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지가 꽤 된 책인데, 그간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 보니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다. 사실 개항 이후의 조선사는 조금씩 공부를 하긴 했지만,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얘기들도 좀 읽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을 했는데, 일부러 좀 천천히 읽었다. 지하철에서 읽고, 버스에서 읽고, 집에서도 읽다가 중간에 일부러 멈췄다.아무래도 좀 거리감을 두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계속 읽다가는 분노에 숨이 막혀 소리라도 지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좀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해야 할 것 같았다.
요즘 한일관계 관해서 누가 매국노니 반역자니 하는 얘기들이 나오면서 조선이 왜 망했는지, 조선이 왜 근대화에 실패했는지 말들이 많은가 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본이 침략해 와서 그렇다는 결론인 것 같다. 일본이 침략해 와서 조선이 망했고, 일본이 침략해 와서 근대화를 못했다.
그러나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개화, 소위 근대화의 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 시도는 좌절당했고, 근대화를 시도했던 사람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본인들 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도.
개화를 시도했던 사람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처단했던 것이 누구인가? 그건 고종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종과 민비, 그리고 외척인 여흥 민씨 일가. 쉽게 말해 왕정 전제 군주제와 양반 세도가 중심의 구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이들 파벌이 개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을 처절하게 잡아 죽인 것이 조선의 패망사이다.
그런데 왕당파들 중심의 이러한 반동 체제는 조선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근대화로 가는 길목에서 어느 나라든 그러한 반동체제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들과 실패한 나라들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하면,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들에서는 근대화를 위한 정치혁명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근대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왕과 그 측근들을 잡아 죽이거나 아니면 왕을 자기들의 꼭두각시나 배우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영국에선 찰스1세의 모가지가 날라 가고 나니까 그제서야 분위기가 달라졌다. 물론 얼마 있다가 왕정이 복고됐지만, 신하들이 모여서 왕이라는 놈 모가지를 날리는 선례를 보고 났으니 이제 신하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의회 눈치를 좀 보지 않을 수 없느냐 말이다.
프랑스도 결국 대혁명이라는 것이 루이 16세랑 그 마누라 목을 날리는 데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물론 그 후로도 몇 번 왕정이 돌아오지만 이제 그 어느 왕도 신성한 절대 군주 행세는 못하는 거지. 어딜 감히.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독립전쟁은 결국 7년동안 조지 3세와 싸운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승리(=독립)라고 하는 것은 왕정과 결별한 것이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왕을 죽이고 난 뒤에도 형식적으로 왕정이 돌아왔지만, 미국은 달랐다.
물론 미국에서도 공화국 초기에는 가장 무서운 것이 왕당파들이었다. 미국에 살면서도 여전히 자기가 영국인이고, 자기들은 영국 왕의 신민이라고 믿는 인간들. 이들이 무서웠기 때문에 아예 헌법에다가 미국 대통령은 태어날 때부터 미국인이었던 사람만 될 수 있다고 명시를 한 것이지. 혹시나 유럽의 어느 왕족, 귀족이 미국에 와서 왕당파들이랑 손잡고 왕정복고시킬까봐 걱정이 됐으니.
러시아는 역시 러시아인들답게 화끈했다. 로마노프 왕가의 로열 패밀리들 기관총으로 싹 다 죽인 다음에 시체에는 불을 질렀다. 차르에게 충성하겠다고 각지에서 제정 러시아 장군들이 들고 일어나는 상황에서 혁명이 고꾸라지게 생겼는데 어쩌나? 애들까지 다 그렇게 죽인 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지만, 그렇게 로마노프 왕가의 숨통을 끊지 않았으면 그 후 러시아의 급속한 산업화가 가능했을까?
근대화 세력과 왕정 반동 세력 간에 연민은 없다. 한 체제가 사느냐, 다른 체제가 사느냐 선택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하나가 살려면 다른 하나는 아주 철저하게 짓밟아 버리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고종과 민비 세력들은 어쩌면 자기네 왕당파 구체제 세력의 이익을 아주 철저하게 추구했던 것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지.
일본은 혁명세력이 천황을 자기들 배우로 활용한 케이스다. 혁명의 주도권은 혁명에 성공한 사츠마와 쵸슈의 사무라이 출신들에게 있었고, 메이지 천황은 얼굴마담을 했다고 봐야 된다. 만약에 메이지 천황이 난데없이 고종처럼 자기가 전제군주 되겠다고 하면서 궁중세력들 중심으로 반동분자들을 규합하려 했다면 아마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슬퍼런 메이지 혁명세력들이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두겠나? 혁명세력들은 한때 자기네 동지였던 사이고 다카모리 마저 정한론 어쩌구 하면서 타이밍에 어긋나는 소리를 하자 가차없이 처단해 버렸던 인간들이다.
조선이 근대화를 못한 것은 근대화를 추진하는 세력이 근대화에 반대하는 반동세력, 즉 고종, 민비, 민비 친척들로 구성된 세도가 구체제 왕당파들과의 정치투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들 개화세력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근대화라는 것은 주체세력의 형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엘리트 몇 명이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해서 1-2년만에 이루어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19세기 당시 조선에서는 근대화를 추진할만한 대중적 기반이 너무나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급속하게 세계가 하나의 국제관계로 통합되어 가던 당시 시기에 근대화에 뒤쳐진다는 것은 곧 바로 피식민화를 의미했다.
근대화를 위한 정치투쟁에 패배한 대가는 잔혹했다. 안승일 작가의 이 책 (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은 개화를 추진하다가 패퇴한 세력들의 슬픈 말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나라 사람은 교활하다든지 하는 저자의 인종주의적 편견이 다소 거슬리긴 하지만, 개화파의 비참한 최후가 한 사람 한 사람 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물론 가장 많은 페이지는 그 중의 리더였던 김옥균에게 할애되어 있지만.
이제 우리도 우리 역사를 보다 심층적으로 들여다 볼 때가 됐다. 계몽 군주 고종이 그렇게도 근대화를 추진했는데, 사악한 일본인들이 와서 근대화를 막고 조선을 꿀꺽 삼켰다는 스토리는 너무 진부하다. 그런 진부하고 뻔한 스토리를 왜 만들었는지 의도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제 그보다는 좀 더 자세하게 배우고 가르칠 때가 되지 않았나? 아직도 우리가 국뽕사관에다 낡아 빠진 왕당파 류의 역사관에 매달려 국력을 집결시키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받는 신생 독립 저개발국인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사 시간에 누구도 김옥균과 김홍집 등 조선의 개화파들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지, 누가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말살하고 능멸했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국사 교과서는 그저 조선 말기가 얼마나 근대화의 ‘맹아’들로 가득했는지 설명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알지 않나? 그 얼마 되지도 않는 근대화의 ‘맹아’들을 뿌리까지 다 뽑아 버리고 불질러 버린 것이 누구인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누가 그랬지? 이제 미래가 걱정되면 역사를 좀 제대로 들여다 보자.
페친 장부승님 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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