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담배맛을 본 것은 고3여름방학때다. 주위의 친구들이 피워서 한번 얻어피워 봤다. 입담배를 피니 이놈들이 비웃어 시키는 대로
연기를 마셔봤는데 엄청나게 괴로웠다. 머리도 어지럽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기침도 수없이 했다. 그 이후 담배란 정말 백해무익한 것이라 단정하고 멀리했다. 사실 고등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놈들이 담배도 피우고 포카도 매일 하니 신기하기도 부럽기도했다. 예나 지금이나 선천적으로 머리 좋은 놈들은 있다.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어린 혈기에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인생 꼬인 친구들도 꽤 있었다. 물론 지금은 다들 나름의 위치에서 멋지게 살고있으니 결국 꾸준하게 노력하는것이 IQ 못지않게 중요하긴하다. 행복이 성적순은 절대 아니니까.
( 과거 의대교육 )
술도 처음엔 얌전히 마셨다. 오히려 맥주 500cc도(500cc가 500원 할때다) 잘 못 먹어 연습할 정도였다. 담배도 예과 2학년 전방교육( 대학생들이 전방으로 체험 학습 1주일간 가는 과정. 지금은 아마 이해도 안가는 과정이겠지) 을 가서도 조교들이 “ 일발 장전!” 을 외쳐도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수십명이 떼로 담배를 피우는 상황에 나 역시 할 일 하나 없는데도 안 피웠다. 그랬던 내가 담배의 포로가 된 것은 해부학 실습때 부터이다. 밤 10시까지 계속되는 실습과 몸에 밴 포르말린 냄새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는 해체된 해부실습 인체들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었다. 술도 급격히 늘었다. 그러면서 괜한 멋과 분위기에 젖어 항상 내 주머니에는 궁한 용돈 관계로 싸구려 담배가 있었다.
그 당시 청자를 피웠으니 내 폐가 많이 망가졌겠지만 그나마 등산하면서 많이 희석되었을거라 믿고 있다.
( 담배 피는 스트레이치, 애드색빌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 이때만 해도 답배는 지식인의 상징이었다 )
그 이후로 수없이 금연을 시도했다. 길게는 1년 까지도 성공해봤다. 군의관 시절 강릉으로 무장공비가 넘어와서 강원도에서 2달간 야영할때도 금연은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예기치 못한 아주 사소한 자극으로 쉽게 무너졌다. 세상에 제일 쉬운것이 금연이라 농담하면서 수없이 반복 시도했다. 사실 요즘도 담배를 몇일 안피우다 피면 머리가 띵 하고 약간 어지럽다. 그러니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는 뻔하다. 폐 수술 하는 친구들은 흡연자의 딱딱한 폐를 수술하면서 결국 금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다. 해외의 담배갑에 흉한 폐암환자 사진 붙어 있는 것 보면 금연을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끊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쉽지가 않다.
어려운 케이스의 환자 수술 후 기분좋은 담배도 있고 수술 환자가 안좋을 때 골방 들어가서 여러 책을 보면서 고민속에 피우는 담배도 있고 술자리의 맛난 담배도 있다.
사실 다 맛의 차이가 있을 뿐 정신 건강에는 분명히 도움된다.
하지만 이제 진지하게 금연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굳이 따지면 특별한 동기는 없지만 때가 된 듯 한 느낌이 든다. 귀하게 약속한 것도 있고.
이제 내가 50대 진입한다. 어제 기사에 대한민국국민의 암 발생율이 35%라 하니 10명중 3명은 암을 만난다고 미리 마음 준비를 해야 할것같다. 하지만 10년 생존율이 50% 가 넘는다 하니 감기 처럼 그냥 암에 걸렸다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실 어처구니 없는 사고사도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양호하다 싶다. 그래도 내가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해야지 안그러면 후회가 좀 될것이고 괜히 막판에 추한 꼴 보이고 싶지도 않다.
금연한 지 꽤 되었는데 폐암 걸린 것과 흡연자로서 폐암 걸리는 경우는 최소한 주위 반응이 다를 것이다. 이왕이면 뽀대있게 암에 걸려야지 않겠나.
50까지 건강하게 살아 결혼하고 아이들도 키우고 사실 고맙다. 내가 이룬 것 이상으로 복받은 것이다. 이제는 관리 잘하면서 내실을 기해야겠다. 더 이상 위는 보지 말고 내 주위를 멋지게 가꾸어야 겠다. 특히 빈 머리와 가슴 좀 채워야할 것 같다. 영화도 번역없이 보고싶고 한자도 배워 고전을 원어로 음미하면서 보면서 지혜를 배우고 싶다. 여러 종교를 알아보고도 싶고 내 가족만을 위한 편한 여행도 하고 싶다.
30대 진입은 하루 2-3시간뿐인 수면이 연속되는 정형외과 레지던트 수련하면서 귀한 과정인줄 인식 못하고 젊은 혈기 속에서 넘어갔고 40대 진입은 병원 개원해서 1년 365일 휴일도없이 원장으로서 경영하는 재미에 파묻혀 살면서 어느 순간에 뒤돌아보니 이미 한참 들어와 있었다. 이번 50대 진입은 생각좀 하면서 진지하게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우리 나이면 벌써 대학병원 과장급이고 메스컴에 명의로도 오르내릴 때다. 난 결국 그런 종류는 아니니 개원가의 의사로서 이제 내 취향대로 내 수준에 맞게 삶을 가꾸려한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금연을 하자. 일단 금연하고 내년 대학 강의를 충실히 한후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면 국립 박물관의 수업과정을 들어가야겠다. 운동을 해서 과거의 근육을 되찾고 해외 봉사는 좀 줄이면서 가족 여행도 매년 한번씩은 해야겠다. 한 가지씩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보자. 이번에는 생각좀 하면서 세월의 담을 그럴싸하게 넘어가 보자. 저 넓고 성숙되고 은은하지만 나름 화려한 50대의 광활한 들판 세계로.
하체의 힘이 부실해 질수록 상체의 노련미는 강해지고 머리의 지혜는 성숙되리라 믿는다.
어짜피 인생에는 약간의 뻥이 있어야한다.
가족간에도 에이스 카드는 남겨 둬야한다.
( 짝퉁의 성인경지에 도달한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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