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암흑 시대
AD5c 클로비스
서유럽의 시조 프랑크왕국 창시자.(메로빙거 왕국)
-> AD 496 기독교로 개종, 봉건제 수립하여 통일 시킴.
-> 서유럽은 문자, 화폐도 없는 물물교화의 야만 사회 (로마 문명 소멸)
-> 왕-영주-기사-농노 의 개인적인 역할 치중. 각자의 역할. ( 개인주의 활발 )
-> 모든 권력이 환관(궁재)에서 나옴
-> 궁재인 카를 마르텔의 아들 피핀 3세가 반란 일으킴
-> 교황과 협상해서 왕권을 인정 받고 교황직할 지역 선물 받음 (바티칸 시티)
-> 카롤링거 왕조 시작 ( 샤를 대제 )
-> 대지역 정벌 (역사의 순환 )
-> 중앙 집원이 안되니 화폐 장악력이 없어 물물교환이 성행함
-> 무역 감소하고 금권이 흩어짐
-> 왕권이 약화 되고 영주권력이 강해짐
AD 9~10C 가난한 이들의 돌파구는 전쟁으로 인한 약탈 해적질
-> 바이킹 시대, 십자군 시대 도래
-> 수많은 약탈한 물건들로 무역이 활발해지고 도시와 상인에 부가 집중됨.
-> 북유럽도 기독교 개종하면서 해적질보다 문명사회를 추구하기 시작함
** 중세 당나라 송나라 시대에 비하여 유럽은 초라한 상황
-> 영주는 군사,행정, 사법권 장악
-> 장원의 농부들이 도망가서 군락을 이룸
-> 농노가 아닌 수공업자들로 원료를 구하기 쉽고 거래가 쉬운곳에 집결
-> 도시 형성
->땅에 기반을 둔 농노들과는 다르게 분업에 의한 수공업자들
-> 척박한 땅에서 살기에 영주들도 세금 걷는것으로만 만족
-> 국왕은 영주의 권력을 약화 시키기 위해서 자유 도시민들에게 혜택을 줌
<도시 거주 1년이면 영주의 속박에서 자유로와지는 법 선포>
-> 국왕은 도시 발달을 위해서 직위까지 하사함
-> 상업이 부흥되면서 도시에 돈이 몰리고 인구도 증가 ( 상업과 화폐 유통은 신흥 귀족 탄생시킴 )
-> 영주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지고 도시 상인들은 부유해지면서 용병 고용
-> 도시민들 관할권을 인정함. ( 영주들은 세금만 잘 받으면 만족 )
-> AD 11c 후반부터 상업 혁명 시작 ( 로마시대에 비하면 아직도 형편없음)
-> 로마시대 활발했던 화폐는 300여년간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문자와 화폐가 없던 야만의 사회) 물물교환을 위주로 했다가 도시 상업이 발달하면서 화폐 부활.
-> 땅의 임대료를 받던 영주의 점점 약화됨.
-> 신흥 귀족 탄생 ( 시민 )
장원의 귀족, 기사, 성직자, 농노 계층이 아닌 도시 수공업자 : 일명 도시 시민
-> 영주의 힘이 약화 되고 왕권이 강화됨
스페인 네덜란드 금융
1492년 8월 3일 콜롬버스 출항 ( 총 3회)
-> 식민지에서 공급되는 금.은의 유입으로 스페인 숨통 터짐
-> 유럽 전체 물가 상승 ( 통화 팽창 )
-> 로마 멸망이후 15C 까지 거의 1000년간 변화 없이 지내가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
-> 봉건영주의 가반 붕괴 ( 토지 임대료 폭락 )
수공업자들의 재앙 (사치품 해외 수입이 증가 -> 금,은의 해외 유출)
신흥 상인 계층 증가
모든 재화가 스페인 귀족에게 몰림 ( 사치품이 증가하면서 국내 사업 순환이 안됨)
-> 가톨릭 국가로서 유대인들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추방 ( 대부업 전문가들 사라짐 )
-> 네덜란드는 신교의 나라로 비교적 종교의 자유가 있었음.
-> 스페인의 국내 자금이 유출되면서 경기 하락
1588년 네덜란드 독립
-> 서유럽의 주요 하천이 흐르는 곳
->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로 은행업 발달 ( 유대인들 증가 )
-> 공평한 행정 체계 유지 ( 신뢰성 증가 )
-> 세계 최초 증권 거래소 개설 (1609년)
-> 유럽 최초 차용증 시작 ( 수표 )
-> 세계 은행들과 많은 자금을 몰림
-> 국제 환율, 무역, 종이 화폐의 중심이 됨
-> 강한 자금력으로 세계 경제 동제력이 강해짐
-> 왕실에 지나친 대출로 은행 부실 초래.
-> 튤립 사태처럼 거품으로 인한 광풍 발생 (1635년)
-> 시장의 믿음 붕괴 (by 탐욕과 공포)
-> 1710년부터 쇠퇴하기 시작
-> 유대인과 자금의 이동으로 국제 금융의 중심이 영국으로 이전됨.
-> 산업 혁명이 발발하는 영국으로 세계 권력이 이동됨.
” 금융 시장의 역사는 반복 된다. 다만 반복되는 것은 언제나 ‘위기’ 뿐이다“
Patent ( 특허권 )
기원은 여러 가설이 있음
14C 영국 왕이 속이 공개된 봉투에 특허증서를 줌
Letter Patent -> Patent (open 이란 뜻 )
1623년 영국 왕실이 돈받고 특허권 남발 -> 의회가 법제화 ( 전매 조례 )
-> 특허제도 도입 후 기술자들이 발명 폭발
(토지가 없는 일반 자유 시민이 부를 축적하는 유일한 방법 )
-> 산업 혁명의 도화선.
그라스고 대학 기계수리공이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 발명
산업 혁명
왜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 왕권이 약화 된 상태
봉건제 약화
자유로운 농민들 도시로 모임 ( 모피 산업을 위한 인클로저 운동으로 쫓겨남)
인클로저 운동으로 부자 시민들이 증가 ( 1,2차 인클로져 운동 )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성숙 ( 개인의 재산. 특허권등 인정 )
나폴레옹 전쟁에서 비교적 안전함.
산업혁명 연료인 석탁이 풍부.
16C 연료용 목재가 고갈
-> 영국에 흔한 석탄이 이용되기 시작
-> 기술적 발전 필요성 증가 ( 탄광 배수, 석탄 운송, 철광석 용해등 )
-> 국민들에게 특허권 인정, 수많은 발명들 신고. 부 축적의 좋은 방법이됨
-> 증기기관 발명 ( 동력의 혁명 )
1698년 펌프식 엔진 발명 ( 탄광 배수의 혁명적인 해결 )
1712년 증기 펌프
1763년 증기기관차 발명 ( 직선 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전환 )
1770년 방적 기계 발명 ( 면화에서 면사 추출)
방직 기계 발명 ( 면사로 옷감을 짜는 기술 )
1774년 제임스 와트는 특허권을 사업가 매튜 볼턴에게 넘김
1776년 볼튼앤 와트 증기기관 시운전
1782년 복동식(피스톤을 여러개로) 증기기관 발명 ( 와트)
1831년 세계 최초로 장거리 (리버풀~멘체스터) 철도 증기 기관차 시작
(by 스코틀랜드 탄광 기관사인 스티븐슨 )
1860년 자유무역 체제 정착 ( 자유 무역 제국주의)
기술 혁명 -> 경제 혁명 -> 정치 혁명
1832년 선거법 개정 ( 투표권 소유 남자이 10%에서 50%정도 많아짐 )
세계 최강의 중국에서는 왜 산업 혁명이 없었나?
- 인쇄술, 화약, 나침반 등 최고의 기술 보유국
1405~1433년 명나라 영락제의 명으로 환관 정화는 총 7회 항해 원정
- 매회 60여척 3만명 동원 원정대 ( 콜럼부스는 1492년 3척 수백명뿐)
- 명나라의 문명을 널리 알리고 조공을 받는 분위기일뿐 무역과는 무관
유럽 기독교 ; 직업의 소명, 근면, 저축의 미덕.
경쟁 체계 . 자기 재산 소유, 특허권 인정
중국은 국가 통제 중앙 집중 황정 국가. 개인 소유 재산 증식 등 불허.( 극히 일부 인정 )
상업보다 농업을 중시함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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