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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불필요한 지식들

개그맨 서세원씨 부친께서 방송에서 하셨던 말씀이 이상하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내겐 잊혀지지 않는다.
“많이 배울수록 원래 피곤한거야. 많이 배우려하지마.”
사실 아는 것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다. 한마디로 무식한 놈이 겁도 없는 법이다.
어린아이들의 귀신 공포도 뭔가를 알기 시작하면서 아는 만큼 생기는 것이다. 귀신이 뭔지도 모르면 공포도 없다.
귀신은 나이들어가면서 새로운 종류로 많이 등장한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 사회인으로는 상사 혹은 똑똑한 후배,
가장으로서는 간혹 확 변하는 아내(^_^) 혹은 천방지축 사춘기 자녀들, 교인이 되면서는 나 자신이나 사이비 동료가 되기도 한다.
세상 바닦까지 떨어져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괜히 건드리면 그 여파를 감당하기 힘들다.
소위 수천명을 거느리는 상명하복의 명령체계 속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생활해온 영관급 장교중에 장군진급을 포기한 대령이나

대기업에서 이사 진급을 포기한 만년 부장만큼 겁 없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해서도 안돼는 것이 만의 하나 진급했을때의 그 서러움에 대한 보복 또한 엄청나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금이라도 내것으로의 소유물이 있게 되면 사람은 그것에 구속되어 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고승들이 무소유를 추구하는것인데  무소유 추구하지 않으면 진정한 종교인이 될 수도 없으니 사실 당연한 것이다.
원초적인 욕심을 채운 소유욕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성숙체인 지식인들 역시 지적 소유물이 많이 축적 될수록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며
세상에서의 삶을 투명하게 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야 그들의 가치를 인정 받기에 당연한것이다.
그래서 많이 배울수록 몸과 마음이 피곤한 법이다. 소위 사회적인 품위 유지비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자신을 그만큼 피곤하게 많이 든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정치적인 짓거리도 사실 이해할 만은 하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마당에 남는 것이 깡다구 밖에 더 있겠는가?
그들은 이해 하겠는데 오히려 남쪽에서 민주 국가의 혜택 볼 것 다 보면서 헛소리하는 무리들이 간사스러운 것들은 이해할 수 없다.

최근의 임수경(존칭을 거부한다)  발언은 그 부류들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는데 아직도 여론이 조용한 것 보면
그만큼 많은 부류가 벌써 물들어가거나 혹은 모든 국민들이 씨니컬해졌을 수 있다. 나쁜 남자나 차도녀가 인기가 있듯이 말이다.
의무보다 권리를 더 주장했던 짝퉁 국민들이 권세를 잡아가는 미래가 많이 걱정된다.


일부 귀족이나 수도원을 중심으로 독점했던 지식들이 종이와 인쇄술의 발달로 많은 시민들에게 퍼지는 큰 혁명이 이루어졌다.

수 많은 문헌이 보급되고 그런 문서를 통한 지식의 보편화로 많은 이들이 간접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지배 계층들은 피지배 계층의 지적 수준이 향상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겠지만 과학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유럽인들이 마르코폴로의 동방 견문록을 보고 중국을 알게 되고 중동의 천문학을 통해 서양 과학이 발달 했으며

중국의 나침반이 전해지면서 세계대양의 해상 왕국 각축전이 활발해 졌다.
근대에 들어서서는 신문의 보급으로 보다 소소한 일상까지도 민중에게 파고들더니 현대에는 과학의 발달로 라디오 TV매체를 통해 순식간에 전국으로 아니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그러다 요즘은 스마트 폰이라는 손안의 방송국을 개개인이 소유하면서 정말 사소한 일까지 전세계로 퍼지는 기상천외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웃집 아가씨가 집안에서 혼자 노래하는 것을 본인만의 노력으로 지구 반대편에서도 바로 알게 할 수 있고 골목에서 일어난 조폭 패거리 싸움을 세계인들이 다 볼수 있는 말 그대로 지구촌이 되었다.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극과 극으로 결과가 달라지는 뇌관을 각자 소유하게 된 것이다.

사물을 보는데는 거시적인 관점과 미시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는데 이 두가지는 관점의 대상에 따라 방법을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국가적인 결정 사항에 혈연지연관계가 영향을 주어서는 안돼고 가정내의 자녀 사랑 교육에 경제 관점이 앞서면 곤란하다.
개개인의 인간사는 한없이 다양한데 그런것에 일반인들이 SNS를 통해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정력 낭비일 뿐이다.

대의를 위한 민의를 수렴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마녀사냥식의 교양있척하는 배설행위(?)는 우리가 조심해야할 지극히 위험한 간접 살인 행위이다. 세상 모든일은 양측의 입장에 공평하게 파악하고 나서야 결정 지을 수 있는 것이며 그 또한 일방적인 절대적 진리는 없는 법이니 각자의 할말은 있는법이다.
IT의 발달로 만남과 헤어짐에 고통이 없고 사건을 인지하고 못하는 순간의 시간차가 거의 없어지는 요즘이다.

반사적인 동물적 반응에 생각없이 흐름을 타지 말고 타인을 배려하는 인내의 침묵으로 자신을 정화시키는 인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나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감히 타인을 어떻게 정죄 하겠는가?
검색에 충혈된 눈을 감고 사색하며 쉬어가는 오늘이 되자.
그리고 쉽게 오염되어가는 나 자신을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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