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잠시 거주할 때 그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세입자가 2개월 이상 월세가 밀리면 세간 다 끄집어내어 정원에 던져놓고 열쇠를 바꿔버렸다. 예전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 노숙자들이 쏟아져나온 것도 이해가 간다. 애가 있건 노인이 있건 봐주는 게 없다. 오죽하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소설은 집이 없어 차에서 살아야 하는 가족 이야기를 다뤘을까.
이렇게 보면 참 사람 살 데가 못 되는 곳이지만, 다른 편에서 보면 부자들의 기부 행위나 자선 활동, NGO등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도 미국이긴 하다. 노숙자도 많이 나오지만, 그 노숙자를 위한 자선 활동도 활발하고, 경제가 살아나면 그 노숙자들도 상당수 곧 사라진다. 참으로 다이나믹한 곳이다.
그런 자선이나 NGO활동 뒤에는 대부분 "종교"가 있다. 국가는 정의를 구현하고, 종교는 사랑을 구현한다. 인간의 삶에는 정의와 사랑이 모두 필요하다. 미국 뿐 아니다. 레미제라블의 주제는 자벨로 대표되는 국가의 정의 대 미리엘 주교로 대표되는 종교의 사랑이 함께 어우러지는 화음이다. 물론 종교가 궁극적으로 승리하지만 장발장 역시 억울하기는 해도 국가 권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국가(사법)이 정의가 아닌 사랑을 구현하려 하고, 종교가 국가의 직접적 통치나 정책에 끼어들 때 그 결과는 참혹하기 마련이다. 성경은 여기서도 진리를 이야기하는데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야" 하는 것이다.
조선이란 사실 정교일치 사회였다. 국가는 理, 또는 절대선을 구현하려는 조직이었고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몸과 마음 닦기를 거의 강제했던 나라였다. 근대 국가의 모토가 "함께 돈 벌자(common wealth)"였다면 조선의 모토는 "함께 깨닫자"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종교가 국가의 절대권력을 입게 되면 그 결과는 언제나 끔찍한 타락이다. 서양 중세도 그러했기에 종교개혁을 통해 카톨릭을 깨고 근대를 출범시킨 계몽주의자들은 국가 권력을 종교로부터 칼같이 분리시켰던 것이다.
의료도 마찬가지고 복지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의료에는 숱한 구멍들이 많지만 그 구멍들은 자원봉사자들과 적자 감수하는 종교계 병원들이 메우고 있다. 그것이 그 사회가 망하지 않고 돌아가는 이유이다. 국가는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약속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저 좀 아프지만 "공정한 사회" 정도가 최대치일 것이다. 어렵고 아픈 부분은 종교가 끼어들어 해소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국가도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고, 종교도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른다. 국가는 선을 실현하는 기구가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기구다. 종교는 정책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 정의의 실현 과정에서 소외되고 떨어져 나간 이들을 보살피는 기구다. 사회라는 게 어쩔 수 없이 그런 부분들이 생겨나니까 그런 것이다.
월세 두 달 이상 밀리면 쫒겨난다는 계약서에 서명했으면 국가는 그 계약을 준수하기를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다. 그리고 교회는 그렇게 쫒겨난 사람들을 보살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세상에는 이 둘이 모두 필요하다.
그래서 성직자 종교인들이 실물 정치나 정책에 끼여드는 것 절대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권력 잡으면 이 땅에 천국을 만들어줄 것인양 거짓말 하는 정치인들도 절대 반대한다. 각자 자기 할 일들을 열심히 하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ㅡ페북에서 귄복규 교수님글 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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