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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삶의 과정중에서

1973년 10월 어느날 3년반의 일본생활에서 귀국했을때의 김포 공항은 국민학교 3학년이던 내 기억에도 참 초라했다.
약 몇시간 전에 떠났던 일본 공항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어둡고 답답한 분위기의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입국장에 들어섰을 때 저 멀리서 나를 반기시던 할머니의 두 팔 벌린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어머니가 뛰어가서 안아드리라 했는데 솔직히 뛰어가면서도 내가 왜 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에게 반갑지도 않은데

뛰어야하는지 하고 생각했던 어린 기억이 또렷하다.
할머닌 집안의 장손인 나를 무척 반가와 하셨을테니 내가 할아버지 되기 전까지는 그 기분 십분 이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건강하시던 분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지 벌써 10년이 넘으셨다.
그때 검은 교복을 입고 옆에 계시던 키큰 학생이 있었는데 얼굴이 특이해서 신기하게 봤었다. (둘째 숙부님은 어릴적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자국이 많았다.) 검은 교복이라 고등학생인줄 알았는데 먼훗날 알고보니 그것은 당시 대학 교복이었다.
여의도로 이사하고 처음 먹고 놀란 짜장면의 그 맛을 그 숙부님과 같이 했고 장사에 뜻이 있으셔서 대학을 중퇴하고
가구점을 차리셨는데 간혹 놀러가면 바쁘신 와중에도 호떡을 원없이 먹게 신경써 주셨다.
결혼후 뒤늦은 8년여 만의 임신 결과에 즐거워서 큰 형님이신 우리집으로 전화 하셔서 형제간 통화 하셨던 내용의 기억도 뚜렷하다.
돈 이야기도 많이 나왔던 것 보면 아마 그날 가구점 수입도 기록이었던 것같다. 아버지도 동생이 행복해하니 많이 기쁘신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지금은 너무나 이쁘게 잘 커서 결혼 생활도 잘하고 효녀이니 숙부님 부부가 착하게 살아오신 덕에 받으시는 복이다 싶다.
내가 그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곤 했으니 나도 나이 들은축에 속하겠지.

 

 


몇 달전 이상하게 몸이 한쪽으로 기운다고 내게 오셔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머리 검사를 하니 뇌 종양이다.
결국 삼성 병원에 입원하셔서 조직검사후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 중이시다.
30여년전에도 후두암으로 죽다 살아났고 무남 독녀도 기쁘게 좋은 사위만나 결혼 시켰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큰형님이신 아버지께 말씀 하신다.  (그당시 첫째 숙부님께서 동생이 불쌍하다고 우셨는데 동생은 회복되고 얼마 안지나서

그 분이 오히려 급성 백혈병으로 4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지난 일요일에 아버지와 같이 찾아 뵈었는데 약 부작용으로 많이 붓은 상태로 거동이 많이 불편하셨다.
다리의 힘도 없어 부축 없으면 넘어지실듯한 위태로운 걸은걸음이었지만 그래도 혼자 집안에서 생활하면서 운동은 하실 수 있었다.
식사도 잘 하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숙부님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참 착실하게 살아오신분이고 숙모님도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두분은 참 천생연분이라 생각한다.
집으로 모시는 중에 착한 딸과 사위가 와서 가볍게 인사하고 아버지와 돌아오는데 뒷자리의 수진이는 재미있게 밖을 구경하면서
내 핸폰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흥얼 거린다. 삶은 이렇게 흘러가나보다.
가능한 건강하게 사시다가 편하게 여행 떠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과거 아버지 고향인 전라도 보성으로 놀러가면 많은 어들들을 뵈었고 그분들이 하나둘 노인 되시면서 떠나셨다.
날 번쩍 번쩍 드시던 몸짱의 이웃 아저씨도 암으로 돌아가셨고 미인 할머니도 떠나셨다.
하긴 병원으로 오시던 연세드신 환자분들의 부음도 나중에 자녀들을 통해 전해 듣곤 한다.
수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니 떠나는 사람도 있어야겠지. 다들 순서없이 떠난다.
죽음도 별나라 가는 과정일 뿐이니 기쁘게 받아드릴 수 밖에 없다.
정말 골고루 다양한 암을 경험하는 우리 집안의 일원으로서 나도 언젠가 그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짜피 내 능력을 벗어난 일이니 그저 담대히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간다.
올때와는 다르게 떠나는 것은 순서가 없는 법이니 가능한 내 아이들은 다 성인으로 키워놓고 가고싶다.
하긴 부모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겠지. 하여간 나도 그게 제일 소원이다.
그래서 건강한 오늘이 감사하다.
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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