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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을 기피하는 이유

 

  • 기자명 청년의사 
  •  입력 2022.12.15 11:31
  •  수정 2023.04.12 10:0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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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심장 권위자인 박인숙 전 의원이 본 소아진료 공백 사태

박인숙 전 의원은 재선 의원이기 이전에 소아심장 분야에서 국내 1인자로 불린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베일러의대 부속병원인 텍사스어린이병원에서 소아심장과 조교수로 근무했다. 지난 1989년 귀국해 3월부터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심장과 교수로 근무했다. 박 전 의원이 쓴 <선천성 심장병>은 선천성 심장병 학계에서는 교과서로 불린다. 여성 최초로 울산의대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소아심장 분야 권위자인 박인숙 전 의원은 청년의사에 기고한 글을 통해 소아진료 공백 문제를 진단했다(ⓒ청년의사).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 급감은 ‘인구 붕괴, 국가 소멸’이라는 일련의 재앙의 하나의 표현형일 뿐이다. 근본 원인은 저출산이다. 모든 정부가 말로만 저출산을 걱정한다고 하면서 천문학적 세금을 쏟아 부었지만 백약이 무효이다.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들은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의 반발만 불러일으키곤 했다. 연간 출생아 수가 20만명대로 역대 최하이고 합계출산율도 가임여성 1명당 0.81명으로 세계 최하다. 이대로는 국가 유지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드디어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소아진료 대란이 우려됐는데 이제는 아픈 아이들이 입원할 병원도 줄었고 밤이나 주말에는 진료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해마다 빠르게 떨어지더니 2023년도 지원율은 17%에도 못 미친다. 많은 대학병원에 소청과 전공의 지원자가 아예 없다.

이제는 소아과 전공의 충원율만 높이려는 근시안적 대책이 아니라 소청과 육성책과 함께, 더 중요하게는 ‘충격적인’ 수준의 저출산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의대 졸업생들이 소청과를 선택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으로 출산율 급감 외에도 여러 원인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개원의, 병원 봉직의, 대학 교수 등 그 무엇을 하든 소청과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는 여러 상황들을 나열해 본다.

 

①환자만(간혹 배우자나 자녀를 상대하기도 하지만) 상대하는 내과와 달리 소청과는 소아뿐 아니라 부모, 때로는 조부모나 친척들까지 모두와 소통해야 한다. 따라서 많은 경우 이들로부터 큰 정신적 부담을 받게 되며 드물지만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맘 카페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억울한 피해를 당하기도 하는데 이런 곳에서 한번 손상을 받으면 회복이 어렵다.

 

②불합리한 보험수가제도도 소청과를 더욱 어렵게 한다. 정맥주사나 채혈 같은 행위를 예로 들어본다. 어린이에게 이런 시술은 기술적으로 성인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기구도 더 다양하게 필요하고 그 가격도 더 비싸다. 게다가 아이가 울기나 하면 감정이 격앙된 부모가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보험 수가는 모두 같다. 게다가 폭력, 나아가서 소송 위험마저 높다.

또한 모든 시술이나 처치에 사용되는 기구나 약, 주사제 등에서 소아용은 다양한 크기의 여러 종류가 필요하다. 성인처럼 한 사이즈만 준비해 두면 되는 것이 아니므로 비용부담이 크지만 이에 대한 건강보험의 배려는 없다.

 

③진찰이나 검사, 치료과정이 성인보다 어렵다. 예를 들면 귀나 목을 들여다보는 단순 행위조차도 아이들은 성인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협조도 잘 안되기 때문에 시간, 노력, 인내가 추가로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부모와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건강보험 수가는 이 부분도 고려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어려움 때문에 더 많은 불만이 표출되고 소송 위험도 성인보다 높다.

 

④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의료진 구속 때문에 소청과 기피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결국 대법원 최종 선고까지 모두 무죄였지만 이 사건은 의료인들, 특히 소청과, 나아가서 위험부담이 큰 신생아학 의사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리고 심각하게 부족한 신생아학 전공 기피현상을 심화시켰다.

 

⑤소아과학은 ‘내과에서 배우는 모든 학문 + 출생, 성장, 발달’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학문이다. 어린이는 단순히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다. 어린이는 고유의 특징을 각 장기, 기관마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소청과에도 내과, 외과와 마찬가지로 장기·기관별 세부전공이 있다. 소아심장, 소아신장, 소아호흡기/알레르기, 소아소화기, 소아신경, 소아종양, 신생아학, 중환자 치료, 소아응급의학 등이다.

그런데 내과에 비해 소청과는 세부전공을 해도 적극 활용할 기회가 훨씬 적다. 대학에 교수로 남는 것도 어렵고 개원하면 이를 활용할 기회는 더 적다. 심지어 많은 일반 국민들은 소청과에도 세부전공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따라서 세부 전공으로 학문적 성취도를 더 높이고 싶어 하는 젊은 의사들은 대체로 소아과 대신 내과를 선택한다. 소청과 세부전공 전문의들이 꼭 필요 하지만 분야별 환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각 대학·종합병원에서 소아 세부 전공 전문의를 분야별로 모두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소아암 환자를 지방에서 치료하기 어렵다는 최근 언론보도의 배경에는 이런 이유들이 있다. 소아 세부전공 전문의 부족 사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⑥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소청과는 위에 열거한 여러 이유들 때문에 병원 수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심지어는 병원 적자의 일부분이 소청과 때문이라는 뼈아픈 지적을 받는다. 이는 소청과 의사들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소청과 전공을 기피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같은 이유로 소아과 인력과 시설에 투자를 줄이거나 아예 어린이 입원실을 없애기까지 한다.

 

⑦이제는 의사들도 수련 후 개원이나 봉직의, 대학 교수 같은 전통적인 진로 외에 제약회사나 바이오 기업, 보건소나 정부기관, 연구기관, 언론계, (은퇴 후) 요양병원 등 다양한 진로를 고려한다. 그런데 소청과를 전공 했을 때에는 선택의 폭이 훨씬 제한적이다. 이런 의도를 가졌다면 내과나 외과를 선택 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런 점도 소청과를 기피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⑧전공의가 중도 하차하면 남는 전공의들의 업무량이 급증한다. 때문에 전공의 지원을 더욱 피하게 되는 악순환이 지난 몇 년간 진행되면서 기피 현상에 이미 가속도가 붙었다. 이 현상을 지금 당장 되돌리기는 어렵다.

소아 진료 공백이 심히 우려된다. 열악한 진료, 연구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실 많은 소청과 의사들이 자긍심을 느끼는 것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어린 아이들이 어려운 병을 이겨내고 완치됐을 때 기쁨, 그리고 아이들이 성인에 비해 앞으로 살아갈 세월이 훨씬 더 길기 때문에 치료에 훨씬 더 큰 보람과 기쁨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소청과 의사들의 이런 ‘아름다운 마음’과 희생정신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소아과 소멸, 인구 소멸, 국가 소멸, 모두 같은 맥락의 국가 재앙이다. ‘혁명적’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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