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두뇌 깊숙히 새겨진 날짜가 두개가 있다. 하나는 첫사랑에 빠진 날이고 (버스에서 내 가방을 받아주던 6.18) 다른 하나는 과외가 금지된 오늘이다. (7.30 교육개혁조치) 그만큼 인생에 큰 자극이었나보다싶다. 일년 내내 잊다가도 그날만 되면 저절로 생각이 난다. 매일 새벽 늦게까지 학원 숙제하느라 고생하는 나날들이 일순간에 사라진다는 그 느낌은 감옥에서 갑자기 해방된 장기수 기분이랄까? 웃음도 안나오는 그냥 허탈한 심정이었다. 그 이후 자정이면 잠자리 들수있었으니 이래도 되는지...물론 학력은 그만큼 떨어졌겠지.
이런 조치가 내 인생의 어떤 전환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것은 좋은 대학 갈 놈들은 다 간다는 것이다. 결코 교육 시스템 때문에 인생이 쉽게 안바뀐다고 본다. 물론 일부는 덕을 봤을것이고 일부는 그 반대이겠지만 인생이 원래 그런것을 어쩌겠나. 공부 잘하는 놈은 인내심이 강하고 인내심이 강한 놈은 마시마로를 바로 먹어치우지 않는다. (물론 일부는 책에 줄하나 안긋고 눈으로 외우는 타고난 괴물도 있긴하지만 그게 바로 행복은 아닐거다. 아니겠지? 맞나?)
대학교에 들어와서 내가 얼마나 많은 혜택 속에서 공부해왔는지 깨달을수 있었다. 가난해서 소팔아온 친구도 있고 지방 촌에서 술꾼 아버지 피해서 올라온 친구도 있고 9형제중 막내인 친구도 있는등 나와는 비교도 안되는 가정환경이 많이 보였다. (물론 더 좋은 환경도 많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좋은 부모님 만나 최상의 환경속에서 공부를 할수 있었다. 어린시절 일본에서 3년 넘게 살아보기도 했으니 나는 상위층이었다. 그런데 결론은 뭐 so so.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한 이들과 같은배를 타고 있으니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부모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게다가 대학생활을 그런 친구들 보다 더 형편없이 보냈으니 최선을 다해주신 부모님께 뵐 면목이 없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그때는 정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하여간 이 모든것이 다 내 현재의 존재이유니 뭘 어쩌겠나?
그래서 솔직히 내 귀한 3명의 아이들이 자기일 잘 해주는것이 항상 고맙고 간혹 어쩌다 속을 썩혀도 전혀 놀랍지 않다. 내가 부모님께 한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고교 졸업 이후로 친구들의 많은 새옹지마 인생 소문을 들었지만 다 각자의 운명이니 감내하면서 잘 살아가길 기원할뿐이다. 친구들아 고교 졸업 50주년때 까지 홧끈하게 살다 가자. 이또한 지나가겠지만 상식이 파괴되어가는 현실 속에서는 살아남는것이 곧 이기는 것이겠지. 정의와 상식은 불변하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싶다. 추종자들의 뒤늦은 무책임한 후회는 듣고 싶지않지만 완장찬 패거리들의 말년은 꼭 보고 싶다.
오늘까지 건강하게 살아있는 과한 축복에 감사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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