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승수(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 발행 2022-03-18 10:17:52
- 수정 2022-03-18 17:38:34

대통령 집무실 이전 자체도 타당성이 매우 의심스럽지만, 취임 전에 이전하겠다는 것은 굉장한 무리수일 뿐만 아니라, 국가재정법을 위반하고 형법 상 직권남용에 해당할 소지가 매우 크다. 법률가로서 이 부분에 대해 지적할 필요성을 느낀다.
없는 예산, 억지로 마련하려면 국가재정법 위반
첫째, 국가재정법을 위반하지 않고서는 취임 전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강행할 예산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용산 국방부로 옮기려면 최소 5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고 한다(물론 국방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예산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규모가 클 것이다). 이 정도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지난 15일 국무회의를 통해 ‘대통령 당선인 예우 및 인수위원회 운영경비’ 명목으로 일반회계 예비비가 배분되었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의 사례로 보면 그렇다. 게다가 이 예비비는 당선인 예우와 인수위원회 운영경비로만 쓰게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 예산을 마련하려고 기존에 편성된 대통령비서실·경호실 예산이나 부처 예산을 전용한다면, 그것은 국가재정법 위반이다. 국가재정법 제46조 제3항에서는 “당초 예산에 계상되지 아니한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국회가 의결한 취지와 다르게 사업예산을 집행하는 경우”에는 예산 전용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명백하게 당초 예산에서 계획되어 있지 아니한 사업이므로, 예산전용을 통해서 필요한 예산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유일한 가능성은 예비비를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 역시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명목으로 예비비를 사용하려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앙관서의 장으로부터 예비비 사용신청을 받아 심사·조정한 후에 예비비 사용계획서를 작성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즉 현 정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서, 문재인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취임 전에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는 방침이 국가안보상의 우려까지 낳고 있고, ‘무리수’라는 불만과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승인할 수 있을까? 승인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국가재정법을 위반하지 않고서는 취임 전에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할 예산을 마련할 수가 없다.
아직 대통령도 아닌데 요구·지시를 하는 건 직권남용
둘째, 지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방부 청사를 비우라고 한다든지, 관련 부처에 예산을 마련하라고 요구 또는 지시하는 것은 형법상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수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그렇게 할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관련 법률을 살펴보자. 우선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제15조를 보면, “위원회의 위원장·부위원장·위원 및 직원과 그 직에 있었던 사람 중 공무원이 아닌 사람은 위원회의 업무와 관련하여 「형법」이나 그 밖의 법률에 따른 벌칙을 적용할 때에는 공무원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안철수 위원장을 포함한 민간인 위원들도 위원회 업무와 관련해서는 공무원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리고 형법 제123조를 보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자. 지금 윤석열 당선인은 그야말로 당선인일 뿐이다. 그리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현황을 파악하고 취임식 준비, 취임 후 업무를 준비하는 역할이다. 그러니까 국방부나 다른 부처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필요한 공사, 이사 준비를 지시할 권한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국방부에게 건물을 비우라고 할 권한도 전혀 없다.
그런데 5월 9일 이후 대통령이 된다는 위세를 내세워, 국방부에게 ‘건물 빼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에 해당한다.
만약 인수위원회의 누군가가 벌써 그런 요구를 했다면, 이미 직권남용죄가 성립했을 수도 있다.
불법으로 대통령직을 시작할 텐가?
다시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의 현행 법체계와 예산·행정체계에 따르면 취임 전에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것을 강행하려고 하려면 법을 위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라고 하면서, 취임 전부터 이렇게 위법의 소지가 큰 행위를 강행하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벌써부터 권력에 도취되어 법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윤석열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은 지금이라도 법전을 읽어보고, 행정과 예산에 대해 알아보길 바란다. 국가를 운영하려면, 기본 개념은 갖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
설마 이런것을 알고 일부러 그러는것은 아니겠지?
예산을 편성할 근거도 가능성도 없는데 공약대로 청와대 이전한다고 쑈하다가 결국 야당의 반대로 못했다는 핑계?
설마 그렇게 얍삽하진 않겠지.
하여간 청와대를 지금 당장 옮기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불필요한 낭비같다.
(청와대 부근 부동산 값은 오르고 용산은 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