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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낙서

공천 혁명과 배신

권력은 살아있는 공룡과 같아 그때 그때 길들이면서 잘 이끌어갈 뿐 ( 그것이 곧 정치다)  온전히 내것으로 순한 양을 만들 수 없다.


명 태조 홍무제가 피바람의 숙청을 거쳐 강력한 황제권을 확립해 놓았으나 예기치 않게 황위 계승자인 큰아들 주표가 갑자기 죽어서 어린 손자에게 황위가 이어져야 할 상황이 되었다. 불안감이 커질수록 숙청은 더욱 가혹하게 행해졌다.

1398년 홍무제는 30년의 치세를 마치고 7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황제의 자리는 그의 손자 주윤문에게 계승되었다. 그가 바로 명의 제2대

황제인 건문제다. 그러나 건문제 통치 시기에 황제의 자리를 위협한 것은 태조 주원장이 염려했던 개국공신들이 아니라 황실 내부에 있었다.

태조에게는 26명이나 되는 많은 아들이 있었다. 그 혈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중 가장 야심찬 인물이 넷째 아들이며 나중에 영락제가 되는 주체였다.22세로 왕이된 건문제가 가장 두려워한 존재는 역시 연왕 주체였다.

주체는 한여름에 화롯불을 껴안고 산다거나 시궁창에서 잠을 자는 등 거짓으로 미친 척하며 건문제의 견제를 피해가면서 때를 기다렸다. 땅굴을 파고 그 안에서 무기를 만들며 땅 위에서는 거위 떼를 길러 그 꽥꽥대는 소리로 무기 만드는 소리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는 1399년, 북평에서 먼저 군사를 일으켜 남경으로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정난(靖難)의 변'이다. '황제를 에워싸고 있는 간신들을 처단하여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황제권에 도전한 것이다.

건문제는 궁성에 불을 지르고 승려의 복장으로 변장하여 성을 탈출하였다고 한다. 남경에 입성한 연왕은 사흘 동안 궁궐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불탄 황후의 시신밖에 찾을 수 없었다. 정화의 대원정도 잠적한 건문제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1402년, 연왕 주체는 조카를 제치고 황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가 바로 성조 영락제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세조와 비견될 수 있는 인물이다. 정권이 안정될 때까지 또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건문제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학자로 존경받던 방효유가 대표적 인물이다.마침내 옥좌에 앉은 영락제는 방효유를 불러 부드러운 말로 자신의 즉위 조서를 쓰라고 명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방효유는 순순히 붓을 들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쓴 글은 단 네 글자, '연적찬위(燕賊簒位)!' 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영락제가 "네가 정녕 구족을 멸해야 말을 듣겠느냐?" 소리치자 방효유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 "구족이 아니라 십족을 멸한다 해도 역적과는 손을 잡을 수 없다!" 영락제는 정말로 십족을 멸해, '십족을 멸한다'는 살벌한 고사가 만들어졌다. 혈연관계도 아닌 제자, 친구, 선후배 등 방효유와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 방효유의 문집을 애독한 사람들이 '열 번째 일족'이라 하여 모조리 처형장으로 보내졌다. 이때 처형된 사람들이 10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방효유는 처형되었고 처와 자식들은 자신의 집에서 자결하여 화를 면했다. 방효유 등을 처형하게 된다면 충신이 사라질 것이라는 일부의 경고에도 그는 '나의 패륜은 세월이 흐르면 비바람에 잊혀지겠지만, 나의 위업은 역사에 오래 기록될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즉위한 지 4년이 지난 1406년부터 자금성 건설의 대역사가 시작되었다. 만리장성 이후의 최대의 역사로 불리는 자금성의 건설에는 총 15년간

백만 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궁궐인 자금성은 정전인 태화전을 중심으로 남북을 축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남문인 정문의 이름이 천안문이다. 영락제는 자금성이 완성된 1421년 북평으로 천도하여 북경으로 고쳐 부르고, 자금성에 머물기 시작했다.800여 개의 건물과 10m의 높은 성벽, 50m 너비의 거대한 해자로 구성된 거대한 궁궐 자금성에는 1억만 개의 벽돌, 2억만 개의 기왓장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200톤에 이르는 돌이 수십 킬로 떨어진 채석장에서 운반되었으며 사천지방에서 자란 나무가 기둥으로 쓰이기 위해 4년에 걸쳐 운반되기도 하였다.자금성 바닥에는 걸을 때 경쾌한 발소리를 내는 특별한 벽돌이 깔려 있다. 이 벽돌의 효과는 음향만이 아니었다. 땅 밑에서 뚫고 올라올지 모를 침입자를 막기 위해 40여 장의 벽돌을 겹쳐 쌓았다. 성 안에는 후원을 제외하고는 나무가 전혀 없다. 암살자가 나무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경우도 비정한 예가 많다. 세상의 빛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감옥에서 죽은 이반 6세.

그는 로마노프 왕조와 독일 브라운시베이크 가문의 후손으로 1740년에서 1741년까지 재위했다. 생후 2개월에 황제가 된 그를 대신해 비론과 모친인 안나가 섭정을 맡았다. 이반 6세는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의 궁정 혁명으로 폐위되었다. 이후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이반 6세는 예카테리나 2세 통치기였던 1764년 살해되었다. 수많은 반혁이 일어나면서 많은 권력이 승계되었다. 물론 권력 쟁탈전이 일어날때 마다 많이 피를 흘렸다.

작은 나라 조선도 마찬가지다.이방원도 형제의 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고 수많은 숙청을 통해 아들 세종의 치세를 도왔다. 세조 또한 그런 피비린내 나는 과정을 겪었다. 이런 일은 세계적으로 비일비재하니 역시 권력을 무서운 것이다. 내가 쟁취하지 않으면 내 목숨이 날아날 판이니 얌전하게 산다고 될 일도 아니다. 비정한 권력의 세계다.

                                                                                                                                                                      - 네이버 참고 -



요즘도 여전히 작은 대한민국 정치사의 자칭 공천 혁명과 반복되는 배신을 보면서 외부로 보이는 피만 흘리지 않을 뿐 수많은 정치꾼들의 상처난 가슴에 서로가 독기품고 소금을 뿌리면서 살생이 강행되는것을 본다. 역시 정치는 아무나 하는것이 아닌듯 하다.
그런데 과연 국회의원들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할까? 알파고의 역할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