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최선의 치료를 했음에도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의사를 처벌하지 않는다. 진료 중에 발생한 나쁜 결과에 대해서 의사를 법정구속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의사의 실수나 과실이 인정될 때에는 의사단체도 정부도 아닌 공공기구(public organization)인 면허관리기구를 통해 전문가적 판단을 기초로 여러 가지 징계조치가 이루어진다. 비전문가적 행위(Unprofessional behavior)가 가벼운 경우는 반성문과 경고로 끝내기도 하고, 벌금을 물리고 재교육을 명령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면허를 정지시키거나 박탈하기도 한다. 의료사고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는 자동차보험 시스템에서 보상처리하는 방식으로 배상보험을 통해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살인, 강도, 마약 등 중범죄가 아닌 의료행위 중 발생한 나쁜 결과를 두고 의사를 감옥에 가두고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비지성적인 판결이 문제가 되고 있다. 악의를 가지고 행한 의료행위가 아닌데 단지 치료의 결과가 안 좋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당하는 동료 의사들의 모습을 보며 해당과 의사들은 그들도 운이 없으면 소송에 휘말려 법정에 설 수 있고, 감옥에 갇히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배상금을 물 수 있다는 공포에 떨게 되었다. 비이성적인 판결의 결과로 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이 떠나가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진료과에서는 사망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대개 치명적인 결과는 일명 필수의료로 알려진 흉부외과, 일반외과, 소아과, 내과 등에서 발생하게 된다.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일에 책임을 물어 가두고 벌하는 법집행이 계속 되자 필수 의료가 무너져 버렸다.
우려스러운 현상이 계속 되어선 안 된다. 여기서 도미노 여파를 막아야 한다.
2013년 5월 복통으로 진찰받은 아이가 횡격막 탈장이 진단되지 않아 사망했다. 횡경막 탈장은 드문 케이스지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42살 의사 전 모 씨는 금고 1년 6개월, 41살 송 모 씨와 36살 이 모 씨는 각각 금고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로 인해 소아응급환자를 보던 의사들이 대거 진료 현장을 떠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2016년 흉부외과 의사 A씨는 수술전 동의를 받지 않는 폐절제를 시행했다. 수술 전 예상했던 것보다 막상 수술 현장에서 병변을 살펴본 결과 병변 부위가 모두 섬유화로 대치되어 폐 기능의 회복이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판단하고 수술 전 설명한 쐐기절제술보다 넓은 범위를 절제했다. 결과는 11억 원을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2023년 8월에는 선천성 심장 수술을 한 소아환자에게 뇌손상을 일으킨 과실을 물어 9억을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의사가 사전에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되었다. 흉부외과 의사가 수술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악의를 가지고 시행한 것이 아니다. 위험하고 힘든 수술영역인 흉부외과 의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 소식을 들은 유능한 흉부외과 의사들은 줄줄이 수술칼을 내려놓고 미용과 비만 처방을 하는 진료를 선택했다. 환자를 위한 선의의 행위가 자신의 위치와 재산을 한 번에 빼앗아 가버릴 수 있다는 공포와 허탈감이 작용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들이 집단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이대 목동병원 소아과 여교수는 항암치료를 받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인신 구속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5년 만에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해당 소아과 교수들과 전공의들은 모두 병원을 떠나고 없었다. 아니 몰아내 버렸다. 나도 저렇게 손목에 수갑을 찬 죄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이들의 마음을 진료실에서 떠나게 했다.
2019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 제3형사부는 안동의 개인 산부인과의원에서 태반조기박리에 의한 과다출혈로 산모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의료진의 부주의라며 산부인과 의사를 금고 8개월로 전격 법정 구속하고, 분만 담당간호사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가뜩이나 출산을 담당하는 산부인과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의사가 법정 구속되자 출산을 담당하던 산부인과 의원들이 위험한 출산을 피해 부인과만 진료하거나 피부 미용 등의 진료영역으로 대거 이탈해 버리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의료사고는 환자나 의사나 누구나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으로 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문제는 해결방법이다.
외국에서는 치료 후에 발생하는 나쁜 결과에 대해 의사를 법정 구속시키는 일이 전무하다. 세계의사회 임원들이나 각 나라 의사회원들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런 황당하고 무리한 법집행 소식에 경악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의사들의 비전문가적 행위에 대한 징계는 면허관리기구에서 담당한다. 의사들에 대한 구속수사나 금고형 이상의 형집행은 살인, 강간, 마약 등 중범죄에 한해서만 이루어진다.
미개한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2023년 어떤 이유든지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를 취소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운이 없어 피하지 못할 건널목 교통사고라도 나게 되면 그 의료인은 면허가 날아가고 무직자가 되어 버린다.
(팬엔마이크 기고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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