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단상] 한동훈의 길, 희망의 길
한동훈은 길을 말한다.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 우리 한번, 같이 가 봅시다."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엔 다 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입니다.”
루쉰(魯迅)의 소설 '고향(故鄕)'에 나오는 글귀다.
그렇다면 루쉰이 말한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거기에 한동훈의 길도 있지 않을까?
루쉰의 단편 소설 '고향'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도시에서 생활하던 루쉰이 2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소설이 1921년 발표됐으니 아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시골집을 정리하고, 어머니를 도시로 모시기 위해서다. 고향을 떠나기 위해 고향을 찾은 것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그러나 꿈에도 그리던 그런 고향은 없었다. 쓸쓸하고 황량한 마을이 활기 없이 가로누여 있을 뿐이다. 진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도 변했다. 한때 친하게 지냈던 이웃은 '뭐 가져갈 물건 없나?' 두리번거릴 뿐이다. 인사 몇 마디 하고는 가구를 슬쩍 들고 나가기도 했다. 정답던 이웃들은 좀도둑으로 변해 있었다.
룬투(閏土)라는 어릴 적 친구가 있었다. 그는 열한두 살 시절 루쉰의 '작은 영웅'이었다. 바닷가에 살던 그는 바다를 얘기해줬고, 새 잡는 법을 말해줬고, 수박밭에 들어온 짐승 쫓아내는 법을 가르쳐줬다. 조개껍질을 한 꾸러미 가져다주기도 했다. 모든 게 신기했다. 루쉰과 룬투는 친구가 됐고,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이가 됐다.
/어머니가 그의 말을 꺼내자 어렸을 때의 모든 기억이 문득 번개처럼 되살아났다. 나는 비로소 내 아름다운 고향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룬투 역시 달라져 있었다.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고, 깊은 주름살이 파여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아주 얇은 솜옷 하나만을 입은 채 온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루쉰 기억 속의 소년 룬투가 아니었다.
'고향'은 그들의 만남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멈춰 섰다. 얼굴에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이 나타났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나으리...!"
나는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우리 사이에 이미 슬픈 장벽이 두텁게 가로놓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룬투는 왜 그렇게 삭막하게 변해있던 걸까.
/가혹한 세금, 군벌, 관리들의 탐욕, 이 모든 것들이 그를 괴롭혀 하나의 나무 인형같이 만든 것이다./
당시 중국은 군벌의 시대였다. 정부는 백성 뜯어먹기에 바빴다. 가렴주구(苛斂誅求)에 백성의 생활은 각박해지고, 군벌의 횡행(橫行)에 삶은 도탄에 빠졌다. '작은 영웅' 룬투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루쉰은 룬투에게 무엇이라도 주고 싶어 했다. 그는 불 때고 남은 재를 달라고 했다. 거름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러마 했다.
/양얼 아지매는 그저께 잿더미 속에서 십여 개의 그릇을 찾아내고 이리저리 따져보며 말한다. 룬투가 묻어 놓은 것이며, 재를 가져갈 때 함께 집으로 가져가려 한 거라고 결론을 지었다./
가혹한 정치가 선량한 백성을 좀도둑으로 만들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루쉰의 모든 소설이 다 그렇듯, 그는 '고향'에서도 희망을 말한다.
/나는 희망한다. 우리 후대는 더 이상 나처럼 사람들끼리 격절되지 않기를... 나처럼 괴롭고 떠도는 삶을 사는 것도 원치 않으며, 룬투처럼 괴롭고 마비된 삶을 사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괴롭고 방종한 삶을 사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루쉰은 지금 비록 서로 괴로움만 주는 사회에 살지만, 훗날에는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희망한다. '후대는 마땅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고,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소설 '고향'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함께 만들어야 할 길, 그건 희망의 길이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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