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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팔레스타인의 역사

<현재  중동 문제의 기원 : 영국의  추악한 이중외교>

ㅡ 팔레스타인 땅의 역사 ㅡ

유대인 ㅡ> 로마 제국 ㅡ> 비잔티움 제국 ㅡ> 초기 칼리파국 ㅡ> 십자군 ㅡ> 무슬림 맘루크 ㅡ> 오스만 제국 ㅡ> 영국 ㅡ> 이스라엘

1. 유대인이 떠난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인이 대대로 모여 살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원래 유대 땅이었으나,
135년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을 상대로 한 반란이 진압된 이후

로마제국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거주를 금지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국외로 이주하게 된다.(디아스포라: Diaspora)

그러다  637년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 세력에게 패하자 이 지역은 아랍인 세력(칼리파국)의 지배를 받는다.

1099년에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십자군 국가를 건설하였고 200년간 유지되었다.

그러나 1291년 맘루크 왕조에게 제9차 십자군이 패하면서 십자군 국가는 소멸하고 맘루크 왕조의 통치 하에 놓인다.

1517년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키면서 팔레스타인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제1차 대전이 끝나갈 즈음인 1918년 영국은 오스만을 패퇴시키고 이 지역에 즉각 군정을 실시하였고,

1920년 국제연맹의 승인으로 영국의 위임통치령 (1920~1948)으로 지배하였다.

한편 19세기 후반 들어 유대인이  '시오니즘' 운동을 전개하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가 시작되었고,

이에 맞서 아랍인의 유대인 배격운동이 격화되었다.

2. 1차대전 당시 유대인과 아랍인을 참전시키고자 이율배반적 약속

1차대전 당시 중동을 둘러싸고 영국은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이중적인 약속을 하였다.

참전하거나 자본을 지원하여 영국을 도와주면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해 주겠다는 약속을 제각각한 것이다.

이는 영국이 그때그때의 전국(戰局)을 유리하게 전개시키면서 전후 중동지역을 지배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영국은 1920년부터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아랍과의 약속(맥마흔선언)은 폐기하고 유대인과의 약속(밸푸어 선언)만 실천에 옮긴다.

이는 추후에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전쟁의 불씨를 만들었다.

1) 맥마흔선언(1915)  : 아랍에게는 왕국 수립 지원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10월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A.H.맥마흔이

샤리프 후세인에게 아랍인들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전후 팔레스타인에 아랍인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약속한 선언이다.
  
2) 벨푸어 선언(1917) : 유대인에게 내셔날홈(거주지) 건설

1917년, 유대 자본을 받기 위하여 영국의 외무장관 밸푸어가 가나안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밸푸어 선언을 하여, 1920년 영국의 공식 외교 정책이 되었다.

유럽의 한 강대국이 팔레스타인 아랍 원주민들이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에 시온주의 운동을 약속한 것이다.

3.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영국은 위임통치기간(1920~1948)중 대규모 유대인 이민을 촉진했다. 그리고 유럽의 나치즘을 피해 많은 유대인이 유입되었다.

팔레스타인 지역 아랍인들은 영국 식민주의와 유대인 이주에 저항하여

1936년부터 1939년까지 파업, 세금납부 거부, 유대인 제품 불매 운동 등 민족운동(반란)을 일으켰고, 영국군은 이를 강력하게 진압했다.

이후 팔레스타인 민족운동은 매우 약화되었으며, 반대로 시오니즘 운동은 활기를 띄게 되었다.

1947년쯤 유대인 이주자가 팔레스타인 인구의 31%, 유대인이 소유한 땅은 팔레스타인의 5.67%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이 해체, 유엔 총회로 계승되면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문제는 유엔이 관할하게 되었다.

1947년 유엔 총회는 영국령 팔레스타인을 아랍지구 48%와 유대지구 52%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가결하였으나

아랍인 공동체와 유대인 공동체가 양쪽 모두 부정적으로 반응했으니, 자연스럽게 유명무실화되었다.

즉, 시오니즘 운동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아랍민족의 독립을 반대하고 아랍주민을 쫓아내어

오직 유대교도만으로 나라를 이루려는 유대인들의 건국운동이므로, 팔레스타인 내 아랍 주민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또한 팔레스타인은 이를 거부했다. 팔레스타인의 56%를 대부분의 비옥한 해안 지역을 포함한 유대인 국가에 할당했기 때문이다.

1948년 5월 14일, 세계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그리고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구의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이 날, 영국의 위임통치 종료와 함께 독립이 되었다.

4. 중동의 화약고 : 아랍과 이스라엘간의 전쟁

이스라엘이 독립선언을 하자 다음날 동시에, 근처의 아랍 군대는 팔레스타인을 침공하고, 이스라엘 군대와 싸웠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의 중동 전쟁을 하는 동안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시나이반도 (1967년 ~ 1982년 사이), 남레바논(1982년 ~ 2000년 사이), 가자 지구와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지역을 부분 합병했지만,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의 국경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요르단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지만,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여전히 이 지역의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