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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우크라戰 1년… 자유, 독재와 싸우다(보관용)

자유민주주의 vs 권위주의 독재… 신냉전으로 커지며 장기화

입력 2023.02.22 03:00
멈추지 않는 포성 - 우크라이나군 포병이 동부 도네츠크주 최전선에서 발사한 자주포가 불길을 뿜고 있다. 오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주년을 맞는 가운데 이번 전쟁이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간 대결을 강화해 신(新)냉전 국면으로 본격적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오는 24일 1주년을 맞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각) 미국과 맺은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의 사실상 파기를 선언했다. 푸틴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20일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를 전격 방문, 전폭적인 지원 의지를 밝힌 다음 날 “뉴스타트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미국이 핵실험을 할 경우 똑같이 하겠다”고 말해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푸틴은 이날 모스크바 연방의회에서 국정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이 동진(東進) 침략을 위해, 역사적으로 러시아 땅인 우크라이나를 빼앗기 위해 획책한 것”이라며 “우리는 서방 음모에 맞서 조국과 민족을 지키려 (전쟁에) 나섰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했다. 그는 “전쟁의 모든 책임은 서방에 있으며, 러시아를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당초 일주일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됐던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강력한 저항과 러시아의 잇따른 전략적 실패,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확대가 거듭되며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개전 책임을 부인하고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점점 결말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자료=미국전쟁연구소(ISW) /그래픽=김현국·양진경·김하경

푸틴은 이날 뉴 스타트 파기 의사를 밝힘으로써 유사시 전술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스타트는 2010년 미·러 양국이 핵탄두와 핵 운반체(미사일) 수를 일정 이하로 줄이고, 주기적으로 핵 시설을 사찰하는 것을 골자로 맺은 협정이다. 푸틴은 “(러시아의) 뉴스타트 복귀를 위해선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도 통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서방 진영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결 양상이 되면서 이 전쟁이 2~3년 이상 장기화하고, 우크라이나가 한반도처럼 분단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수도 키이우를 단시일 내에 점령하는 ‘전격전’으로 우크라이나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뒤늦게 동부 돈바스 지역과 남부 헤르손 및 자포리자주를 합병해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빼앗는 전략으로 돌아섰지만, 이 과정에서 동남부 마리우폴과 키이우 인근 부차 및 이르핀에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푸틴 대통령의 ‘에너지 무기화’도 역효과만 일으켰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유럽을 협박해 손발을 묶어보려 했지만, 되레 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극적으로 부각하며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 명분만 만들어주고 말았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에서 쏟아진 막대한 무기와 경제 지원에 힘입어 러시아에 맞섰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는 개전 초기 러시아군의 공격을 이겨낸 뒤 발전소와 변전소 등 민간 인프라를 노린 러시아군의 집요한 공습에도 굳건히 버티며 푸틴의 제국주의적 야망에 맞서는 ‘저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대전차 미사일과 중거리 정밀 타격 무기 등을 동원해 하르키우와 헤르손 등 기존 러시아 점령지를 탈환하고, 동부 돈바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남부 자포리자 등 남은 러시아 점령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990년대 구(舊)소련의 붕괴와 함께 30여 년간 지속된 탈(脫)냉전 시대의 종말과 이로 인한 새로운 국제 질서의 모색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푸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서방 앞잡이가 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인과 러시아 문화를 말살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는 전 세계에 “영토적 야심을 내세운 특정 국가의 무력으로 국경선이 바뀌는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경계 경보를 울렸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중국과 북한, 이란 등이 사실상 러시아 편에 서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독재 진영이 대결하는 ‘신(新)냉전’의 양상으로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약 30년간의 평화 시대를 통해 군비 축소에 나섰던 세계 주요국은 대대적인 국방비 확충에 나섰다. NATO 회원국 30국 중 유럽연합(EU) 소속 21국은 지난해 6월 스페인 마드리드 NATO 정상회담을 통해 자국의 군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대로 빠르게 되돌리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전쟁으로 탱크와 장갑차, 대포 등 재래식 전력의 중요성이 재확인됐고, 장거리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를 이용한 원격전(遠隔戰)이 새로운 전쟁의 트렌드로 부각됐다. 기존 군수 산업은 물론 IT(정보기술)와 결합한 최신 병기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산 탱크와 자주포, 전투기 등이 폴란드와 핀란드, 노르웨이 등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러시아 위협이 급격히 가중되자 핀란드와 스웨덴 등 유럽 대륙의 중립국들마저 안보 전략을 수정했다. 이들은 전쟁 발발 3개월 만인 지난해 5월 공동으로 NATO 가입 신청서를 내고 현재 가입 최종 승인을 위한 튀르키예의 찬성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두 나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별 국가의 주권과 영토 완결성을 무시하는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핵무기 사용까지 거론하는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려면 개별 국가의 군사력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NATO와 같은 집단 안보 체제의 보호막이 필수적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쟁의 영향은 유럽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러시아의 유럽 천연가스 공급 중단과 서방의 대러 제재로 인한 러시아산 원유 수출 제재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이 전쟁 전 대비 2~3배 급등했다.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이 한때 중단돼 전 세계 곡물 가격도 크게 올랐다. 세계 경제는 1970년대 유가 파동(오일 쇼크) 이후 약 반세기 만에 최악의 물가 상승 사태(인플레이션)를 겪었다. 사실상 ‘제로(0%)’였던 미국과 유럽 선진국 정책 금리가 지난 1년 새 4%대로 껑충 뛰면서, 세계 곳곳에서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이 하락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뒤 한 대국민 연설에서 “세계 질서의 운명이 바로 지금, 여기 우크라이나에서 결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방과 연대해 끝까지 러시아와 맞서 싸울 것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러시아 침략을 종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의 흔들림 없는 결의”라며 “우리는 이 역사적 대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