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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한성신문의 발행자(펌)

[최초의 한글 신문은 한성순보이다.
[한성순보]에 대해 우리는 역사왜곡으로 아이들과 성인들에게 교육을 시킨다.

 

박문국에서 주도하여 신문을 발행하였다.()
박문국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인쇄소이자 신문 및 잡지 등을 편찬•인쇄하던 출판 기관으로, 신문을 발행했다는 점에서는 한국 최초의 신문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문국을 만든 사람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 '이노우에 가쿠고로'라는 분이다. 이 사람을 조선으로 보내 조선 최초의 신문을 만들게 지원한 사람도 일본인이다.
그 사람은 바로 일본 1만엔 지폐 주인공인 '후쿠자와 유키치'다.
갑신정변에 의해 신문은 중단되었다. ()
우리 교육은 "급진적인 개화론자들에 의해 신문 발간은 중단되었다"고 거짓말만 하지 왜? 중단되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진실은 갑신정변으로 인해 청나라군이 일본인을 탄압하고 박문국(인쇄소)가 불타없어지고,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일본으로 피신하는 통에 신문을 발행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청나라군은 '이노우에 가쿠고로'를 핍박했는가?
1884년 1월 청나라군이 조선에 주둔하던 시절, 청나라 군사들이 조선의 약방에서 약을 많이 외상으로 사갔는데, 조선인 약방 주인이 외상값을 달라고 하자 청나라군들이 그를 구타하고 옆에 있던 약방 아들을 총으로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이 사건을 1884년 1월 30일자 [한성순보] 제10호를 통해 보도를 했다.
당시 청나라로부터 조선 정부의 내정, 외교 등 간섭이 심해지고 특히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병사들의 약탈 및 강간 등의 횡포가 심했다. 그래서 [한성순보]는 청국병사에 의한 '서울약주인피살사건'을 폭로하는 기사를 게재하고 이를 규탄했다.
이것이 청나라를 자극해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청나라는 [한성순보]와 '이노우에 가쿠고로'에 신변을 위협했으나, 조선정부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했다.
이런 진실을 대한민국에서 절대 말하지 않고 있다.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일본으로 피신 중에, 스승인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한성순보]를 보여주자 이렇게 말했다.
"꼭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조선의 개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성순보]는 한글 신문은 아니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조선인의 한글 보급에 많은 도움을 준 인물임에도 한국인들은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숨긴다.
우리가 이제껏 받은 교육은 "일제가 한글을 탄압했다"라고 말하는 데 엄청난 거짓말이다.
다시 조선으로 온 '이노우에 가쿠고로'는 1886년 1월 25일 최초의 '한글 신문'을 만든다. 그 신문 이름이 [한성주보]
우리 교육은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에 관해 누가 창간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전혀 설명을 안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일본인이 만든 것을 숨기고, 조선 정부기구에서 근대적인 신문을 발행했으며, 개화•개방을 위한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위함이다진실은,
그 근대적 신문이라는 것도 일본인에 의한 것.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들도 일본당이라 불리는 일본 유학생들이 중심이고 일본의 지원하에 일어난 것.
개화파와 일본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신문을 발행할 능력이 있는 조선인이 없었고 신문은 바로 폐간된 점.
또,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조선 정부에 한글 신문 창간을 건의하자, 고종과 신하들은 반대했다. 왜냐하면 조선의 왕과 양반들은 [한글]을 천박한 문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한 인간들이 쓰는 글자가 한글이다."
유일하게 '김윤식'이라는 분이 한글 신문 발간 필요성에 공감하고 지지했다. 그의 도움으로 고종의 재가를 얻자, '이노우에 가쿠고로'는 일본에서 신문 발간에 필요한 기계와 활자를 들여와 1886년 1월 25일 [한성주보]를 창간했다.
한성주보 제32호 1886년 10월 11일자 한글 기사를 끝으로 한글 기사는 자취를 감추었다. 왜?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일본으로 귀국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기사 자료로는 1888년 2월 6일자 제101호까지 확인할 수가 있다. 분명한 점은 그의 귀국 이후로 더 이상 한글이 신문에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은 근대화를 못한게 아니라 안 한것이다
그리고 최초로 한글 신문을 발행한 것은, 일본인 '이노우에 가쿠고로'의 공로였다는 점은 우린 명심해야 한다.
한글 보급에 힘쓴 것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었다는 진실을 우리 교육은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일본에 관해 거짓말만 일삼는 한국이 나는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