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각자의 황금기가 있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이 될 수도 있고 가장 뿌듯한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시절일 수도 있고 덧없는 권력의 진한 맛에 중독되어있을 시절일 수도 있겠지.
내게는 2001년 여수 애양 병원에서의 정형외과 과장 시절이 인생의 정점인 것 같다.
순진하면서도 참 착실했던 나의 중학교 시절은 첫사랑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면서도
모든면에 나무랄 때 없던 시절이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모든면에서 완벽했고 시간 배분하는 성실성이나
교회 생활의 신실함을 생각하면 도저히 현재 나 일수가 없는 신기한 시절이었다.
그때 왜 그리 성실하고 또한 성실한 만큼의 효과를 다 만끽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뿐이다.
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현명한
성인이 되는 과정이라는 자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금으로서는 이해가 안된다.
아무튼 나의 모든 얼룩진 과정이 고등학교부터 시작되어 대학과 수련을 어렵게 통과하고
정형외과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도 많은 시행 착오 속에서
뭔가에 홀린 듯 20여년의 과정을 거쳐서 담금질 된 후 여수 애양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우연히 MBC 프로그램중에 칭찬합시다에 나오시는 김인권 원장님을 보고 테이프를 구입한후
자꾸 반복해서 보면서 나도 모르는 강한 이끌림을 받았고
애양병원에서의 삶은 정말 외과 의사인 나로서는 환상적인 곳이었다.
주위의 너무나 뛰어난 의료인들의 도움으로 수많은 수술을 밤늦게까지 원없이 해 봤으며
무엇보다 나의 멘토이신 김인권 원장님의 아침마다 해주시는 티타임의 대화는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해주었다.
전통있는 기독교 분위기 속에서 모든 정열을 불태우는 그곳 직원들의 아름다움 삶의 방식에
나는 감동했으며 병원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이곳에서 근무 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나환자들을 위한 헌신과 그 가족들 속의 험난한 삶을 간접 경험 하면서 많은 깨닮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인으로서의 내 자신의 한계와 가족과 떨어져 있는 삶이 피로를
견디지 못하면서 직장생활에서의 장점보다는 단점에 비중을 두는 편협함에 쌓여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한 상태에서 1년을 채우고 서먹서먹하게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각자의 달란트가 있어 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살아가자며 개업해서 성공하여
돈으로 기부함으로 내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고자 했다.
개업은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럭저럭 되고 뜻한바 대로 기부금을 조금씩 내면서
내 자신을 위로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작년에 병원을 정리하면서 애양 병원에 다시 가고자 시도하였으나 원장님의 조언을 듣고
포기하게 되었다. 덕분에 가장으로서는 참 많은 추억을 만들고는 있으나 수술하는 의사로서는
아주 많이 멀어져서 이젠 그저 날개 꺽인채 살아가는 과정에 길들여진 상태이다.
커가는 아이들은 옆에서 보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이 나를 위한것이라기 보다
완곡한 거부의사라 생각하니 내가 참 잘못했나보다 싶어 죄송하기까지 한다.
하긴 젊은 혈기에 겁도 없이 어설픈 실력만 믿고 함부로 행동했지.
사람은 다 나처럼 과거를 생각 하면 어리숙한 실수로 이루어진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을까?
난 참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그시절의 순수하지만 어설픈 실수들을 다시 하면서 인생을 배우고 싶진 않다.
여수에서 태어나고 운 좋게 정형외과를 전공하고 대학시절 기독교 수양회를 반강제로 끌려간 곳이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애양 병원이라는 생각에 뭔가 하늘의 이끌림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
결국 그곳으로 가게 될것이라 은근히 믿고 열심히 최신 수술을 견학 하면서
내딴엔 살아왔는데 지금의 내 위치는 그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다 개척하기엔
용기와 체력이 한계가 있어 그냥 이 자리를 일어나기가 버겁다.
뭔가 허전한 지금의 이 자리. 일단 내 주위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하나하나 중간 점검하면서
꾸준히 나를 키워 보리라.
그리고 난 후에 마음을 비우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기다려 봐야 겠다.
가정에서도 내가 할 일은 많겠지.
마음을 비우자 그리고 행복하자.
20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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