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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논객 조은산의 시선] ‘명 차르’(펌)

‘악덕 기업가’ 혼내는 장면 TV 생중계한 푸틴
러 국민 “통쾌하다” 열광… 현대판 ‘차르’로
‘일산대교 무료화’ 조치에 일부 주민 환호
약자 돕는 척하는 영웅 행세, 끝은 어디인가

조은산·'시무 7조' 청원 필자

입력 2021.11.05 03:00

 

 

2009년 6월 4일, 러시아 피카료보시의 어느 금속 공장을 방문한 푸틴 총리는 공장 소유주이자 러시아 최대 재벌인 올레크 데리파스카를 마주한다. 이 공장은 가동 중단 사태로 인한 임금 체불 문제로 주민들의 격렬한 항의 시위를 초래했는데, 이를 보다 못한 푸틴이 결국 해결사로 나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기 전까지 왜 아무도 결단을 내리지 않고 바퀴벌레처럼 어슬렁거리기만 한 겁니까?” 서슬 퍼런 권력의 실세 앞에 공장 관계자들은 말 그대로 벌레처럼 오그라 붙었다. 그리고 볼펜을 집어 던진 푸틴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서명이 안 보입니다. 당장 이리 와서 서명하시오.” 그러자 볼펜을 주워 든 데리파스카는 공장 재가동과 임금 지불 내용이 담긴 각서에 서명한다. 이 모든 장면이 티비를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됐고 러시아 국민들은 열광했다. 그 후 그는 러시아 제6대 대통령에 복위한다.

이렇듯 약자의 편에 선 누군가가 강자를 응징하는 모습은 언제나 통쾌하다. 게다가 그 강자가 노동자 착취로 연명하는 자본가라는 사실은 증오마저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곧 선악 구도로 재편성된다. 그런 이유로 러시아 국민은 볼펜을 내던지는 푸틴과 이를 주워 들고 구부정히 서명을 끄적이는 데리파스카의 대비된 모습에 상징적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은 알았을까. 그날 지도자로서 그가 보여준 수많은 모습 중 결국 러시아의 미래로 향한 건 제왕적 권력에 취한 그의 독선뿐이라는 사실을. 총선에서 140%의 득표율이 집계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는 건 물론이고, 그에 맞선 정적과 반체제 인사가 독극물이나 방사성 물질이 녹아든 홍차 따위를 마시고 절명하는 나라는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를 표방한다 해도 분명 정상적인 국가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미 개헌을 완수함으로써 사실상 종신 집권을 향해 가고 있다.

 

돌아와 2021년 10월의 대한민국, 대선을 앞둔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그의 임기 중 마지막 결재 권한을 일산대교 무료화를 위한 공익 처분 통지서에 행사한다. 민자 유치로 건설된 왕복 2400원의 값비싼 다리를 무료로 건널 수 있다는 소식에 수혜 지역 주민들은 환호했고 이로써 일산대교의 관리·운영권은 사업자에서 지자체로 회수될 전망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해 먹어도 적당히 해 먹었어야죠. 악덕 사채업자입니까?” 그러나 그간 폭리를 취했다던 그 사채업자가 바로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라는 사실은 관심 밖의 일이다. 2000억에 달할 것이라 예상되는 보상금의 규모나 그 돈은 결국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오는가에 대한 의문, 적법 절차로 권한을 얻은 민간 투자자의 사업권을 국가 권력이 강제로 회수하는 게 과연 옳은가에 대한 숙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푸틴처럼 약자를 대변해 강자와 맞서 싸운 영웅이므로, 일련의 과정에서 도출된 문제점은 논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 이제 그가 보여준 수많은 모습 중 대한민국의 미래로 향할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의 리더십인가, 추진력인가. 아니면 제왕적 권력에 취한 푸틴과 같은 독선인가.

 

얼마 전, 장사도 나라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이재명 후보의 말에 잠시 여론이 들끓었던 적이 있다. 선한 국가에 의한 선한 규제는 필요하다는 주장이 따라붙었다. 국가 권력의 한계점이 선과 악이라는 모호한 관점에서 규정되려면 먼저 증명 가능한 절대선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절대선은 본 적 없지만 절대악은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세운 가치는 언제나 선이었다. 소득 주도 성장이 그랬고, 탈원전이 그랬다. 부동산 정책이 그랬고, 임대차 3법이 그랬다. 그러나 위선과 독선의 정치에 길든 국민은 그것도 일종의 선이라 받아들일 뿐, 최선의 정치가 도약하는 지점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

거리로 향한 나는 카페를 찾는다. 그리고 그가 꿈꾸는 세상에서 한낱 허가 요청 대상자들로 전락한 자영업자의 커피를 주문한다. 달달한 줄 알았던 이 라떼는 전체주의의 원두에 위선과 독선의 샷을 추가한 듯 매우 씁쓸하다. 그의 논리라면 나의 입맛은 절대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이런 고약한 커피를 판매하는 악덕 자영업자 역시 선한 국가의 힘으로 도태시켜야 옳다. 그는 이미 권력 그 자체를 닮아가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공장 소유주 올레크 데리파스카는 사실 푸틴의 돈줄이자 심복이었다. 결국 짜고 친 고스톱이자 기획된 쇼였다는 점에서 대장동 사건과 판박이다. 러시아 국민은 속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권력의 실체를,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말이다.

 

제목은 한참 고민하다 겨우 쓴다. 성남 마두로에서 경기 차베스를 거쳐, 21세기 차르로 불리는 푸틴처럼, 그도 이제 대선 주자급에 걸맞은 새 별칭이 필요하다. 러시아에 푸차르가 있다면 대장민국에는 명차르가 있다.

이 글은 11월의 첫째 주 금요일 자로 독자 여러분께 다가갈 것이다. 그 후에 내가 만일 보이지 않는다면 나를 찾아서 구해달라. 나는 아마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