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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2024의료대란 총평 (펌)

< 의료대란, 앞으로의 전망 - 3/30 >

정부가 2/6 의대증원 2천명이 포함된 필수의료정책패키지(필정패)를 발표한 후 2월 중순부터 2월 말 사이 1만 2천여명의 전공의 대부분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진료실을 떠났다.

전공의들의 업무 비중이 높았던 대학병원에서는 진료에 큰 차질이 발생했다. 진료공백이 발생하자 정부는 병원측에는 사직서수리금지명령을, 전공의들을 향해서는 업무개시명령과 진료개시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전공의들에게 의사면허를 정지 또는 박탈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의대교수들은 정부에게 필정패의 조정을 요구하는 한편 전공의들의 복귀를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일체의 조정이 불가함을 밝혔고, 전공의들이 진료실을 떠난지 1개월이 지난 3월 25일부터 이번에는 전국의 의대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대교수들은 또한 전공의들이 떠난 이후 빈자리를 메우느라 지속해왔던 과도한 업무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며 4월 1일부터 주 52시간으로 단축진료를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대한민국의 근로기준법에는 주 40시간이 최대 근로시간이다)

우리나라는 대학병원과 대형병원의 쏠림현상이 심한 나라다. 전공의들이 근무하는 수련병원은 대부분 대학병원이거나 대형병원이어서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진료에 큰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료가 지체되는 상황에서 많은 환자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는데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의료 상황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1. 정부의 착각

정부는 필정패를 발표할 때부터 의사들의 거센 저항을 예상했다. 이것은 2/6 발표 당일 전국의 50개 수련병원에 현장점검을 위해 행정요원들을 파견하고 5개 대형대학병원에는 경찰을 배치시켰으며 2/6 당일에 전국의 시도의사회장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정부는 또한 전국의 1만 2천여명의 모든 전공의들의 핸드폰 번호를 확보해두었는데 이 역시 즉각적인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기 위한 조치였다. 정부는 필정패 발표 직후부터 의사들의 저항은 곧 면허박탈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전공의들을 포함한 의사들의 반발을 각종 명령 등의 다양한 법적 제재수단을 이용하여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전공의들과 교수는 아예 직장과 의업을 포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 법적으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대량 사직을 일종의 파업으로 보고 강제수단을 동원했지만, 전공의들은 실제로 사직의사를 갖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필정패가 실현될 경우 마주하게 될 의료제도 하에서는 의사를 하는 것이 무가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필정패는 최선의 의료가 아닌 경제적 의료를 강제하는 제도)

2. 국민의 오해

정부는 필정패를 발표하기 수개월 전부터 여러 언론을 통해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의사가 부족하다는 여론을 만들어냈다. 사실과는 다른 내용들이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남아돌고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떠난 것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정치적 목적으로 의대증원 카드를 꺼내들었고, 정부는 의대증원의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의대증원을 외쳐온 좌파학자(그는 과거 의대증원 반대론자였다)를 동원하고, 언론을 동원해 여론을 형성했다. 국민들은 의대증원이 의료접근성과 의료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의대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국민은 의사들의 저항을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력한 공권력으로 의사들의 저항을 잠재우면 떠나간 전공의들이 돌아오고, 의료는 원위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3. 대통령실과 정부가 저지른 크나큰 실수

예상했던 것보다 의사들의 저항이 거셌지만 미리 여론작업을 해두었던 정부는 초기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의료계-정부간의 의정갈등을 국민과 의사와의 싸움으로 변질시키면서 의료계를 억압하는 강압정책을 썼다. 그 덕분에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반짝 상승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에 고무되어 의사들에 대한 강압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그런데 여론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시작한 의사의 악마화 작업은 의사들의 더 큰 반발을 불러왔다. 의사에 대한 악마화 작업은 의사들이 돌아올 다리를 불태운 것과 같았다. 의사들은 좌절감, 허탈감, 상실감을 경험하게 되었고 사명감의 소실로 이어졌다. 전공의들의 대량사직이 의대교수들의 대량사직으로 이어지게 된  배경에는 이 ‘의사의 악마화 작업’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대통령실은 ‘2천명 증원계획에 변함이 없다’고 못박았다.


4. 현재 상황과 전망

1) 의료대란은 짧은 시간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필정패가 어차피 총선용으로 시작된 것이니 총선이 지나면 정부입장에 변화가 올 것이고, 그러면 의료대란이 종식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의료대란은 이제 고작 시작단계다. 지금 대통령실의 일부 비서관들과 정부측 인사들은 필정패 중에서 대표적인 정책인 2천명 의대증원이라는 계획이 무모한 계획이고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정책결정자인 대통령은 어떤 일이 있어도 2천명이라는 숫자를 사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2천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하고 있는 대통령의 의지는 바뀔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그런데 의사들은 의대 2천명 증원이 가져올 의학교육현장의 혼란과 질 저하라는 결과를 뻔히 알고 있다. 이것을 수용하는 것은 의료의 질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요구이기 때문에 의사들 역시 물러설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에게는 정치생명이 달린 일이 되었고, 의사들에게는 의료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되었다.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치적 운명이 달린 대통령과 의료의 가치를 지키려는 의사의 사명이 충돌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조기 타결의 전망을 어렵게 한다.

2) 대통령과 여당은 정치적으로 참패하게 될 것이다.

의대정원 이슈로 발표 초기 잠시 올라갔던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상승도 이제는 크게 꺾여 빠르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제 총선이 열흘 남은 상황에서 이렇다 할  반전의 여지도 없다. 지지율 하락의 이유에는 다른 이유도 있겠으나 의료대란 관련 이슈가 크다. 그 첫째 이유는 의료대란이 길어질수록 국민의 피로도가 증가하게 되고, 사태를 이렇게까지 악화시킨 책임을 묻는 화살이 정부여당을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지도 하락의 둘째 이유는 대통령과 여당이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을 가진 12만명의 의사직군을 잃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믿었던 대통령과 여당으로부터 당한 배신의 상처는 매우 컸는데, 의료대란 이전 약 80%에 달했던 의사 내 여당의 지지율은 의료대란 이후 1%로 떨어진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이유는 정부가 내세웠던 주장의 허위사실과 근거없는 2천명이라는 숫자에 대한 집착의 의혹이 시간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3)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데, 해결이 되어도 전공의는 일부만 돌아올 것이다.

전처럼 사태가 해결되면 전공의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가장 큰 이유는 미래의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를 통해 필수의료를 할수록 정부과 국민들로부터 노예취급을 받게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전공의들 중 상당수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사명감을 상실했다. 실제로 그만두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던 필수의료정책패키지가 오히려 필수의료를 근본부터 무너뜨리게 만드는 폭탄이 되었다. 모든 난제들이 조정되고 해결되어도 예전의 자리로 복귀할 전공의들의 비율은 많게 보아도 80%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문제는 빈자리들이 대부분 필수의료 분야라는 것이다.

4) 2024년은 대한민국의 의료가 초토화된 해

12만명의 현직 의사들은 2024년 2월 정부가 강행한 조치들로 인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정부가 필요에 따라 수많은 명령을 생산해낼 수 있고 이 명령들은 국민의 생명권이 헌법에 보장되어있다는 이유로 의사들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권력을 가진 정부가 공권력으로 의사들을 통제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료의 가치는 권력에 의해 손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정부 주도의 ‘의사의 악마화’ 작업이 국민에게 손쉽게 먹힐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과 국민의 비난으로 입게 된 상처는 의사들에게 분노 외에도 허탈감과 근원적 상실감을 안겨주었고, 의업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감을 안겨주었다.

필수의료분야를 중심으로 전공의들의 영구이탈로 인해 앞으로 수년간 필수의료분야의 공백상태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이탈로 인한 여파는 단순히 비어있는 시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전공의들은 신분이 피교육생이지만 아랫년차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단절은 아무리 짧아도 수년의 공백을 초래하고, 이것은 장기적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이 지금 의사들이 겪고 있는 분노, 허탈, 사명감의 상실이 의대생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90% 넘는 의대생들이 휴학계를 제출했고 이들은 의사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자신들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필요의료를 외면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5) 장기적으로 개악이 개혁의 단초가 될 수도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오랜 기간 낮은 의료수가를 의사들의 노동력으로 보전해왔는데 그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으로 바뀌게 되었다. 사명을 권리보다 앞세웠던 의사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사명감을 상실하게 된 동시에 개인의 권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 동안 사명감 때문에 몸을 혹사해가며 진료에 매진해왔고, 그런 진료를 강요해왔던 관례는 더 이상 통용되지 못할 것이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휴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사직서 제출 전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교수들의 주 52시간 근무는 그들로 하여금 “이것이 정상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할 것이다. 어찌 보면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필정패는 악법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악법을 통해 의료진들이 그 동안 ‘불필요하게 희생을 해왔고, 그 희생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며 권력이 필요에 따라 의사면허를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의료는 2024년을 기점으로 OECD의 평균을 향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OECD 평균에 비해 매우 우수한 의료접근성, 우수한 치료결과, 짧은 수술대기시간, 낮은 의료수가 등은 OECD 평균치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 동안의 의료제도가 국민만 살고 의사들이 죽어나가는 제도였다면, 앞으로는 국민의 희생이 늘고 의사들의 생활은 편해지는 방향으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싸고 좋았던 2024년 이전의 대한민국 의료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ㅡ노환규 전 의협회장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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