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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낙서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살아가면서 학창시절 친구를 만나면 즐겁다. 전혀부담없이 바로 친해질수 있다. 공통적인 추억이 있는이유도 있겠지만

그당시 사고 방식으로 대해도 누가 흉볼사람이 없어서가 아닐까? 교양이나 체면의 굴레를 벗어나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수준으로 만나면되니 얼마나 편한가?

 

요즘은 사회가 이상해서 지금의 잣대로 100년전을 재단하고 정죄한다. 자신의 못난 점은 숨기고 무한한약자코스프레 경쟁만한다. 아니 경쟁이라는 탈을 쓴채 일방적인 약탈이 자행되고 있다. 

정신승리로 자신들의 무지와 몰지각성을 덮어두고 타인의 소중한 사탕을  짝퉁 정의의 이름으로 더 뺏으려고 혈안이다. 심히저 칼로 찌르면서도 죄책감을 못느끼는 동물같은 인간들이 사방에 넘친다.  우리는 거짓말을 안한다는 절대 선이라는 오만에 빠져 마약에 취한 추태를 알량한 단도 하나를 들고 뒷골목을 활보하고 있다. 내게는 그들의 황망한 말년이 보이는데 자신들은 볼 수 없는 것일까? 떼 쓰는 어린아이는 이쁘기라도 하지 이건 완전히 이성의 극한 퇴행을 적나라하게 보여다. 인간 말종의 결정판들이다.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이렇게 한심하게 아동을 학대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안받는 때가있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수준을 조금 벗어났을까?) 

그때는 그게 상식ㅡ 용인된 일탈ㅡ이었을것이다. 현재의 상식적인 자신의 위치를 인정 못하고 이성을 잃으면 결국 세상의 낙오자가 된다.

바보일까? 아니면 이판사판의 막장 인생일까?

 

불행했던 여배우 주디 갈란드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