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탈수기
요즘 새벽 마다 수영하느라 고생이다. 하고 나면 개운한데 기상 후 수영장까지가 유격장 끌려가는 훈련병 같이 괴롭다. 물론 전날 잠자리도 찜찜하다. 이런 과정을 넘겨서 아침의 기상이 상쾌해진다면 아마 수영에 중독되는 상태겠지.
LA 동생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헬스 하듯이 말이다. (워낙 빼빼하고 다리만 길었는데 근육이 붙어 상체가 역삼각형이 되고 이두박근의 커지니 지금은 영화 배우같다. 멋지게 늙어가니 보기 좋다.)
간혹 헬스 목욕탕에서 남자가 봐도 멋진 몸매의 소유자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정성이 보통이 아니다. 아예 저녁모임은 수년째
갖지 않고 오직 점심에만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물론 식사량이나 종류에 대한 섬세한 계획도 다 있고... 세상에는 공짜가 정말 없다.
남자나 여자나 멋진 몸매를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듯 싶다. 하여간 수영을 일단 하는데 까지 해서 올해 안 되면 내년에라도
철인3종을 도전해보고 싶다. 되던 안 되던 목표가 있는 것은 좋으니까 시작해본다.
( 더위 먹은 네비게이션에 보이는 수륙양용 자가용 )
수영강사는 무서운 청년이고 (얼굴만 빼고는 몸매는 내가봐도 좋은 놈이다.) 수강생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나보다 베태랑들이다. 물 위에서 평형 배형 자유형 접영을 번갈아 한다. 아마 그냥 수영의 기본을 잊지 않으려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나는 그들의 틈에서 숨차하면서
정신없이 따라간다. 25m를 간신히 와서 좀 쉬고 싶은데 바로 뒤의 사람이 가만히 두질 않는다. (하긴 그런 덕분에 3주째인 요즘 내가 생각해도 체력이 많이 늘었다.)
수영장에서는 날씬한 사람이 당연히 많지만 의외로 포동포동한 사람도 꽤 있는데 이들이 수영도 잘한다. 마라톤도 토실토실한 아주머니가 나보다 훨씬 잘 뛰는 경우도 많듯이 말이다.이게 다 리듬을 타는 심오한 능력일 것이다. 힘으로만 되는 것은 세상에 별로 없다.
물 위에서 1시간 내내 떠서 전혀 힘들이지 않고 수영을 한다. 수영하면서 밥도 먹을 수 있는 그런 경지일 것이다. 난 왕복 한번하면 (50m)
구조된 조난자처럼 수영장 구석에 기대어 한참 헥헥 거리는데 말이다. 하여간 대단한 사람들 많다.
수영을 마치고 뿌듯한 기분으로 귀의 물을 빼고 나오면 수영복을 탈수기에 넣는다. 그곳에는 탈수기가 큰 것과 작은 것 두개가 있는데
보통은 혼자 이용할때는 작은 것에 그냥 넣고 돌린다. 간혹 그냥 생각없이 넣고 돌리면 기계가 갈 수록 더 흔들린다. 대부분은 흔들리다
안정되게 돌아가는데 자꾸 흔들리면 다시 열어서 수영복을 정 중앙에 가지런히 놓고 다시 돌려야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큰 것에는
그냥 넣어도 거의 다 문제 없이 돌아간다. 신경써서 넣지 안으면 꼭 티를 내고 기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있다. 그럴 때는 다시
손을 봐야한다.
그럴때 마다 생각을 하게한다.사람도 그렇다. 자신이 잘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꼭 주위의 보살핌이 있어야 하는 수준의 인간들도
있다. (혹은 남들 다 있는 보살핌을 못 받아 불행하게 잘못 되었다고도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큰 탈수기는 몇개의 수영복을 어떻게 넣든지 상관없이 기계는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배포가 크면 사소한 일에 흔들림이 없듯이 말이다. 그 배포는 천성일 수도 있고 교육으로 인해 키워진 교양일 수도 있고
강한 신앙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릇이 큰 사람은 그 만큼 모든 일에 안정적이다. 그러기에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탈수기에 잘 넣어 돌렸다. 하루를 흔들림 없이 보내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