마나 많은 균이 있겠는가? 하긴 인기있는 찜질방이나 스포츠 센터는 정말 가관일 것이 뻔하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그에 맞는 저항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피부를 비롯해서 신체내의 면역기관들이 우리를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것이다. 적응, 진화, 생존 등의 멋진 말도 있지만 말 그대로 그냥 생긴대로 잘 맞춰서 사는것이다.
수많은 균들을 우리가 현미경으로 굳이 직접 보면서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 달리 피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매일 소독하는 장갑을 끼면서 살아가면 본인도 힘들지만 사회 생활하면서 뒷통수도 한참 따가울 것이다.

이렇듯 세상에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이 많다. 영화 <What women wants,2000>에서 닉 마살 ( 멜김슨 분)가 잘 나가는 광고 기획자로
우연한 기회에 전기 쇼크 사고를 당하고 여자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얻게 된다는 넨시 마이어 여자 감독의 로맨스 코메디 작품이다.
상대의 마음을 읽으니 사업하는데 좋긴 하겠지만 몰라도 되는 자신에 대한 혹평 역시 듣게 되니 일상 생활에서 상대를 편하게 대할 수
없게된다.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는가?
사실 자신에 대한 부모님의 마음을 모두 다 시시각각 알 수 있게 된다면 그것 또한 엄청난 파장일 수 있다. (그 반대가 더 큰 재앙일듯 )

 

            (얄미울 정도로 정확하다 )

                                                       ( 이런 결과가 보이면 기다리는데 힘빠진다,.모르는게 낫을 뻔 )


얼마전 젊은 직원이 내 스마트 폰에 버스 안내 앱을 설치해 줬다. 얼핏 방송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무료라도 사용법을 몰라 굳이 설치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대화중 내가 답답했던지 설치를 해줬다. 이제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번호를 누르면 몇분후에 도착하는지 바로바로
알게 되었다. 참 신기하고 편리한 기능이다. 그것도 무료인데 왜 아직도 사용을 안했는지 나도 참 구세대인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내게서 없어진것이 있다.
아침에 수진이와 같이 등교하면서 내 눈은 학교 앞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혹시 12분 마다 있을 4434번이 지나갈까 싶어서다.
보이면 이미 늦은 것이니 마음을 비우지만 육교 거의 건너서 보이면 수진이와 미리 빠이 하고 나는 버스로 달려간다. 간혹 안오는 버스를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다가 한번 갈아탈 생각으로 오는 버스를 타면서 저~기 뒤에 어렴풋이 고개 넘어오는 녹색 지붕이 보이는 버스가 4434번인지(한번에 병원까지 가는) 궁굼해서 눈앞의 차를 탈까 말까 망설여질 때가 있다. 왠지 모를 느낌으로 아직도 안보이는 차를 기다리다가
1분도 안되어 다가오는 버스를 보면서 예감이 맞을때의 그 기분은 아침부터 째진다. 물론 그 반대로 억울한 경우도 있겠지...
이런 사소한 즐거움이 완전히 없어졌다. 정류장에 서서 앱 켜면 아무 망설임 없이 정확한 현재 위치가 나오고 그것을 그냥 기다리면 끝이다. 매정하게 30초도 안틀리게 정확하게 도착한다. 사춘기시절 우편 엽서로 라디오방송국에 (황인용의 ‘별이 빛나는 밤에’나 이종환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등) 짝사랑 애인 생일 축하 편지를 보내고 방송되길 수일간 기다린 애뜻함이나 대학 학보속에 쪽지를 넣어서 편지를 보내던
청년시절의 달콤한 기다림의 사랑들이 지나간 향수로 다가온다. 지금은 지구 반대편도 누구나 동일하게 실시간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세상이니 간절한 기대나 애잔한 망설임이 들어설 공간이 없어졌다.
우리는 그래도 가슴을 지나는 여유의 공간이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손과 머리가 바로 붙어 거쳐가는 가슴이 없는 것 같다.


 


마술이 인기를 끄는 것은 속임수인줄은 알지만 그래도 빠져들 수 있는 그 순간의 감정이입이 즐거워서 일것이다. 우주의 신비함도 다 과학적으로 계속 밝혀지고 있으니 신화를 믿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아름다운 동심을 밝혀줄 순수함은 어디로 갔을까?
이러다 유전자검사를 해서 사람의 예상되는 병이나 남은 수명까지 알게 된다면 그것만큼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희망이라는 것 까지
판도라 상자에서 빠져나오면 정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어진다. 알고 싶지 않은데 자꾸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IT나 BT의 발달이 얄밉다.
상대의 장점만 보려고 노력하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려하는 여유를 가지고 한쪽 눈은 조금 감고 사는 다소 허당기질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윙크는 누가 해줘도 누가 봐도 이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