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몸을 이용한 활동적인 것이 좋다. (대학 시절 유일한 A+ 가 체육이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도 날씨가 좋으면 켐퍼스 벤치에 앉아 독서하는 것 보다는 혜화동 학교에서 여의도 집까지 가방을 매고 투벅투벅
사색하며 걷길 잘했다. 최소 3시간 이상의 거리니 지금 그렇게 하면 몇일 몸살 날 일이지만 그때의 젊은 혈기는 방출할 곳이 없어서 난리 발광 수준이었다.
그러던 내가 최근 몇 년간 책을 탐독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작은 기쁨을 느끼고 있다. 기껏해야 의학 서적을 환자 때문에 찾아보는 수준이거나 신문 자세히 보는 수준었는데 요즘은 인문학을 두루두루 본다. 가장 간편한 에세이부터 역사나 그리스신화쪽이 좋다. 내 취미를 물어보면
‘역사‘라고 조용히 답하고 싶을 때도 있다. 현학적인 허세를 위한 것일 지도 모르지만 마음에 감동이 오는 것 보다 머리에 지식이 쌓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사실 지식이 먼저 쌓이면 금방 잊혀지지만 마음의 감동을 거친 지식은 오래도록 남는다.
내 취향에는 법정 스님의 모든 책들 중에서 (템플 스테이 주제의 작문 부상으로 전집을 선물 받았다. 가문의 영광) 최근 설법하신 모듬 집 3권이 좋고 김난도 교수님의 책과 같은 편한 에세이가 좋다. 법정 스님것은 그렇다 치고 김난도 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나 보다는
아들 또래를 위한 것인데 오히려 내가 몇 번을 읽으면서 줄까지 치니 아들이 뭐라 한다. 이번에 신간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역시
내가 먼저 주문해서 본 것으로 먼저 읽어보라 말하니 아들 형규는 그런다. ‘어짜피 몇 번 보면서 줄 그으실테니 저는 그것 보면되요‘라고.
내 수준은 아들 수준인가보다. 그냥 속편하게 순진하다고 억지로 믿어야겠다.
책 속에도 나왔지만 이런 글을 가볍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깊이 있는 책만 읽는 고상한 사람들이 있다. 가식적이기도 하고 진실되기도 한다. 괜한 힐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신변잡기 같은 내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솔직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인생을 알차게 보내고 있는 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 용기에는 가산점을 주겠다.
이번에도 내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보다 약간 더 젊은 - 10~15년? - 사람들이 대상인 내용이 주류지만 내게도 감흥이 왔고 내 나이에
해당 되는 내용들은 다 동감했다. 무엇보다 제목을 너무나 잘 선택했다.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된다>니 얼마나 내 마음 깊은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가? 나처럼 평범한 이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는 제목이다. 항상 쉬운 단어로 편하게 읽게 하면서도 감동으로 마음을 적셔주는 탁월한 글 솜씨는 참 존경스럴고 부러울따름이다.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한 지식과 지혜가 충만하니 글로서 표현이 저절로 되는 것이겠지. 과거가 꼬인것은 나와 비슷한 면이 있어 더 정이 간다. 물론 나보단 훨씬 더 잘나셨지만. ^_^
내 맘에 와 닿는 글들을 정리하면 대강 이렇다.
-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데..’ 하는 어쭙잖은 기득권들을 전부 다 내려놓을 수 있다는 스스로의 결의가 따라준다면
우리 인생은 리셋이 가능하다.
- 포기는 두려움을 없애주지만, 희망도 함께 지운다.
- 어른이란 연령, 혼인, 선거권, 소득, 세금 같은 어떤 조건을 갖추었을때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존재로 성숙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 어른이라도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며 생애를 마치며 스스로 온전히 어른이라고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한 인생이다.
- ‘남의 탓이라 생각하면 우산위의 눈도 무겁고,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등짐으로 짊어진 무쇠도 가볍다.’
- Amor Fati ( 네 운명을 사랑하라)
- 운명적 삶의 굴레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며 어른의 성찰이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납득 시키는 것이다.
’ 자신이 될 수 있는 최선의 자기가 되도록 노력하는 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두가지다. 하나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꿈이 이루어져버리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
- ‘사랑하지 않을 것이면 떠나고 떠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라’
- ‘self marking 하면서 자신을 꾸준히 성장 시켜라. 그것이 곧 삶의 기쁨이다. ’
- 인생에서 대운을 받으려면 네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누구나 인생에서 두세번의 대운이 찾아오는데 얼마나 잘 준비 했느냐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운의 크기가 달라진다.
1) 말이 적어야한다. 2) 수식어가 적어야한다. 3) 얼굴색이 좋아야한다.
4) 신발은 가지런히 놓아야한다. (기본에 충실해야한다)
- 행복하려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조화가 중요하다.
- ‘결혼 생활에는 많은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독신생활에는 즐거움이 없다’
- ‘누리는 미혼의 자유가 필연적으로 나중에 누릴 장년의 자유를 대가로 요구한다’
- ‘하나의 연극인 현대의 삶에서 가면은 우리의 본성이라기보다는 되고싶어하는 자아에 가깝다.
가면을 바꾸는 것은 다중인격자가 아니라 능숙하게 사회를 살아가는 하나의 역량이다.’
-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좀 더 유연해져야한다. 나는 이래야 하는데... 하는 고정된 자아관념에 너무 집찹하다보면
가면과 맨얼굴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괴리가 생길지도 모르니 뱀이 제때 허물을 벗지 못하면 죽는 것처럼
자아도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벗어야하는 허물과 같은 것이다.’
- ‘어머니가 사랑하는 것은 아들이 아니라, 아들 속의 자신이다 ’ (니체)
- ‘지금 자라고 있는 불만이 혹시 누군가를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닌가?’
- ‘어떻게 살든 삶의 권태는 필연이다’
- ‘결핍이 가져다준 겸손함’ -지병이나 약점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꾸준히 자기를 관리해가는 겸손함,
삶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진다 싶을때 우쭐하지 않을 수 있게 경보음을 삐삐울려주는 과속 방지같은 겸손함.
- 종종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더 큰 해악이다.
- ‘인생의 반환점을 돌며 보아야 할 그 꽃이란 내가 이루지 못해 아쉬운 것들이 아니라,
아직 내게 남아있는 그 소중한 것들이다.’
근데 다시 돌아보니 책이 간단하긴 하다. 금방 리뷰가 된다. ^_^
그래도 좋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니까.
- 김난도 교수님께 감사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