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낙서

선민 의식과 자존감의 필요성

박감독 2023. 12. 21. 10:12
의학교육을 의학을 "가르치거나" 혹은 "배우는"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의학교육은 "의사를 만드는" professional development의 과정이다.
 

의학교육을 받으면서 의대생은 professional identity를 체화하게 된다. 그는 일반인(layperson)에서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것은 해병대 훈련이다. "지옥주"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은 다른 군종과 구별되는 독특한 identity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것은 일종의 선민의식이나 우월감이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것이 없다면 전장에서 가장 먼저 선봉에 뛰어드는 역할을 맡기지는 못할 것이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구호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 군을 제대한 지 수십년이 지났어도 기수 따지고 드는 것은 이러한 정체성에 기인한다.

 
 
의과대학이란 강의/실습의 장소만은 아니며 전문직 정체성이 형성되는 특별한 환경이다. 이를 학습환경(learning environment)이라 부를 수 있다. 이 정체성은 단지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치르고, 실습을 했다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간에, 선후배 간에, 스승과 제자 간에 여러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한다. 의사는 그저 "의학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의사"인 것이다. 이 발달은 수련의와 전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공고화되며 평생 의사로서 practice를 하며 지속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의사들의 정체성, 혹은 집단의식이 필요한 이유는 결국 의학 자체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질병들의 원인을 우리는 알지 못하며(idiopathic), 표준 치료가 왜 듣는지도 대부분 모호하게 짐작할 뿐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한가운데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그것은 나 혼자만의 지식과 논리로는 불가능하다.
 
개별 의사는 의학을 배운 한 사람으로서 진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의사 집단이 전승해 온 경험, 그리고 세계 모든 의사들이 백업을 하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배경에서 진료를 하는 것이다. 어떤 치료나 시술이 정당화되는가는 그 상황에서 "다수의 의사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는 판단에 달려있지 결코 어떤 전지전능한 판단에 달려 있지 않다.
 
 
이 의사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오늘도 수많은 의사들은 과로와 중노동에 시달린다.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비록 예상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도 별 일 없으리라는 안전에 대한 보장, 그리고 사회적 명예 및 적정한 보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다 주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적절한 전문직 정체성을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이라 부르며 의료윤리는 사실상 여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의료윤리 역시 사상누각에 불과하게 된다.
 
의과대학에 "유급"제도가 있는 것은 이 전문직 정체성을 발달하지 못하면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의대에 입학할 정도면 지능이나 학습능력은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독하게 불성실하거나 자기 관리능력이 없어서 시험을 못 보았다면 그런 학생이 의사 역할은 잘 할 수 있을까.
 

 

- 권복규 교수님 글 -

 

밥 짓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