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당사자 지나친 관여 안 돼
그래도 단번에 2000명은 과해
규모는 줄이고 기간은 늘려야
교육 질·필수 의료 시간도 벌자
의대 정원 논란이 길어지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복귀 시한이 29일로 지나갔다. 정부는 당장 2000명씩 늘리자 하고, 의사 협회는 이에 반대하며, 전공의 파업도 멈추지 않는 분위기다. 강 대 강 대치가 길어지면 가장 큰 피해자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다.
25년 전 의약 분업 제도 도입을 둘러싼 의사 파업 사태는 의사였던 내가 경제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중요한 계기였다. 의학은 자연과학이지만, 의료는 경제학의 도움이 크게 필요한 분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의료 정책은 현장 의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지만, 이해관계 당사자가 좌지우지해선 안 된다. 국민 건강과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혜안이 필요하다. 의료를 잘 아는 경제학자인 내가 환자와 국민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직무 유기라 생각했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2023년 기준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3.7명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가 연간 15.7회로 가장 많다(그림 참조). 적은 수의 의사가 장시간 노동 및 짧고 효율적인 외래 진료를 한다. 사실 전문의를 이토록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다만 응급실 뺑뺑이, 일부 지역 분만 의사 부족 문제는 현실이다. 이는 의사 수 부족 보다는 배분의 실패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의대 정원 확대는 필요하다. 우선 고령화로 인해 향후 의료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10~20대의 의료비는 연 100만원 미만이다. 하지만 70세는 약 400만원, 85세에는 연 700만원 이상이다. 3분 진료를 넘어선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국민적 욕구도 크다. 전공의 중심인 대학 병원이 전문의 중심의 병원으로 거듭나야 한다. 모두 의사가 더 필요한 일이다.
의사가 얼마나 더 필요한가?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보고서에 따라 2035년에는 의사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이라 추정했다. 많은 가정이 필요해서 정확한 숫자라 할 수는 없지만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현행 의료 체계하에서 의사들은 필수 의료는 기피하고 피부·미용 분야를 선호하게 된다. 대한의사협회 분석에 따르면, 미용 성형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전체 활동 의사 11만명 중 3만명 정도다. 그런데 피부과·성형외과 전문의 수는 5,00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만 5천명 중 상당수가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 의료 전문의다. 왜 이들이 미용·성형을 하고 있나? 정책 실패 때문이다. 실손 보험과 비보험 진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필수 의료 분야의 수가를 과감하게 올리지 못했다.
이번 정책의 성공의 핵심은 늘어난 의사가 필수 의료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유인책인 ‘필수 의료 패키지’가 작동하는 것이다.
1) 의사 인력 확충,
2) 지역 의료 강화,
3)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4
) 필수 의료 보상 체계 강화 및 실손 보험-미용 의료 관리 개선이 포함되었다.
맞는 방향이지만 아직 구체성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동안 정부는 필수 의료 부족을 개선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지 않았던가.
만일 ‘필수 의료 패키지’가 실패하면 피부·미용 분야 의사 숫자만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 분야는 의사 유인 수요도 상당하다. 혁신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을 피부 미용에 쓰는 것은 국가 미래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현재 정원 3058명에서 단번에 2000명을 늘리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 교육의 질을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8년 뒤 모자란 1만5000명이 채워지면 정원을 다시 줄여야 한다. 만만치 않은 일일 것이다. 이보다는 500~1000명씩 15~30년간 증원하는 게 적절하다. 교육의 질도 담보하면서 필수 의료 강화를 위한 시간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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