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초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내년부터 2,000명을 증원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반대하면서, 전공의들이 대부분 사직하고 의과 대학생들이 휴학계를 제출한 상태에서 7개월이 지났다.
전문 의료 기술을 배우는 처지에서 병원의 값싼 인력으로도 활용되던 전공의들의 부재로 인해, 병원이 평소처럼 운영되지 못하고 있어 환자들의 피해와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아직까지 어떤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고, 전공의의 일까지 떠맡아 일해야 하는 전문의들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대형 병원에서 사직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환자와 국민은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과 의료 서비스 시스템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전문의와 입원실이 부족하여 응급환자가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고와, 지방 공공병원에서 필수의료 전문의를 구하지 못하는 어려움의 원인을 의사 부족으로 파악한 정부는 ‘의료 개혁’의 대표적 과제를 의사 수 증원으로 정했다.
앞으로 계속 고령인구가 늘어날 것에도 대비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국가 평균 3.7명에 비해 2.6명으로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 정부의 입학 정원 확대의 가장 큰 명분이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에 의사들은 왜 반대하며 왜 정부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걸까?
첫째, 의사들은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는 것이 필수 의료과 기피, 지방의 의사 부족, 응급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필수 의료과는 낮은 수가로 인한 병원 운영의 어려움과 높은 의료분쟁 위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의사는 없다.
또 지방에 의사가 안 가는 이유는 의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구가 줄어 환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방의 많은 환자들이 큰 도시의 대형 병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응급실 뺑뺑이도 의료분쟁 책임 등 복합적인 문제 탓이지 의사 부족이 근본 원인이 아니다. 의료 현장의 문제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둘째, 보건복지부는 우리나라 의사는 OECD 국가 평균의 3.4배의 환자를 진료하기 때문에, 의사들의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매년 의사 수를 계속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나, 의료계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자료는 OECD 평균 수가의 1/3수준에 불과한 저수가를 극복하기 위해, 단위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함으로써 원가를 절감시킨 한국 의료의 특성이 반영된 지표이지, 의사 증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셋째, 의대입학 정원 대폭 증가는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를 배려하지 않는 정책이다.
다양한 이공계로 진학해야 할 우수 인재가 의과 분야로만 치중되는 것은 국가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또 대한민국 인구는 2020년 정점을 찍은 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금 의대 정원을 그대로 유지해도 결국 국민 1,000명당 평균 의사 수는 계속 증가한다.
2025년도 이후에 입학한 의대생이 전문의로서 일하기 시작할 10년 후는 우리나라 인구 감소가 본격화될 시점인데, 더 많은 수의 의사가 매년 쏟아져 나왔을 때 확실하게 예견되는 것은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이다.
일본이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치과 의사 수를 대폭 늘린 결과, 치과는 많지만 시설과 기술 수준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매우 낙후되어 있다. 의사 수가 OECD 국가 평균의 2배에 가까운 그리스와 같은 나라의 경우, 의료 수준이 오히려 낮고 의료에 대한 적절한 투자가 없이 의사 수만 증가시킨 제도에 대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이 대규모로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 의료 사태가 표류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의료계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정부는 의사들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환자의 생명조차 경시하는 범죄집단 수준으로 규정하고, 그 카르텔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깨어버리겠다고 공언한다.
더 이상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전공의들의 의사 면허를 정지시키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저수가와 의료분쟁에 대한 형사 처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현장의 목소리는 들을 생각이 없다.
정부는 의사단체를 이익 카르텔로 매도하지만, 의사들은 같은 이익을 위해 뭉치기 어려운 집단이다.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중소형 병원이나 개인 의원을 직접 운영하는 의사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고, 나이 많은 의사와 젊은 의사는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정부 정책을 지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수 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는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런 정책이 가까스로 유지해오던 기존 의료 시스템마저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미래의 의료 시스템을 퇴보시킬 것이 분명해 보이는 정책을 반대한다고 의사를 국민의 적으로 설정하고 그 적에게 반드시 이기겠다고 하는 정부와 어떤 소통이 가능할까?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의료의 발전 과정을 지켜보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었다고 보람을 느끼고 있었던 의료인으로서, 공멸로 치닫는 지금의 의료 사태는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을 잃지 않고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 더욱 건강하고 공정하며, 국민 모두가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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