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관용 기록집

우크라軍 전술 짜주고, 하마스 땅굴 탐지… 전쟁 뒤흔드는 ‘절대 반지’?

[유용원의 군사세계] 군사용 AI의 현주소

 
 
한화의 다목적 무인차량 아리온스멧(왼쪽), 이스라엘 땅굴탐지 로봇(가운데), 미 보잉의 초대형 무인잠수정 에코 보이저(오른쪽). /그래픽=양인성

지난해 5월 우크라이나군은 시베르스키도네츠강을 건너려는 러시아군을 수차례 공격해 공세를 차단한 것은 물론 대대급 병력을 전멸시켰다. 대전차 로켓·미사일부터 고속 유탄 발사기, 박격포, 장갑차·전차 등 다양한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 전투 부대들이 마치 순번을 정한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공격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당시 전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본 피해는 경미했던 반면, 러시아군은 73대 이상의 전차와 장갑차, 1500명가량의 병력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우크라이나군의 전술 프로그램 ‘GIS 아르타’였다.

 

 

◇러軍 대대 격멸한 GIS 아르타

GIS 아르타는 드론과 같은 감시 정찰 자산이 표적을 식별하면, 표적 주변에서 가장 가깝거나 효율적인 무기를 보유한 부대에 화력 지원이나 직접 공격을 명령한다. 탑승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운전자를 자동으로 연결해 주는 우버와 비슷한 방식이어서 ‘우버 포병’이라고도 한다. 보통 현대식 군대가 적을 식별해 포병이나 공군 전력으로 공격하기까지 20분 안팎이 걸리는데 GIS 아르타는 30초~2분 이내로 단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1년 9개월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위성사진에서 전장 데이터 종합 분석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AI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 CIA 등에 AI 데이터 분석 플랫폼 ‘고담’을 제공했던 미 팔란티어는 우크라이전에서도 업그레이드된 ‘고담’을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해 승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고담’은 상용 위성, 열 감지기, 소셜미디어, 정찰 드론, 우크라이나 측 스파이 등에게 제공받은 정보를 종합 분석해 러시아군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는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를 통해 적은 병력과 무기로 러시아군을 정밀 타격할 수 있었다. 앨릭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는 외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 공격의 대부분을 팔란티어 AI 시스템이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이스라엘군(IDF)은 하마스 추적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가자 지구 지상 전투가 시작된 뒤 이스라엘군 ‘표적 센터’가 땅굴 등 약 1200개의 새로운 하마스 공격 표적을 확인했는데 AI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픽=양인성
 

◇국방AI는 ‘절대 반지’?

이처럼 실전 등에서 AI의 군사적 활용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 국방 AI에 대한 세계 여러 나라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인터넷 시대를 연 미국은 AI 분야 연구 개발 예산만 한 해에 18억달러(2024년 요구 예산 기준)에 달한다. AI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항상 전투하고 있는 미군에는 이미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미국 다음의 AI 강국인 중국은 2030년 AI 분야 초강국이 되는 것을 목표로 지능화 전쟁을 위한 AI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율화 및 로봇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고 무인 전투기·잠수정 등에 AI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극초음속 미사일이나 핵탄두 미사일을 AI로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방부가 2021년 AI 추진 전략을 수립한 데 이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방 AI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엔 ‘국방 혁신 4.0′ 기본 계획을 통해 AI 기반 첨단 과학기술 강군 육성을 목표로 하는 추진 과제를 발표했다. 유·무인 복합전투체계(MUM-T) 구축, 우주·사이버·전자기 스펙트럼 영역 작전 수행 능력 강화, 국방 AI 센터 창설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인구 절벽에 따른 병력 급감(急減) 시대를 맞아 국방A I는 모든 것을 해결할 ‘절대 반지’처럼 군 안팎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군 획득 제도 등이 장애물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방 AI가 만능은 아니며 한국군이 진짜 ‘AI 기반 첨단 과학기술 강군’이 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한다. 우선 군 전력(戰力) 획득 제도 문제가 꼽힌다. 획득 시스템이 각종 무기 체계와 개인 전투 장비 등 전력 지원 체계로 나뉘어 있고, 각 체계 담당 부서와 업무도 방사청(방위사업청)과 국방부로 구분돼 있어 효율적인 국방 AI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것이다. 국방 AI 전문가인 박영욱 한국국방기술학회장은 “국방부가 담당하는 AI 인프라 구축 업무가 방사청의 무기 체계 업무와 분리돼 있다는 것도 국방 AI 추진에 불리한 제도적 약점”이라며 “현재 획득 제도가 지나치게 하드웨어 중심적이어서 국방 AI에 필수적인 소프트웨어 획득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는 3~6개월 내 업그레이드가 필요한데 현재 우리 획득 제도상으로는 불가능해 기술 도입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지나치게 경직된 데이터 및 정보 보안 제도, 국방 데이터 및 클라우드의 AI 인프라 미흡 등도 큰 장애물로 꼽힌다. AI·빅데이터 전문 업체인 티쓰리큐 박병훈 대표는 “보안을 이유로 누구도 결정하지 못해 국방 데이터 공유와 활용이 크게 제한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개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인 국방 AI 개발 환경이 경쟁력 있는 민간 우수 전문 인력의 진입을 막아 결국 AI 민군(民軍) 생태계 조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국방연구원 등 더 많은 기관과 학교, 연구소, 기업들도 국방 데이터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국방 데이터 관리 기준 및 방향도 제대로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AI는 실패”

 

 

“데이터라는 ‘원재료’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AI라는 ‘요리’는 결국 실패합니다.”

문송천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국방AI 사업 추진과 관련해 데이터 질(質) 등 데이터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 교수는 수퍼컴퓨터를 처음 개발한 미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전산학 박사를 1980년대 초 취득한 국내 전산학 박사 1호로, 카이스트 및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지냈다. IT 용어 ‘클라우드(CLOUD)’를 처음 만든 소프트웨어 1세대 학자이기도 하다.

 

국내 전산학박사 1호인 문송천 카이스트 명예교수.
 
 

문 교수는 “정부와 기업, 군 당국이 각종 데이터를 확보해 AI 플랫폼에 적용하면 즉각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며 “그 이유는 데이터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북한 소형무인기 대응 실패를 비롯,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에서 무용지물이 됐던 재난안전통신망, 4세대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오류 등을 데이터 설계 실패의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문 교수는 “CLOUD라는 용어는 ‘Class·Object·Ubiquitous·Distributed’에서 앞 글자를 따왔다”며 “신뢰성 있는 AI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불확실성, 부정확성, 불평등성의 가능성이 없는 완벽히 정제된 데이터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 국방부 감사실 외부 전문가 감사관 자격으로 국방 C4I(지휘통제) 사업 등 17개 주요 무기사업들을 직접 살펴봤던 그는 “현대전은 정보전, 데이터전인데 한국 국방데이터의 품질도 상당수가 문제가 많았다”며 “조악한 국방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킨다 하더라도 AI 처리 결과는 이미지 영상 처리를 제외하곤 효용성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