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년 아들 결혼 시킨 이후에는 꼭 한번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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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60이 넘어가면서 남은 여생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대하여 가끔 생각을 하였다.
나보다 세상을 먼저,,,그리고 오래산 사람들의 글들을 찾아보며 60세~75세가 내인생의 '화양연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속박에서 여러모로 벗어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어온 여러가지 경험들도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서류들의 취미란에 조금은 진부하지만 '여행,독서,음악감상,그림,운동'등을 별 생각없이 써 왔는데, 아마도 언젠가 부터 내 마음에 자리잡은 '해보고 싶은것들'을 쓴것이 아닌가 싶다.
그중에 아직 걸을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그러나 시간제한이 있는것이 '여행' 이라, '여행'을 우선순위에 놓게 되었다.
막연히 가보고 싶은곳은 많다.
국내든 해외든...
내 노트북에는 BBC,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서 선정한 '죽기전에 꼭 가보아야할 50곳'이라는 자료도 보관이 되어있다.
우선 제주올레 완주를 목표로 걷기를 계획한 것은,,,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하루 이틀에 쉽게 이룰 수도 없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고, 무엇보다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 국토의 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섬 제주 전체를 오롯이 나혼자의 두다리힘 만으로 걸어보면서 보고,듣고,느끼고 싶은 마음이 컷기 때문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제주올레 걷기는 2021년 10월 23일 첫걸음을 걷기 시작하여 2023년 11월 27에 마무리가 되었다.
그동안 5차례에 거쳐 제주에 왔다.
2021년 두번, 2022년 한번, 그리고 올해 2023년 두번.
주로 베트남 장기출장에서 돌아온 10월~12월에 이루어 졌다.
1코스~9코스는 조천에 있는 누이집을 거점으로 다녔고,
10코스~18코스는 누이집과 거리가 멀어져서 게스트하우스들과 주변식당들을 이용하면서 다녔으며, 19코스~21코스와 1-1코스(우도)는 다시 조천 누이집을 거점으로 걸었다.
걷는 기간동안 허리통증과 어깨통증도 많이 좋아졌고, 혈당관리에도 도움이 되었으며 당연히 하체의 근력도 좋아졌다.
곳곳에 있는 제주 음식들도 여행중 즐거움을 주었는데,,,
보말칼국수, 전복죽, 오분자기 뚝배기, 성게비빔밥, 간장게장, 각종 국밥 및 정식들, 해물파스타...등등
갈치조림, 방어회, 멸치회, 우럭튀김등은 최소 주문수량인 2인분을 주문해서 포식을 했다.
뭐든 맛있게 잘 먹고, 다소 식탐도 있는 나에게는 제주에서의 맛있는 음식들이 적지않은 행복감을 주었고, 걷는동안의 피곤함을 잊게해 주었다.
제주는 섬전체가 매우 아름답지만,섬 곳곳에 이곳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슬픔도 많은 곳이다.
각 코스마다 아름다운 경치뿐 아니라 간직하고 있는 사연들도 많았다.
이중섭도 6.25 전쟁 기간중 부산 피난민 소개정책으로 서귀포에서 1년 정도 살았으며,
박목월도 휴전 무렵 유부남 이었던 그를 몹시 연모했던 여대생과 함께 도피하여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목사였던 여대생의 아버지가 수소문해서 제주에 찾아와 딸을 며칠동안 설득해서 강제 이별을 시켰으며, 부두에서의 이별 모습을 보고 당시의 제주 문인들과 음악인들이 만든 노래가 가곡 '떠나가는 배'의 배경이라고 한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제주는 유배자들의 섬이기도 하다.
조선왕조 15대 왕인 광해군도 인조 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1637년 제주도로 옮겨져서 1641년 제주에서 생을 마감한 사실도 제주올레를 걸으면서 알게되었고,,,
1773년에 출생한 다산 정약용의 조카인 정난주(마리아)도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제주로 귀양을 왔다. 백서사건으로 처형된 황사영은 그녀의 남편이었고 귀양당시 동행한 두살배기 아들 황경한을 살리려고 귀양길에 추자도 갈대밭에 내려두고 제주로 와서 대정현의 관노로 살다가 1838년 66세의 나이로 제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올레 11코스에 정난주 마리아의 묘지가 있으며 순교자묘역으로 되어있다.
추자도에 살며 어머니를 그리던 황경한의 묘지는 올레 18-1 하추자코스에 있다.
두살난 젖먹이를 데리고 떠난 유배길...자식과 생이별을 하고 양반집 규수에서 관노의 신분으로 전락하여 살았으며, 자식마저 죄인의 자식으로 살아야 했던 수난과 고통의 삶 이었다.
제주 곳곳에는 한국현대사의 커다란 아픔중 하나인 4.3 사건 희생자들의 위령탑들이 있다.
1947년 부터 무려 7년여 기간동안 희생된 사람들...
올레 10코스에 4.3 사건 최대의 양민이 학살된 섯알오름에도 위령탑이 있고 당시의 상황을 적은 비석들이 있는데, 트럭에 실려 학살장으로 끌려가던 사람들이 죽음을 직감하고 자신들의 마지막 행선지를 남겨진 가족들에게 알리려고 트럭위에서 신고 있던 검정고무신을 길에 던졌다는 글을 읽고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3년간 올레를 걷는 기간 내내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여있던 이런 저런 감정의 파편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 있었고, 유배자들의 삶과 4.3 희생자들을 생각하면서 부질없이 가지고 있던 집착을 조금씩 버리게 된 것 같다.
또한 제주올레를 걷다보면 많은 유적지들을 만나게 된다.
몽고에 대항했던 항몽유적지들,
하멜 일행 유적지,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만들어 놓았던 여러곳의 동굴진지들과 비행장도 있어 일제의 집요함을 엿볼수 있었다.
...
1코스에서 9코스 제주 동남쪽 올레는 내 생애 가장 오랫동안 가장 긴거리의 바닷길을 걸었으며 주상절리등의 비경도 볼 수 있었다.
10코스, 10-1코스, 11코스는 2022년 겨울에 걸었는데 10-1가파도 올레를 걸으면서 갔었던 마라도도 인상에 남았다.
1883년에 대정골에 살던 김성오라는 사람이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후 이주를 목적으로 개척한 섬이 마라도 인데, 초기 이주자들의 삶은 매우 고달팟을 것이다.
11코스 모슬포에서는 눈보라에 발길이 묶였었는데,
덕분에 모슬포항 근처의 맛집들 여러군데를 순례했다.
모슬포항 끝자락에 있던 파스타집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게의 모습도...맛도...
또한 11코스의 무릉곶자왈은 매우 아름다운 숲이었다.
12코스에서 15코스는 제주 서쪽인데 어느곳에서든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다.
14코스 협재해수욕장 부근에 있던 해물파스타 집도 기억에 남는다. 꽤나 맛있게 먹었는데 알고보니 늘 대기가 있는 맛집이었다.
애월의 여러곳들도 훌륭한 곳들이 많았다.
16코스,17코스 숲길과 이호테우 해변,,,18코스 주변의 제주원도심, 18코스에서 21코스에 걸쳐있는 제주 북쪽해변...
날씨가 도와주어야 갈 수 있는 18-1/2 추자올레.
그리고 1-1 코스인 우도올레...
...
돌이켜보면 제주올레 전체가 아름다운 풍광을 가지고 있었고 나에게는 여러모로 커다란 선물이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10대 후반 여러차례 입시실패를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던 일...
20대 중반 종합무역상사에 입사하여 여러나라를 다니며 견문을 쌓은일...
30대 중후반 난치병과 1년여 투병생활을 하며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면서도 절대로 죽지 않을거라고 믿고 극복한 일...
그 다음해에 지금의 회사를 창업하여 규모는 크지 않으나 수출업이라는 보람을 가지고 한국과 베트남 직원들과 버티면서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일...
그리고 이번에 3년간 여행하며 걸었던 제주올레...
그만큼 제주올레는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잔잔한 임팩트를 오랫동안 주었다.
해변에 펼쳐진 바당올레는 마음의 평화를 주었고, 고봉준령은 아니지만 많은 오름들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반드시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반복적으로 각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60중반의 나이에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포기하지 않고 이루었다는 작은성취감도 얻었으며, 이는 앞으로의 여행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이 만든 길보다 길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제주올레 안내책자 뒷표지에 어느 시인이 쓴 글이다.
언제 제주올레를 다시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스산해 지면 또 찾아올 것이다.
한두 코스만을 걷더라도...
페친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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