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관용 기록집

헤어질 결심(보관용)

헤어질 결심

의사는 만들어진다. 아무 생각 없는 고3이 의대를 들어와서 의대 6년, 수련 5년간 귀가 닳도록 환자존중, 생명 존중을 듣고 세뇌되고, 선배와 스승을 보고 따라 하면서 완성된다. 위급한 환자를 보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동안 의사 파업, 대정부투쟁에서 빠지지 않는 문구가 있다. `국민을 설득하자``환자에게 죄송하다``얼른 환자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등이다. 이번에는 그런 말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에서 의사는 의무만 있고 환자는 권리만 있다.
환자는 돈을 냈다고 불편하지 않게 치료받을 권리를 주장한다.
의사와 환자는 계약관계다. 치료비 안에서 법 테두리 안에서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 치료비 총액은 개인의원이라면 대부분 1만원-2만원이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존중, 생명존중이 그냥 몸에 배어서 그 이상으로 행동한다. 이게 크다. 환자가 있으면 몸이 반응한다. 댓가없이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당직이 아닌데 퇴근도 못하고 환자에 매달렸다. 밥을 굶어가며 환자와 씨름했다. 주말 휴일에도 나와서 일했다.
살리겠다고 손에 쥐가 나도 앰부백을 짜고 팔이 빠지게 심장 마사지를 했다. 환자가 좋아졌다고 감사도 없고 보답도 없다. 그냥 했다. 나빠지면 폭언을 들었고 위협을 받았다.

돈 때문이라면 굳이 할 이유가 없다.
이젠 결과가 좋지 않을 걸로 예상되면 손대면 안된다. 구속에, 면허취소에, 수십억 배상금을 두드려 맞는다.
수십년간 전국민에게 안전하게 썼던 약도 처방하면 안된다. 조금이라도 부작용이 나타나면 감옥에 가고 수억을 배상해야 한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못한다고 하면 된다. 의사의 본분이라고? 최선을 다했으면 감옥에 보내고 수억 물어내라고 하지는 말아야지.

근거없는 2000명 증원으로 인한 불편에 환자단체는 자기들 안 봐준다고 병원을 폭파하고 싶단다. 의사는 조폭이고, 군인처럼 파업 못하는 법을 만들라고 한다.
자신을 돌봐준 의사는 그렇게 욕하면서 멀쩡한 시스템을 파괴한 정부에 대해서는 한마디 안 한다.
본심이 드러난거지. 교수가 지쳐 쓰러지건 전공의가 나중에 일자리가 있건 없건 당장 나를 안 봐주면 조폭이고 살인자인거지.

윤석열 정권은 간당간당하게 남아 있던 전문가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박살내고 그동안의 `환자가 먼저다`라는 최면에서 깨어나게 했다.
앞으로 방어운전하듯 최소한의 진료만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느낌이 쎄하면 큰 병원으로 보내고 대학병원 의사도 조금만 느낌이 안 좋으면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손을 뗄 것이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정부를 응원한다. 아파도 참을테니 악마같은 의사를 박살내고 꺾으라고 한목소리다. 의료에서 권한이 많아 거만하니 권한을 뺏으라고 한다. 돈을 많이 버니까 돈벌이를 막으라고 소리높인다.
모두 면허취소하고 퇴학시키고 외국의사를 수입하라고 요구한다.

의사가 박살 나니 시원하신가. 우리는 누구나 살다 보면 언젠가는 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나는 돈만 밝히고 싸가지 없더라도 나를 살려줄 실력있는 의사를 원한다. 그런데 이제 그런 의사는 씨가 마른다.

지금 앞으로 나를 살려줄 의사가 될 전공의, 학생인데 그들은 포기다. 올해는 무조건 쉰다고 결정했다. 앞으로 실력있는 의사를 양성할 수련체계가 마비된다는 의미다. 헤어질 결심을 했다.

정부는 수업을 안 해도 F를 맞아도 진급시키겠다고 한다. 수업도 듣지 않고 졸업한 의사라? 이렇게까지 한 권력자의 2000 맹신이 중요한가.

교도소 갈 만큼 위험을 무릅쓸 환자는 없다.
나는 예비환자로 의사가 환자를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앞날이 섬뜩하다.

'보관용 기록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혼집구경  (0) 2024.06.17
<슬기로운 전공의 생활> 방영금지 4개월째  (0) 2024.06.17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어쩌자는 것인지...  (0) 2024.06.12
의사 정재원  (2) 2024.06.10
우리 들쥐 현실  (0) 2024.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