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지금 中패권주의와 美보호주의 사이에서 진퇴양난 상황 맞아
국가 安危와 관련한 국민적 공감대 이끌어낼 지도자像이 절실한 시점
대한민국은 갈수록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사드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은 마침내 아시아 맹주로의 이(齒牙)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할 조짐이다. 일본은 아베의 지휘 아래 일본 강국의 옛꿈을 되살리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로 우리의 유럽 시장은 흔들리고 있다.
3년 전 나는 '한국인만 모르는 세 가지'란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인은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모르는 것 같다'는 세계인들의 지적을 소개했었다. 우리는 이번 라오스의 ARF 회의에서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사드 문제로 한국에 취한 교만하고 안하무인격인 태도를 목격했다. 우리는 왕이의 눈빛과 몸짓에서 500여 년 전 조선 왕(王)의 무릎을 꿇리면서 지었던 중국 지배자들의 조소와 조롱의 표정을 연상할 수 있었다. 중국은 자국의 이해 앞에서는 홀연히 제국적으로 군림하는 '무서운 이웃'인 것을 드러낸 셈이다.
우리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굴종의 역사였다. 그 4000년 세월은 핍박과 가난의 세월이었다. 그러던 우리는 2차 대전 이후 중·일에 갇혀 있던 '감옥'에서 풀려나 미국의 인도로 세계로 나왔고 그 후 60년 민족의 역사상 가장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중·일의 속박에 갇혀 있을 때 우리는 비참한 나라였고 그 울타리에서 탈출했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또다시 중국과 일본의 굴레가 우리를 엄습하는 것을 느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 안에 갇히면 우리는 죽고, 그것을 벗어날 때 우리는 살 수 있다는 역사의 경험칙이다. 이제야 우리는 중국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나라인가를 깨닫는다.
우리가 세계무대로 나오도록 손잡아줬던 것은 미국이었다. 공산주의와 싸우는 전쟁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이끌었던 것도 미국이었다. 하지만 한국이 이제 중·일의 포위망에 또다시 갇히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때 우리를 받아줄 미국은 이미 어제의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우리뿐 아니라 미국의 선의에 편승해 무임승차하는 데 익숙한 전 세계의 '관습'에 제동을 걸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도, 일본도, 유럽도 제 몫 챙기는 데 혈안인데 '이제 미국도 제 몫을 챙겨야겠다'이다.
100년 전 구한말 우리는 국내 정변의 소용돌이 때 '중국이냐 일본이냐'의 기로에서 방황했다. 1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중국이냐 미국이냐'의 선택에 당면하고 있다. 상황은 그때보다 더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중국의 전략은 단순히 군사적이고 외교적인데 국한되지 않고 한국의 목줄이다시피 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앞세우고 있다. 우리의 손을 잡아줄 것으로 기대했던 미국도 더 이상 시혜적(施惠的)이지만 않고 때로는 선택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서(西)쪽에서 밀려오는 중국의 패권주의와 동(東)쪽에서 돋아나는 미국의 새로운 보호주의 사이에서 진퇴양난인 형국이다.
미국의 저명한 외교전략가 브레진스키 박사는 그의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에 밀리는 상황에서 한국이 갈 수 있는 길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중국에 종속되는 것, 둘째 핵을 보유하는 것, 셋째가 일본과 협력해 중국에 맞서는 것이다. 핵무기는 국제사회가 가로막고 있고 일본과의 협력은 차라리 중국을 선호해온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중국의 속국이 되는 것이다. 한국이 끝내 사드 배치에 실패하고 아시아 제국이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에 미온적으로 나올 때 미국은 궁극적으로 일본 열도로 미국의 방어선을 후퇴하고 아시아를 중국에 내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곧 한국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갈림길에서 중국을 선택한 모양새가 되면 그 이후 우리는 독립적 존재로 살 수 없고 중국에 예속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이 브레진스키의 예언이다.
눈을 안으로 돌려 보면 나라 안 사정은 참담하다. 정치권은 여야 모두 파벌 싸움에 여념이 없다. 지금 우리가 외교·안보 면에서 얼마나 위중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커녕 논의조차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되도록 미·중 문제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두루뭉술 전술'인 것 같다. 무엇을 감추려는 것인지, 몰라서 그러는지,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지, 일부러 그러는지 알 길이 없다. 대통령은 사드에 대한 내각의 소신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거기에 비리 혐의를 받는 측근 참모의 '소신'까지 얹어서 격려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금 대통령에게는 나라의 안위에 관한 중대사를 직접 국민 앞에 들고 나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도자 상(像)을 보여주는 것이 절실하다. 국가 대사를 참모회의에서 '지시'로나 하달하고, 정치적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회의나 시장(市場)에 나들이나 할 만큼 지금 나라 사정이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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