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동이야기

필수 분야 소고

[MEDMAX]
소아응급실이란
세상의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지만
마주할 때마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에게 금식이 필요하다는 말에 대뜸

그럼 저는요? 저는 밥 어떻게 해요?
나가서 먹고 올건데 애 좀 봐 주실 수 있나요?
하는 부모들의 아무렇지 않은 얼굴과
아이가 교통사고, 혹은 자살시도를 해
응급실로 오셔야겠다는 말에
저 감기몸살이라 힘들어서 못 가요,

저 내일 출근해야 돼서 피곤해서 못 가요,

하는 부모들의 졸음 낀 목소리였다.

아주 드물 것 같지?
 
소아응급실에서 일 해 본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다 혀를 내두를 것이다.
그들의 말간 얼굴과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에 대하여.
-
정부가 내지르는 각종 반헌법적 명령
공무원들이 함부로 뱉는 모욕적 워딩에
분노와 자괴감이 치밀기는 했지만
사실 썩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바이탈이라는 걸 잡아 본 적이 있다면
정부가 원하는 방향이 뭔지 분명히 알게 된다.
(필수 비필수가 아니다. 모든 과의 일부는 바이탈이다.
피부과에도 바이탈이 있고, 소아응급실에도 바이탈 아닌 것들이 있다. )
정부는 국민 한 명 한 명의 생명을 신경쓰지 않는다.
고령자, 만성질환자, 미숙아, 장애인,
즉 사회적 비용이 많이 투입되는 인간의 존재가
국가 재정을 ‘좀 먹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미숙아를 살리는 것,
고령의 만성질환자를 돌보는 것,
장애인등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의사들이나 신경쓰고,
그래서 국가의 돈을 쓰고,
그래서 저들에게 눈치 없다 미움 받는 일이었다.
안타깝지만,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보통의 인간은 생각보다 건강하다.
수준 높은 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아주 극소수이고 (소아청소년과는 더욱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을 거라 믿는다.
그러니 ‘좋은 의료’란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옆 동네 누가 뇌혈관 시술을 받든 말든
내 기침약 빠르고 싸게 받는 게 좋은 의료다.
옆 집 애가 심장병으로 죽든 말든
우리 아들 해열주사 얼른 놔 주는 게 좋은 의료다.
솔직해지자.
우리는 내 몸이 아닌 한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정부가 원하는 것은
세금을 낼 당신일 뿐, 세금을 쓸 당신이 아니다.
그러니 하나 된 정부와 온 국민이
강렬하게 환호하며 박수치는 방향으로
배가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이 와중에도 저 터무니없는 정책을 발표하던
공무원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면
욕 먹던 누군가가 나서서 또 살릴 것이다.
가벼운 손가락으로 댓글 욕을 달던 악플러도
교통사고가 나서 실려가면
돌 맞던 누군가가 나서서 또 살리려고 할 거라고.
정부와 국민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일을 할 의사들을 없애고 있는 중,
나는 그렇게 내쳐진 수 많은 의사들 중 하나일 뿐.
나의 사직은 자의일까, 타의일까?
내가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 자의일까? 타의일까?
자, 이제 국민 생명을 볼모로 협박 중인 건 누구지?
p.s.
떠도는 글이고, 출처도 불분명하여
공유하는 것이 부적절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저의 10년과
소아청소년과에서 머문 저의 17년은
이 모든 상황에 정확히 동의할 수 밖에 없기에
저의 지난 날이 대신 전하는 말이라는 생각으로 공유합니다.
대한민국 소아 의료의 정점에서
배우고 일할 수 있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Allison -

'감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민기씨급 인성에 존경을 드리며  (0) 2024.05.12
인생에 중요한 Tip  (0) 2024.04.11
제발 이제 각자에게 솔직해지자  (0) 2024.01.13
<서양여자, 일본여자, 한국여자>  (1) 2023.12.08
이론과 현실  (0) 2023.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