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로막치 막부 시절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들어섰다. 명나라는 일본에 비하면 거대한 나라였다.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명나라는 3대 황제였던 영락제 시절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비록 정변을 일으켜 황제 자리에 올랐지만 통치에 있어서는 매우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은 이런 명나라에 잘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 덕분에 명나라 황제는 쇼군을 일본 국왕으로 인정했다. 일본은 당나라 이후에 중국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이제 드디어 명나라와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명나라는 주변 국가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국가였다. 명나라는 주로 조공 무역을 통해 다른 나라와 교역 활동을 펼쳤다. 주변 국가들에서 알아서 명나라에 굽히기만 하면 엄청난 혜택을 주변 국가들에게 베풀었다. 명나라에서는 조공 무역을 하러 들어오는 국가들에게 ‘감합’이라는 통행증을 주어 교역을 통제했다. 일종의 증표였던 감합은 진짜 사신이 맞는 지 확인하는 역할을 했다.감합 무역을 일본 정부에게 많은 혜택을 안겨다 주었다. 막부 정부는 명나라와의 교역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명나라로 가는 무역선을 ‘견명선’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왜구가 들끓어 명나라를 매우 괴롭히고 있었다. 왜구들은 주로 명나라 남부 해안가를 약탈했다. 아무래도 조선보다는 더 약탈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왜구들 때문에 조공 무역의 양이 줄어들자 막부 정부에서도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다가 결국 감합 무역이 완전히 끊기게 된다. 주요 원인은 바로 밀무역이었다. 세상에 모든 것들이 중국에 있다고 생각하는 명나라 황제는 기본적으로 교역을 원하지 않았다. 중국 황제 강희제가 특단의 조치로 1661년에 내린 <변계령>으로 해안의 모든 주민들이 내륙으로 강제 이주하게 하면서 해안무역이 초토화되었다. 그래서 밀무역을 철저히 금지해왔다. 그러나 주변 국가들이 워낙 무역을 원하다 보니 조공 무역이라는 형태를 통해 교역을 해왔다. 한참 후 4대 황제 영락제에 이르러 다시 개항을 하였다.
명나라와의 무역 금지는 훗날 임진왜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즉 일본의 청나라와의 무역이 금지되면서 조선을 통한 명나라고의 진출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조선에 <정명가도>를 요구하였으나 조선 조정의 반대로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과연 당시 조선은 주변의 국제 정세를 현명하게 잘 파악하고 있었을까?
이게 일방적으로 착한 나라가 억울하게 당한일이라고 떼쓸 일일까?
약자 코스프레 병은 이때부터 생긴것일까?
( 하긴 고려말도 원나라의 침공으로 백성을 죽어가는데 왕은 강화도로 도망가서 수십년 살았었지.
고려자기 자랑질하면서.)
2)
일본이 조선을 강제 합병한 1910년 당시, 주변 강대국들의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러시아는 러일 전쟁(1904-1905)에서 패배한 후, 극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약화되었고 국내의 혁명 내분으로 정신이 없었다.
청나라는 과거의 엄청난 영광을 뒤로한체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도전으로 쇠퇴하고 있었고,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며 이로 인해 조선을 지킬 힘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영국과의 2차례 아편 전쟁은 국가의 붕괴를 가속시켰고 수많은 은이 영국으로 빠져나가서 경제도 몰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조선을 지켜줄 힘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력으로 버텨온 나라가 아니었으니...)
영국은 청나라와 무역으로 엄청난 적자를 보고있었다. 유럽에서 유행하는 청나라의 사치품들 ( 도자기,비단, 차 등 )의 광적인 인기로 영국의 식민지에서 거둬들인 수많은 은들은 다 청나라 조정으로 빨려들어갔다. 더이상 버티지 못하던 영국 의회는 인도에서 생산된 아편을 중국에 비밀리 퍼뜨려 무역수지 적자를 만회하려 하였다. 아편의 유행에 경각심을 느낀 청나라 조정이 아편을 몰수하자 영국의회는 단 한표 차이로 전쟁을 결정하고 수치스런 아편 전쟁을 시작했다. 동 2번의 아편전쟁으로 청국을 완전히 굴복시킨 상태로 수많은 항구를 개방해서 청나라로부터 수많은 이득을 착취하고 있던 영국은 일본과의 동맹을 통해 아시아에서의 세력을 유지하려 했다. 그래서 일본의 조선 합병을 묵인했다.
미국은 뒤늦은 제국주의 행렬에 합류하면서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고 있었고,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이었가애 일본과의 충돌을 피하려 ( 가쓰라 데프트 조약 ) 일본의 조선 합병을 묵인했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자리를 잡고 꾸준히 확장시켜갔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 속에서 일본은 조선을 강제 합병할 수 있었다. (간이 붓어 하와이를 공격하면서 결국 핵폭탄을 두대나 맞았지만 말이다. )
과연 대한제국 조정은 현명하게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있었을까? (10여년전까지도 조선은 이미 300여년전 멸망한 명나라를 매년 4회씩 제사지내는 꼴을 왕실이 주도해서 하고 있었다.)
착한 나라가 억울하게 당한것일까?
아니면 병신짓하면서 정신 못차린 나라가 ( 나라도 아니다 ) 당해도 싼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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