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2016년, 정신과>
2016년 5월 의정부 지방 검찰청은 정신병원 16곳을 압수수색하고, 정신과 의사 53명을 기소하여 법정에 세웠다.
검찰은 53명의 정신과 의사와 16곳의 정신 병원에게 범죄 사실이 있어, 그들을 모두 피의자(용의자)로
형사 재판에 내세운 것이다.
의정부지방검찰청이 정신병원과 정신과 의사를 기소하기 한 달 전, “날 보러와요.”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10억의 초저예산 영화에도 불구하고(보통 드라마 1회 제작비가 10억이다),
개봉 후 한 주간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정신 병원 16곳과 정신과 의사 53명은 한 달 전 개봉했던 영화 “날, 보러와요.”처럼 유산과 가족 문제로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하며, 강제로 감금시켰던 것일까?
조회수에 목숨을 거는 기자들, 거기다 ‘인권’을 팔아 ‘인기’를 쫓는 정치인들과 심지어 검찰까지 덩달아 난리가 났다.
국회는 언제나 그렇듯 전문가와의 협의 없이 책상 위에서 뚝딱 법안을 만들어 5월 19일 정신보건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법 개정 이틀 전에 치료 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가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벌인 ‘강남역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국회가 정신보건법을 국회에 통과시킨 5월, 검찰이 정신병원과 정신병원에 근무하던 정신과 의사를 무더기로 재판대에 세운 이유는 종이 한장 그것도 순서 때문이었다. 강제 입원을 하려면 보호자의 동의와 환자와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서류가 필요하다.
피해 망상, 자해, 공격성, 등을 보이는 응급 정신 질환자의 경우, 낮보다 밤에 증상이 악화되어 저녁이나 밤 무렵 응급 입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관계 증명서>의 경우, 2013년부터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도 있지만 보호자의 다수가 환자의 부모로 고령이었기에 공인인증서 등을 이용해 <가족관계 증명서> 를 발급받기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정신 병원에서는 당장 치료를 위해 입원을 먼저 시키고, 보호자들에게 관련 서류를 다음날 아침이나 주말일 경우 평일에 서류를 가져오라고 했다. 즉 <선입원, 후서류>였다. 하지만 검찰이 이것을 마치 대단한 중범죄마냥 병원과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며, 무려 16 곳의 병원을 압수수색하고 53명의 의사를 기소였다. (수사 규모만 보면 정신과 의사들이 무슨 쿠데타를 벌이는 국가 전복 세력이나 간첩단으로 오인할 수 있다. )
<선입원, 후서류>는 부득이 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보건소 등에서 주의 정도로 끝날 상황이었으나, 검찰이 때마침 영화, 여론, 국회 법 개정에 발 맞춰 칼춤을 춘 것이다. 결국 재판은 무려 3년을 끌며, 2019년 대법원까지 가서 정신과 의사 전원 무죄가 확정되었다.
이 재판으로 정신과 의사와 병원은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지난 화요일 새벽 2시 당직을 서고 있는데, 술에 취해 칼로 자해를 하려한 조현병 환자가 119에 실려 병원에 왔다. 노모는 주치의인 저에게 환자를 입원시켜 달라고 했지만, ‘지금 서류를 떼 오지 않으시면 (입원 시)제가 범죄자가 된다’고 말했다. ‘환자가 이 지경인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는 노모 앞에서 그저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당시 정신질환자의 입원 당일, 서류를 받지 않아 ‘정신보건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당한 봉직의 중 한명이 의정부 지방법원 제4호 법정에서 실제로 한 말이다.
거기다 2016년 9월 헌법재판소까지 ‘강제입원조항’은 ‘헌법불합치’로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영화에서 시작하여, 기자, 여론에 이어 국회, 검찰, 헌법재판소까지 너무나 일사분란한 움직임이었다. 그 결과 의사들은 “치료보다 서류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고, 병원에서도 각종 서류 문제 및 치료비를 받기 어려워 보호 입원의 경우를 꺼려하게 되었다. <2016년 정신과 의사 무더기 기소 사건>과 더불어 더욱 행정 절차가 복잡해진 <2017년 정신보건법 개정>으로,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입원 환자를 보는 정신 병원을 떠났고, 정신과 병동 수는 급속도로 감소했다.
그 결과 치료가 필요한 많은 정신과 환자들이 제대로된 치료받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2020년 초 <청도대남병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그러자 정부는 정신병원에게 또 다시 명령했다.
“기존 다인실의 1인당 면적을 4.3m2에서 6.3m2으로 늘리고, 침대간 간격을 1m에서 1.5m로 벌려라.”
물론 수가를 50% 올려줄 리가 없으니, 기존의 정신과 병원마저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하게 되었다. 그럼 그 환자들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돌보는 것일까? 치료 받지 못한 환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요약:
2016년 4월 ‘날 보러와요.’ 강제 입원을 소재로 한 영화 개봉.
2016년 5월 국회에서 정신보건법 개정 발의
2016년 5월 의정부지방검찰청 서류 미비로 정신 병원 16곳 압수 수색과 정신과 의사 53명 기소(2019년 대법원 의사 무죄 확정)
2016년 9월 헌법재판소 ‘강제 입원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2017년 정신보건법 개정으로 강제 입원 매우 어려워짐
⇒정신과 의사들이 입원 환자, 특히 정신병적 증상이 심해 강제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보는 것을 더욱 꺼려하게 만듬.
2020년 <청도대남병원 코로나 사태>로 정신과 입원실 1인당 면적 50% 확대 의무화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공포·시행
⇒정신 병원 경영난 더욱 심각
2016년도에는 영화 감독, 기자, 국회, 검찰, 헌법재판소까지 모두 힘을 합해, 정신과 의사를 범죄자로 몰았고, 정신 병원을 경영상의 이유로 문 닫게 만들었다. 그 결과 환자의 진정한 인권인 치료를 빼앗았다. 결국 치료 받지 못한 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
이 모든 걸 돌이켜보면, 2016년 그해에 정신과에 벌어진 모든 일이 너무나 치밀하게 짜여진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느껴져, 그 어떤 스릴러보다 더 섬뜩하게만 느껴진다.
덧붙이는 이야기:
2016~2023년 7년간 관련법을 2차례 개정하면서 사태를 더 악화시킨 정부가 이제 또 다시, 치료받지 않은 정신과 환자가 강력 범죄를 일으키며 사회 문제가 되자, ‘사법입원제도’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미 ‘응급중증정신질환자’를 볼 정신과 의사도, 환자를 입원시킬 병원도 사라지고 없다. 소를 돌볼 목동은 물론이고, 고칠 외양간마저 이미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정신과 마침, 다음에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의사'편으로 이어집니다-
수많은 저능아 공모자들의 죄를 누가 어떻게 물을까?
과연 그게 사회 정의 실현이 될 수 있을까?
비용 투자 없이 선진 인권 국가 흉내 내보려는 가증스런 인간들...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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