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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이미 문제는 전공의가 아니라, 교수다> (펌)

 
2024년 레지던트 전기 모집이 끝났다. 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산부인과, 소아과는 이미 예전부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람들은 레지던트를 잘 모른다.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쳐서 통과하면 의사가 된다. 이때부터 의사로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심장 수술을 해도 되고, 성형 수술을 해도, 피부 미용을 해도 된다. 단, 잘할 수 있다면.
아는 것도 없고, 자신도 없고, 내가 뭐 할지도 모르는 새내기 의사는 대부분 1년간 인턴을 하면서 각종 과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각과를 살펴보면서 평생 자신이 할 과(전공)을 정한다. 그리고 전공과목과 수련받을 병원을 정해 3~4년간 수련을 받는다. 일명 전공의(레지던트)이다. 전공의는 교수님 밑에서 일을 하는 동시에 일을 배운다. 환자 보는 법, 각종 시술이나 수술, 논문까지.
의대 교수의 일은 많다.
1. 논문
2. 학생 및 전공의 등 교육
3. 외래 진료(8시~5시)+정규 시술(수술)
4. 응급 진료+응급 시술(수술): 24시간
5. 병동 입원 환자 진료: 24시간
이 일을 교수 한 명이 다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전문의를 왕창 뽑아서 쓰면 된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한다. 대부분의 전문의가 병원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전 세계 최저 수가인 한국에서는 외국처럼 비싼 전문의를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전공의(레지던트)가 필요하다.
전공의는 병원 입장에서 매우 좋다. 일단 월급이 교수의 1/3~1/4에 불과하다. 거기다 주당 40시간 근무하는 간호사와는 달리 88시간 일을 시킬 수 있다. (그것도 최근에 정해진 전공의 법으로 줄어든 것이다. 주당 최대 168시간을 시키기도 했다.)
전공의 입장에서는 수련은 노동력 착취를 당하는 노예의 시간인 동시에 평생 써먹을 기술을 배우는 교육의 시간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근무를 했다.
하지만 특정과(소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의 경우, 평생 써먹기도 어려울뿐더러 각종 소송으로 위험성까지 높아져, 새내기 의사 입장에서는 그 과를 전공의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 결과 레지던트 지원자가 폭락했다.
문제는 저수가로 인해, 우리나라 대학병원이 전공의 없이는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라는 데 있다. 이에 일부 병원에서는 전문의에게 입원 환자를 보게 하는 '입원 전담의' 제도를 도입했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손해다. 입원 전담의의 경우, 전공의에 비해 월급은 3배 이상 많지만, 일과 근무시간(40시간)은 전공의(88시간)에 비해 훨씬 더 적다. 업무량 대비 월급이 최소 6배 이상 차이가 난다. 대학병원 입장에서는 역시 전공의만 한 게 없다. (그래서 주구장창 대학병원이 전공의 및 의대 증원을 늘리자고 주장한다) 일부 흉부외과 및 외과에서는 전공의가 없어, 간호사에게 가운을 입힌 후 의사 역할을 맡긴다. 일명 PA(Physician Assistant)로 편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다.
전공의가 부족하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미래의 전문의가 줄어든다. 한국? 전문의가 넘치는 나라이다. 그래서 전문의가 줄어도 지금은 상관없다. 당장의 문제는 대학병원의 교수다.
다시 의대 교수가 하는 일을 보자.
1. 논문
2. 학생 및 전공의 등 교육
3. 외래 진료(8시~5시)+정규 시술(수술)
4. 응급실 진료+응급 시술(수술): 24시간
5. 병동 입원 환자 진료: 24시간
이 중에서 24시간 해야 하는 응급실 진료+병동 입원 환자 진료 대부분을 전공의가 담당했다. 하지만 전공의가 없자, 24시간 해야 하는 응급실 진료와 병동 입원 환자 진료에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전공의가 줄어든 소아과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응급실 진료를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전공의가 없자, 교수의 일이 많아졌다. 당연히 교수들은 의사들을 더 뽑아달라고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의사를 더 뽑아줄 리가 없다. 병원 운영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당직을 서다 지친 교수들이 병원을 그만둔다. 기존의 고위험, 저이익이었지만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겨우 버텼던 대학병원 교수들마저도, 전공의 부족으로 인한 업무 증가로 대학병원을 떠나가고 있다. (참고로 변화가 두려운 나이 든 교수들은 어떻게든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높지만, 젊은 교수들의 경우 사직하는 비율이 높다.) 이번에도 전공의를 채우지 못한 많은 병원의 대학교수들은 이미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있을 것이다.

모든 건, 저수가와 고위험으로 시작되었다. 그 결과가 전공의 미달에 이은 교수 사직 사태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의 대책이란 <의대 증원 증가>였다. 기존의 의대 교수마저 사직하고 있는데, 학생을 더 뽑으면 누가 의대생을 교육할까?

의사와 전문의는 넘친다. 없는 건 그동안 노예처럼 일하면서 버텨왔던 바이탈과 전공의뿐이었다. 그리고 전공의가 없어지자, 다음에 사라질 건 전공의가 없는 대학병원의 교수다. 남은 교수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