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 업데이트 2024년 4월 24일 02시 28분
선심성 의료정책들로 중병 앓는 K의료
의대 2000명 증원은 역대급 정책 실패
“의료공백 탓 초과 사망 1만 명 예상”
‘증원 강행’으로 사태 수습 자신 있나
서울의 한 의대 교수가 이런 요지의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의대 증원 사태를 무모한 외과 의사의 의료사고에 빗댄 것이 절묘하다. 환자의 보호자 입장에선 원점 재논의를 요구하며 “일단 덮자”는 의사도, 국립대 의대를 동원해 증원 축소안을 제시하며 “종양 몇 개라도 떼자”는 정부도 미덥지 않고 불안하기만 하다.
선진국 수준이라는 한국 의료는 속으론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상태다. 박정희 정부가 건강보험을 도입하고 노태우 정부가 완성할 때까지는 좋았으나 이후에 나온 정책들이 줄줄이 실패하면서 병을 키웠다. 김영삼 정부는 미니 의대를 무더기로 신설해 교육의 질과 효율을 떨어뜨렸고, 김대중 정부의 의약분업은 환자들에게 병원과 약국 두 곳을 모두 돌게 하며 건보 재정을 축냈으며, 건보 통합과 진료권 폐지는 전국의 환자들을 서울 대형병원에 불러모으면서 지역 의료를 약화시켰다.
의학전문대학원은 김대중 정부가 계획하고 노무현 정부가 실행했는데 늦은 나이에 의대 공부를 시작한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미용 의료로 쏠리면서 필수의료 위기만 키웠다. 문재인 정부의 ‘문케어’가 보장률은 찔끔 올리고 건보 재정을 거덜 낸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거듭된 정책 실패로 기신기신 연명해온 K의료에 2000명 사태는 치명적이다. 의료계에서는 올해 사망자 수가 36만 명대로 1만 명 늘어날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의료공백이 아니었다면 살 수 있었을 ‘초과 사망자’들이다. 앞으로가 더 큰 일이다. 필수의료 회생이 시급함에도 2000명 발표 후 수련병원에서 필수의료를 책임지던 전공의들부터 빠져나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비필수 분야로 바꾸거나, 의사 수가 늘기 전에 일찌감치 개원해 한몫 벌려고 할 것이다. 정부가 진료 유지 명령으로 필수의료 의사를 ‘의노예’ 부리듯 하는 모습을 본 의대생들이 필수의료를 하려 들까.
다음 달부터는 간호사 월급을 못 주는 수련병원들이 나온다고 한다. 못 버티고 도산하면 병원 직원들은 실업자가 된다. 정부 지원도 받기 어려운 사립대 병원 몇이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가 들린다. 수련병원이 문 닫으면 그 많은 의대생들은 어디서 수련하나. 국립대병원 망하지 않게 하고 의대 교육 인프라 늘리는 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재정이 들 것이다.
10년 후 증원된 의사들이 배출돼 의료비 지출을 늘리기도 전에 건보 누적 적립금은 바닥나게 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혈세 낭비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문케어를 폐기했다. 후임 대통령은 ‘윤케어’를 뭐라 평가하게 될까.
역대 정부의 의료정책 실패에 대해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은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을 근본 원인으로 꼽는다. 같은 사회보험인 연금은 공동으로 마련한 돈주머니에서 모두가 연금을 지급받지만 건강보험은 주머니는 같이 채워도 병원에 가는 횟수는 달라 의료 쇼핑 같은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건보 도입 초기엔 재정 범위 안에서 의료 이용을 통제하는 일본 제도를 따라해 문제가 없었는데, 이후 ‘한국형’으로 운용하면서 수요 관리는커녕 선심성 정책들을 남발하거나, 장점은 한 가지인데 부작용은 열 가지인 설익은 정책들을 밀어붙이다 재정만 축내고 제도 왜곡을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의료개혁이라고 강변한다. 진짜 개혁은 다른 선진국의 2.5배나 되는 의료 이용을 줄이고, 의사들이 비급여 과잉 진료를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도록 의료 원가를 보상해주는 것이다. 4400만 유권자에게 병원 덜 가고 보험료와 세금 더 내라, 싫은 소리 하기보다는 14만 의사와의 싸움이 쉬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의대 증원 주도 의료개혁’이란 ‘소득 주도 성장’만큼이나 황당한 발상일 뿐이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곧 가동된다. 특위부터 꾸린 뒤 의대 증원을 논의했어야 하는데 일을 거꾸로 하다 보니 본업인 의료개혁이 아니라 당장 배 열고 누운 환자 출혈 막고 바이탈부터 잡아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정부는 증원 철회는 없다고 하고, 의사들은 그런 정부를 ‘돌팔이’라 욕하면서도 나서지 않는다. 최악의 의료사고다. 어쩌자고 배부터 갈랐는지 그 외과 의사도 후회하고 있을까.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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