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낙서

프랑스 공화정 역사(펌)

박감독 2021. 1. 7. 22:33

추억 공유 글로 올라온 4년 전 포스팅에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에도 두 번의 제정(帝政), 두 번의 왕정, 그리고 가혹한 학살 사건을 곁들인 세 번의 혁명을 80여 년간 겪고 난 뒤, 1870년에 와서야 현재 체제의 공화국이 들어섰다’는 부분이 있는데,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다시 설명해 봅니다.

그토록 잔인하고 끔찍했던 대혁명을 치르고도 프랑스는 금방 민중이 주인이 되는 공화국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 두 번의 제정(帝政), 두 번의 왕정, 그리고 세 번의 혁명을 더 겪은 후, 혁명 80년 만에야 민주주의의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우선 1789년 7월에 대혁명이 일어났죠. 3년만인 1792년에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정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제1 공화국입니다. 다음 해(1793년) 1월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여 명실 공히 왕이 없는 공화국이 됩니다.

무시무시한 공포정치가 이어지던 중, 다음 해(1794년) 혁명의 주인공인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가 역시 단두대에서 처형되면서 공포정치는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1795년 다섯 명의 총재가 통치하는 5인 총재정부가 들어섭니다. 4년 만인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전권을 장악합니다. 5년 후(1804년)에 그는 국민투표를 통해 황제로 등극합니다. 이것이 제1 제정(帝政)입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1814년에 실각하고, 왕정이 복고되어 루이 18세가 왕이 됩니다. 프랑스 역사에서는 이를 ‘왕정복고’ 시대라고 이름 붙입니다.

1830년에 다시 혁명이 일어납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바로 이때의 이야기입니다. 왕정복고는 무너지고 루이-필립 왕조가 들어섭니다. 왕권이 매우 약화되고 부르주아 세력이 거의 정치를 장악한 체제이기는 했지만 여하튼 왕조입니다.

루이-필립 왕조도 또 혁명으로 무너집니다. 1848년의 2월 혁명이지요.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다시 공화정이 선포됩니다. 이름 하여 제2 공화국이죠. 그러나 나폴레옹 1세의 조카라고 자칭하는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1852년 나폴레옹 3세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게 제2 제정입니다.

제정 19년만인 1871년에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예전에 우리는 보-불 전쟁이라고 배웠습니다)이 일어났고, 프랑스가 참패했습니다. 국민들의 실망감과 불안한 정세를 틈타 사회주의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파리를 장악했습니다. 소위 ‘파리 코뮌’입니다.

commune(코뮌)이란 단순히 공동의 장소라는 뜻에서 시, 읍, 면 같은 행정 단위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이 봉기 사태가 마르크스 레닌 등의 공산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공산주의(communism)라는 말도 바로 여기서 나온 겁니다. 그러나 3월에 일어난 파리 코뮌은 5월에 진압되었고, 새로운 공화정이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3 공화국이죠.

제3 공화국 이후 물론 프랑스는 오늘날까지 공화정입니다. 다만 제2차 대전 후 내각 책임제의 제4 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자주 바뀌는 총리로, 정정이 늘 불안하기 짝이 없던 제4공화국은 1959년 드골이 강력한 대통령이 됨으로써 제5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지금 제5공화국입니다.

피가 강물처럼 흐르던 그 잔인한 혁명을 거치지 않고도 80년이면 사회 체제가 왕조에서 민주정으로 바뀌지 않았을까요? 혁명의 허망함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1925년 영국 여성 소방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