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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악연

[양상훈 칼럼] “죄송한데,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거든요”

우크라, 이스라엘 다음은
한반도라는 美 전문가
굴종하느니 싸우겠다
결의 가지면 전쟁 막고
‘전쟁이냐, 평화냐’ 구호에
휘둘리면 전쟁 못 막아

입력 2023.10.12. 03:20
 
 
지난 8일 밤(현지 시각) 가자지구 시가지에서 이스라엘의 보복 미사일 공습으로 화염이 번지는 장면.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 전쟁이 터지는 것을 보고 전쟁 날 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전쟁의 눈’은 정말 놓치는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을 질병이 찾아가듯 전쟁은 터질만한 곳을 어김없이 찾아간다.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모두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근래 우크라이나는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분열돼 지독한 내분 상태에 있었다. 분열된 국민이 전쟁을 두려워해 러시아가 영토를 침략해 병합하는데도 보고만 있었다. 극심한 내분은 정치 코미디 주연 배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코미디 제작사 간부들이 국가 요직을 맡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이 예상외로 전쟁을 잘 지휘하고는 있지만 전쟁의 눈이 보기에 이곳은 명백한 먹잇감이었다.

이스라엘 역시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파동으로 전례 없는 국민 분열을 겪고 있었다. 군과 경찰의 현역 간부들이 정부에 공개적 반기를 들고 국방 주력인 예비군의 복무 거부 사태까지 일어났다. 도저히 이스라엘답지 않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더니 결국 전쟁의 눈에 띄고 말았다. 군 최전방 초소가 테러리스트 수준의 무장대에게 털려 여군들이 줄줄이 붙잡혀 끌려가고 아기들이 떼로 참수당했다.

전쟁의 눈이 지구본을 돌릴 때 한반도에 눈길이 가지 않을 리가 없다. 조셉 보스코 전 미 국방부 중국 담당 국장은 이스라엘 전쟁이 터지자 다음 순서는 중국·대만이고 그다음이 한반도라고 했다. 그중에서 북한이 가장 악성이라고 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 삶은 원시 수준으로 팽개친 채 온갖 핵무기 개발에만 혈안이 돼 있다. 공예품이라며 미사일 도자기를 만드는 집단이다. 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비정상 권력의 비정상 행태는 영원할 수 없으며 그 끝은 대부분 폭력적이었다. 전쟁을 막아야 할 한국은 국민이 심각하게 분열돼 있고 국가 수호의 ‘결의’도 흐트러져 있다.

지금 한국에선 북의 도발을 응징한다고 하면 ‘전쟁광’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우리가 당해도 전쟁 날지 모르니 그냥 넘어가자는 주장이 인기를 얻어 선거에서 승리한다. 북한 공격에 천안함이 폭침당해 우리 군인과 국민 56명이 떼죽음을 당했을 때 민주당은 대북 반격은 물론이고 경제 제재도 반대하며 ‘전쟁이냐, 평화냐’는 선거 구호를 내걸었다. 그 선거에서 민주당은 승리했다고 한다. 당시 군에 간 자식들이 부모에게 ‘정부가 전쟁을 하려는데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전화했다. 이런데 북이 도발할 유혹을 느끼지 않겠나. 한반도는 전쟁의 눈이 보기에 전쟁 터지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민주당은 2007년 정권을 잃고 80여 석 소수당으로 전락했을 때 광우병 괴담으로 대성공을 거둔 사례를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괴담에 매달리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쟁이냐, 평화냐’ 슬로건 성공 사례도 잊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어떤 양보를 해서라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전쟁을 사실상 포기한 나라가 조선이다. 그 결과 전쟁도 못 해보고 나라를 뺏겼다. 그때 이완용은 ‘그래도 전쟁한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고 했다.

 
 

전쟁 나면 사람이 죽으니 무조건 양보해서 피해야 한다는 단순 논리로 대중을 겁주고 현혹하는 것은 전 세계 정상배들이 하는 일이다. 이들은 국민과 국가를 병들게 해 결국 전쟁으로 이끈다. 책임 있는 지도자는 ‘전쟁은 막겠지만 주권과 독립이 위협받는다면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나라를 나라답게 하고 국민을 국민답게 해야 전쟁을 막는다. 주권과 자존을 지키는 일에 공짜는 없다. 용병을 쓴 나라는 예외 없이 다 망했다.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이 한순간에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소중한 지금의 일상을 모두가 지키고 싶어 한다. 깡패가 횡행하는 세계에서 일상을 지킬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국민, 대통령, 정당, 기업, 사회가 어떤 경우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 나라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세상에 전쟁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외적에게 굴종하며 살고 싶은 사람도 없다. 둘이 충돌할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때 굴종을 택하면 전쟁이 나고,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하면 전쟁을 막는다. 더 이상 ‘전쟁이냐, 평화냐’는 없어야 하고 휘둘리지도 말아야 한다. 그게 자신과 가족과 나라를 진정으로 지키는 길이다. 누구나 두렵다. 그 두려움을 부추기고 구차함을 유혹해 표를 얻으려는 것은 정상배 행태다. 지도자는 국민의 본능적 두려움을 넘어서서 결의를 모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전쟁의 역사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그 명언 중에서도 정수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대전의 끔찍한 재앙 속에서 유럽이 신음하고 지식인 사회에 반전주의가 퍼질 때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 관심이 없으시다고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거든요.” 전쟁의 본질적 속성이 이 말에 담겨 있다. 전쟁은 자신을 반대하고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간다. 올 테면 오라고 하는 사람들은 피한다.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한 이재명 대표가 깊이 새겨야 할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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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젖과 꿀이 흐른다던 ‘가자’

 
일러스트=이철원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 가자(Gaza)에서 벌어지는 피의 분쟁 역사는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 했던 가나안의 주인 자리를 놓고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과 에게해를 통해 들어온 해양 민족 블레셋인이 맞붙었다. 가자는 블레셋인들이 가나안에 세운 도시였다. 구약의 유대인 판관 삼손을 죽음으로 내몬 델릴라는 가자에 살던 블레셋 사람이다. 사울왕은 블레셋과 싸우다 전사했고 다윗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무릎 꿇린 전쟁 영웅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때문에 2000년간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딱 맞지 않는다. 용맹한 블레셋인은 기원전 4세기 동방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에게 저항하다가 패퇴한 뒤 역사에서 사라졌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민족은 블레셋의 후예가 아니란 뜻이다. 그 땅에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을 붙인 이는 2세기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였다. 유대인 반란을 평정한 뒤 징벌로 그들을 고향에서 내쫓고 팔레스타인(블레셋의 땅이란 뜻)이라 부르게 한 게 시초다.

 

▶가자 분쟁의 불씨는 1948년 신생국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의 1차 중동전쟁에서 다시 타올랐다. 이 전쟁으로 서안 지구(West Bank)는 요르단 차지가 됐고 가자는 이집트 수중에 떨어졌다.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 두 곳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여기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인 인티파다(봉기)가 불붙었다.

 
 

 

▶하지만 가자와 서안 지구는 그 후 다른 길을 갔다. 인티파다로 자치권을 갖게 된 팔레스타인은 파타와 하마스로 분열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무장 정파 하마스가 승리하고 파타가 불복하면서 가자는 하마스가 지배하고 서안 지구는 파타가 통치하는 이중 권력 상태에 들어갔다. 이스라엘도 하마스 수중에 떨어진 가자에서 정착촌을 철수하고 물과 전기를 제외한 모든 물품 공급을 중단하는 봉쇄를 시작했다. 가로 5~8㎞, 세로 50㎞인 거제도 크기 도시가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란 별명을 갖게 됐다.

 

▶팔레스타인은 자기 나라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다.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 등 이민족의 지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유대인이 새 운명을 개척하겠다며 팔레스타인에 처음 돌아온 해가 1882년이다. 이후 유대인이 텔아비브처럼 현대적 도시를 세우는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구경만 했다. 일부는 유대인들이 땅을 팔라고 하면 비싼 값 받을 궁리만 했다. 이제는 가자에서마저 내쫓길 처지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