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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떠난 친구 영미를 생각하면서


난 초등학교 3학년때 일본에서 여의도로 전학을 왔다. 입는 옷과 학용품 그리고 말투가 다 이상해서 신기한 동물 취급 받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와 똑같은 부류의 아이가 있었다. 동갑이면서 나보다 몇 달 더 일찍 일본에서 온 여자아이였다.

같은 반이 아니라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내가 일본에서 자주 보던 스타일의 옷을 입는 친근한 아이였다.

초겨울에도 반바지 입고 다니는 것은 나와 비슷했다. 일본 오사카에서는 겨울에도 별로 안추워 반바지를 입곤했었으니까 말이다.

김영미라는 같은 이름을 갖은 친구도 있어서 그 친구는 ‘일본 김영미’ 혹은 ‘하얀 김영미’라고 불리웠다. 둘다 이쁜 친구들이라 남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나는 시범아파트 12동에 살았기 때문에 항상 등교시 그 친구가 사는 14동앞을 지나면서 간혹 마주치곤 했지만 그 당시에는 요즘 처럼 편하게 말 나눌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머니끼리도 왕래가 있으셔서 간혹 건너오는 소식을 듣곤 했다. 주로 그 친구 성적 좋은 이야기...

대학 들어가서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한번 이야기 나누다보니 서로의 공통된 기억이 많은 것을 느끼고 신기해했었다. 그 이후 소식만 들었다. 서울대 자퇴하고 카대 의대 본과 1학년까지 다니다가 다시 서울대 들어갔다고... 그 당시 머리 엄청 좋은 아이라 생각했던 기억 뿐이다.
그리고 십수년이 지나 온라인을 통해서 다시 고교동창들이 만나기 시작하면서 졸업 20주년 행사를 갖게 되었지. 정말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한국과 미국 유럽등에서 실시간으로 체팅을 하고 20년만에 만나도 바로 어제 만나 헤어졌던듯 대화가 줄을 이었었다.

이것이 동창의 매력이다 싶었다.

그때도 영미는 카리스마있는 리더답게 남자들을 잘 이끌었다. 아직도 미혼의 호텔리어로 잘 나가는 멋진 커리어우먼이었다.

우리 동창 홈페이지에 날마다 올려주던 금일의 명언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수 있게 해주었다. (아마 부하직원들을 고생했을듯 ^_^)

                                      ( 십시일반 동창들이 모아준 너무나 작은 병원비에도 다정하게 편지를 보냈던 친구)

 

그 이후 친구의 결혼과 이혼의 소식을 들으면서 내 기억의 한 구석에 조용히 있었는데 작년 겨울에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암으로 수술 후 입원중이라는 것이다. 일년전 모친상에서도 멀쩡하던 친구의 몸 속에 암이 다 퍼져버렸다는 것이다.

비록 자주 보지는 않아도 간혹 문자메시지 연락을 했는데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 안쓰러워 문병갔다.

다행히 전화를 반갑게 받고 문병을 거절하지 않아서 그 친구의 병에 대한 정보를 어느정도 알아내서 찾아갔다.

찾아가는 전철 안에서 어떻게 위로할지 수많은 시나리오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너무나 활달하고 당찬 모습에 내 자신이 초라해질 정도였다. 어느 여배우가 두건을 쓰고 촬영을 기다리는 착각이 일 정도로 너무나 깨끗하고 생기있고 당당했다.

응급 수술 하는 바람에 환자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배에 인공항문을 만들게 된 의사들이 미안해 했다면서 그런데 자신은 이것이 참 사랑스럽다고 내게 말하던 친구다.

바로 6개월전의 모든 정기 검진에서 이상이 없었는데 호텔 VIP 검진에 동행하다 우연히한 검사에 암이 온몸에 퍼졌다는데 분노의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비교적 잘 적응하면 십년이상 항암 치료 하면서 지낼 수 있다는 전공 교수의 말을 전하면서 힘을 내라고 하려 했는데 이미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었다.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가족이 하나도 없는데 시한부 선고 받고도 무덤덤했다 한다. 가깝게 지내던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저 이제 죽게 됐어요’ 라고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면서 자신도 신기하다했다.

 

그 이후 여러 병원을 거치면서 고생하는 것을 다른 친구 통해 들으면서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차마 찾아갈 수 없었다.
아마 갔으면 또 통증을 참고 웃으면서 친구들을 맞아주었을 위인이었을 거다. 
어쩌다 문자 보내면 답장주곤했다. 답장 있으면 양호한 것이고 없으면 지금 힘든 상황이라 짐작하면서 나는 내 사소한 일들 속에서 일희 일비 하면서 소시민으로 살아갔다. 마지막에 찾아간 요양소에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고교 동창을 만났다는 소식도 삶을 다시 돌아보게했다.
그러다가 어제 친구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 핸폰으로 누군가가 메시지를 보냈다.
제3자인 분이 핸폰에 저장된 이름으로 전체에게 보낸 것이리라. 자신의 이름에 자신의 부음 메시지가 뜨니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허망함이다. 비록 많은 시간을 함께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나와 오래된 추억을 같이한 친구가 떠나니 미음이 무척 안좋다.

생과 사는 인생 순환의 연속이라 어짜피 떠날것 조금 일찍 간것 뿐이고 멋진 별나라 가려면 육체를 버려야하니 당연한 과정이겠지만 가족

하나 없는 쓸쓸한 임종이 나의 마음으로 아프게 한다.

부디 고통없는 곳에서 먼저 가신 부모님과 함께 편하게 행복하게 오손도손 살길 기원한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삶에 너무 애증의 집착을 갖지 않도록 조금씩 손을 놓는 연습을 나도 해야겠다.
모든 것이 별것 아니다. 하루하루를 최선으로 후회없이 가꾸어가면 되는것이다. 그뿐이다. 

나보다 잘난 친구들도 다 떠나는데 내게 무슨 권리가 있겠는가?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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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2일 아침 영결 미사후 장지를 다녀왔다. 

자신이 잊혀지지않기 바랬던 영미의 마음을 생각하면 이렇게 사진을 올려도 이해할 것이라 믿고 올린다.

많은 친구들이 배웅하러 찾아왔다. 하늘나라 가서 편하게 잘 지내라. 고생 많았다. 정말 마지막 까지 우아하게 투병하느라 고생했다.

편히 쉬거라.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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