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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낙서

낙수효과 의사들

1. 출근길,

포털에 뜬 뉴스 한 토막.
의사를 늘리면 필수의료까지 낙수효과가 있을거라고.
‘메이저과’로 불리던 ‘내외산소정’은
언젠가부터 ‘기피과 내외산소응’이 되어 있다.

나는 소아응급을 하는 의사다.
나는 낙수 의사다.

2. 수서역,

길게 늘어선 익숙한 사람들이 보인다.
수서역에는 몇 분의 간격을 두고 매 시각마다
세브란스 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의 셔틀이 오간다.
일찍 나선 날이라 그런지 오늘은 비교적 줄이 짧은 편이었다.

지역에 병원과 의사가 더 생기면
저들 중 몇 명이 그 곳에 남을까.

3. 진료실,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엄마가
처방전 세 장을 들고 들어왔다.
어제 두 군데, 오늘 다시 한 군데의 병원에 들렀지만
기침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첫번째 병원의 약은 아이가 뱉아 약이 안 맞는 것 같고
두번째 병원은 설명이 탐탁지 않아 약을 안 먹였고
세번째 병원에서는 이전 병원들과 약이 겹치길래
약을 받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말간 얼굴에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던 아이는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떠났다.

나는 아무 약도 처방하지 않았다.

4. 3:20pm

열이 나는 아이가 119를 타고 왔다.
열이 시작된 지는 30분 정도 되었다고 핬다.
근처 개인병원과 택시들이 다 운영 중인 대낮이고,
아이의 상태도 매우 좋았기에
어쩌다 119를 타고 오게 되었는지 에둘러 물었다.

보호자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휴, 제가 너무 놀라서 운전하기가 겁나서요.  

아이는 진료실의 설압자며 펜라이트를 이것저것 만지며
즐거운 오후를 보낸 것 같다.
어떻게 돌아갈 셈인지 나는 묻지 않았다.

5. 7:50pm

아이는 많이 보챘다.
어딘가가 불편한 것이 분명했지만
혈색이나 몸의 움직임이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10월인데 아직도 수족구가 유행을 하네.

나는 보호자에게 격리의 이유와 기간을 설명했다.
목이 아플테니 어떻게 먹이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여러 방법을 소개하며 한참을 이야기 했다.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밖에서 귀를 대고 있던 아빠가 묻는다.
‘수족구 맞대? 어린이집 못 간대?’

자동문이 닫히며 , 엄마가 대답한다.
‘못 가긴 뭘 못 가, 그냥 보내야지.’

나는 그들을 다시 불러 설명하지는 않았다.

6. 10:30pm

오늘 근무는 4년차와 함께다.
똑똑한데다 환자와 응급의학에 대한 애정과 열심이 있어
함께 일하기에 언제나 미덥고 든든한 레지던트다.

내가 물었다.
‘내년 1년차 소식은 좀 있어?’

그가 대답했다.
‘어휴, 내년은 고사하고 있던 애들도 술렁술렁 합니다.‘

우리는 날씨 이야기를 나누듯 걱정도 안타까움도 없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으며 대화했다.

7. 새벽 2:40

응급실은 여전히 분주하다.
지금 응급실에는 환자가 7명 있다.

응급실 베드가 두 개 남아 있으니까
중환자실 처치가 불가능하더라도
나는 아마 환자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응급실 베드가 다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수술이 가능한 타과 교수가 없더라도
나는 환자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골든타임을 놓치거나, 응급실에서 볼 수 없는 환자라도
아무 면책 조항 없이 다 내 책임이라고
보건복지부와 의료법과 국민들이 정했으므로.

8. 해가 뜨기 전,

누군가는 말했다.
너희가 그 곳에 있는 것이 문제야.
응급, 중증외상, 분만을 담당하는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또 어디선가 말한다.
환자 생각, 건보 걱정, 속보이는 핑계 대지 말라고.
올해의 큰 깨달음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애정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오늘 하루는 마치 대한민국 의료의 샘플러 같아,
하나씩 뜨겁게 맛보며 하루가 다 가고
이제 접시 위에는 마른 뼈만 남았다.

Allison 님 글
ㅡㅡㅡㅡㅡㅡ

이제 의료 종말이 점점다가온다.
아니 이미 진행중이다.
후손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있는데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그저 희생양만 찾고있다.
네 죄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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