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이 이렇게 타락한것의 가장 큰 이유는 다름아닌 교직자의 여성화다.
여성 교사들이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해서 독버섯들을 키운것이다. 결국 교육 사회 전체가 이렇게 변질되어 부패할 때 까지 방관한 것이다.
알량한 갑질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것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각자의 능력이며 전문가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
인간 쓰레기는 어디에나 있으며 갑질의 유혹은 '인권'이라는 미명으로 누구에게나 뿌려지는 세상이다.
지금은 몰상식이 너무나 만연해버렸으니 국가에서 조금 손을 써보긴 하겠지만 결국 책임자는 교육 전문가 본인들이다.
남탓 하지 마라. 자업자득을 인정하라.
그리고 타인의 불행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선을 넘지 마라. 이만하면 충분히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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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님 글.
외신은 "Nothing Compares 2 U"를 부른 아이랜드 가수 Sinéad O'Connor의 자살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안타까워 한다. 젊은 아들의 죽음의 슬픔을 이기지 못한 선택이었다. 이 노래는 지금도 명곡 중에 명곡으로 꼽히고 유튜브의 공식 뮤직 비디오는 그녀가 얼마나 매혹적인 표정 연기 능력을 갖추었던 흡입력 있는 마력의 재능의 소유자였던가를 충분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한 교사의 자살로 "교권"이 도마에 올라있다. 무력해지는 교단의 모습의 문제가 봇물 터지듯 분출하고 있고 벌써 정치권은 또 입법의 움직임 마저 있다.
인간은 죽음과 삶의 의미를 의식하는 특별한 동물이다. 우리의 한시성을 인식하고 사는 인간의 많은 모습을 다른 동물과 구분한다. 종교의 근간 중에 하나도 이 죽음이라는 일회성 한시성의 공포다. 그래서 지속하는 대중 종교들은 대부분 이 한시성을 부정하는 교리를 갖고 있다. 기독교는 신의 존재를 죽음의 덫을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벗어났다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로 믿기에 세를 얻어 왔다.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인생의 성공을 사후에 역사적으로 기억되는 사람으로 알고 기를 쓰고 그걸 얻으려고 애를 쓰다. 자신의 이름과 명성의 영생을 쫓고있는 게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동물, 생명체는 살아 가려는 에너지로 프로그램 되어 있다. 그 본능적 추동력(Thrust)를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자살이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부활했다는 예수도 부활 후 이 세상에 몇일 살지 않았고 다시 오지 않고 있고 그 이후 2천년의 세월동안 이 기적은 재현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죽는다. 인간은 크게 추가된 뇌의 전두협의 부풀려진 인지 능력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우리 삶의 결론은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가장 고독한 실패, 죽음이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는 준비없이 그것을 맞이한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죽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 죽음의 경험은 스스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해본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의 경험이 전해진 바도 없다.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왔다는 예수도 부활을 강조할 뿐 죽음의 경험에 대해서는 공유하는 바가 없다.
그런 운명의 수동적 결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행동과 궁극적 자유의 실행은 자연의 생존 본능에 따라 서서히 준비없이 죽어가는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삶의 객관적 무게의 저울은 없다. 그래서 재능 있는 작가, 예술가. 대부호들도 자살을 할 때 우리는 당황한다. 정신 질환이라고, 사회적 정치적 실패 (노무현, 노회찬 처럼, 또는 수사 중에 자살하는 경우), 세상은 살아 갈 가치가 없는 부조리한 세상이라는 철학자들 (시몬느 베이유, 에밀 졸란), 경제적 건강의 실패 등등 우리는 자살을 이해하려고 단순 논리로 짐작을 하지만
**** 그들이 왜 살아가는 고통이 죽음의 공포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실행하게 되었는지를 짐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음의 경험을 직간접으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는 '빵(밥)을 굶을 자유는 없다'고 주장하며 복지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한다. 아니다. 거꾸로 빵을 거부하는 자유를 실천하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한 해에 1만 4천여명이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죽음을 정치적 아젠다에 활용하는 일에 너무 익숙하다. 나는 한 교사의 자진을 통해 우리 사회가 또 급하게 사회적 아젠다에 매몰되는 것에 우려를 한다.
특히 나 자신 교육자로서 "교권"이라는 단어에 회의적이다.
교육자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면 다른 서비스업 종사자들처럼 감정 노동자들이다. 서비스업은 사람을 상대로 한다. 진상 고객도 있고 감사하는 천사같은 고객도 있다. 교사의 서비스에 대해 고객들은 부족한 경우 고객들은 불만을 제기할 권리가 있다. 교사의 고객은 학생이다. 교사와 학생 중에 누가 일반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가? 또다른 고객은 학부모들이다. 일부 권력층이 있어도 자녀의 평가 권한과 자식이 학교 생활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 중에 누가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가?
교사다.
일부 정신병적이고 악질적인 고객은 어느 직종이라도 직면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각 직종마다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특별한 권리와 권위가 법적으로 주어지는가? 환자들 불평 때문에 의사들을 위한 "의권"이 주어지고, 창구에서 횡포를 부리는 졸부들로부터 특별법을 만들어 금융종사자들을 보호하는 "금권"을 정의하고 구청에가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민원인으로부터 공무원을 특별히 보호하는 "공권"의 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교육자라고 다 성실하거나 교육적이지 않다. 교육 소비자도 교육 서비스 제공자의 부당함에 항의할 권리를 제한할 수없다. 의료 사고에 대해 환자들이 피해를 예방하고 발생한 피해로부터 구제 받을 권리를 포기할 수 없고 공무원들의 부당한 처사로부터 국민이 항변할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교육자들에게만 왜 교권이 필요하고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느 직업이든 정신 질환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은 즉각 제어되고 통제되어야 한다. 학생의 폭력이든, 교사의 폭력이든, 학부모의 폭력이든 이런 상황은 청원 경찰이 되든 경찰이 되든, 교장이 되든 통제되고 회피되어야 한다. 권력이나 법을 악용해서 교사들을 괴롭힌다면 그것은 학교나 교원의 노조가 자구책을 내놓아야 한다. 교원 노조가 정치적 투쟁과 교육의 이념화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부당한 공격에 교원이 노출되면 노조가 고용한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들이 조력에 나서야 된다. 어느 직장이나 직원이 부당한 공격을 받고 심리적 스트레스가 도가 넘으면 관리자와 조직이 직원을 보호해야 한다.
이는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기대와 어긋난 서비스에 항의하고 피해를 구제 받을 권리가 있어야하고 서비스 제공자도 부당하고 폭력적이고 제도를 악용하는 고객으로부터 보호 받아야 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폭력으로 부터 보호 받을 기본권이지 특수한 직업군에게 특별한 권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육자라는 이유로 특별한 권리를 선언할 이유는 없다. 그런 규제와 보호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이해 집단을 과보호한다.
크게 보면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나 어느 나라나 교육자가 우월적 지위에 있다. 식당 종업원을 위한 특별한 권리 법제화를 할 것이 아니라면 교사들을 위한 교권이라는 추상적이고 권위적인 언어는 폐기되어야 한다.
교사들이 교육자로서 권위를 잃었다면 그것은 공부를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하는 공교육의 붕괴가 근본 원인이지 학생과 학부모가 더 사악해져서도, 학생 인권 조례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교사들의 권위주의 폭력을 감내하며 자라왔다. 당연히 자구능력이 결여된 미성년자인 학생들의 인권은 더 보호 받아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교육적으로" 징계할 권리도 유지되어야 한다.
교실과 교사의 시간을 교란하는 진상 고객들을 신속히 제압하고 격리할 수 있는 학교내 절차와 수단을 갖추면 될 일이다. 다른 나라도 별별 학생과 학부모가 다 있다. 그런데 보편적 직장에서의 안전을 넘는 특별한 교권을 보호하는 법이 있지 않다. 학생과 직원 모두를 폭력에서 보호하는 보편적 법들이 적용되고 교장들이 골치덩어리들을 주도적으로 상대하는 제도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죽음을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정치화하고 활용하는 이 나쁜 습관은 빨리 끊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왜 죽었는지 진짜 이유는 영원히 모른다.
- 페친 이병태교수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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