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토는 작고, 삼면이 바다이며 국경
또한 짧다. 그런데 침략을 많이 받았다고?
괜한 피해자 코스프레일뿐 우리는 조선 500년 동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딱 두 번 침략을
겪었을뿐이다. 수많은 국가들이 비교도 안될 정도로 침략 당했으며 소멸된 국가도 부지기수다.
우리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점도 있었지만 침략이 적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침략 당할 가치가 없는 나라였다. 즉 침략한 국가가 고생에비해서 쟁취할 보상이 미비했다. 조선은 덕분에 유래없이 장기간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목재로 불필요한 휜 소나무가 오래 가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평화는 외부 세계로부터의 자극을 없앴고 그로 인해 혁신의 압력과 동기가 없었다.
전쟁하면 모방이 일어나고 모방으로부터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는 법인데 우리는 그런 압축적인 자극과 동기가 없었다. 그리하여 무인을 존중하고 상업을 중시할 어떤 유인과 동기도 없었다. 결국 士農工商이라는 기존의 질서, 문약에 빠진 지식인들만이 권력을 누리고 武人을 천대하며 구질서에 집착하는 정체된 조선이 될 뿐이었다.
조선의 쇠약, 멸망, 일제에 의한 강제 합병등을 거치면서 유교과 성리학의 책임을 묻곤 하는데 오히려 유교는 일본과 중국에 비해 조선이 훨씬 퇴보한 상황이었으니 그저 핑계일 뿐이다.
사농공상으로 굳어진 사고,
모든 것을 도덕으로 환원하는 경직성,
명분에 함몰된 지적 전통,
고립주의적 세계인식이
이 모든 것의 유교와 연관 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현재에 와서도 우리들의 발목을 잡는다.

왜 유교 사회인가?
1) 모든 문제를 프레임으로 환원시킨다.
2) 지나치게 공부에 많은 보상을 준다.
3) 국가를 가정의 확대라고 생각한다.
4) 사회 권력이 자연스럽게 이중화 된다.
1) 모든 문제를 프레임으로 환원시킨다.
모든 문제를 도덕적 옳고 그름으로 환원시켜 과거와 청산에만 매달린다. 때문에 유연한
실용적 사고, 미래를 보는 시야가 생기기 어렵다.
2) 지나치게 공부에 많은 보상을 준다.
사 士 계급과 신분에만 많은 보상을 주고
상인과 공인, 기술자를 무시한다.
의사와 같은 전문가도 중인으로 무시하는 분위기.
3) 국가를 가정의 확대라고 생각한다.
유교 국가 답게 국가를 가정의 확대라고 인식하는데 국가는 철저히 전쟁을 준비하는 조직일 뿐이고
통치의 임무는 국민들을 전쟁과 재해 분쟁에서 지켜주는 것이다.
국가가 자애로운 부모일 수 없고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치루어야할
희생과 협력이 있어야한다. 무임승차를 뻔뻔하게 자기 권리로 주장할 수 없다.
4) 사회 권력이 자연스럽게 이중화 된다.
87년 체제 성립 이전에는 상인과 무인의 세상이었다. 식민지, 독립, 한국 동란, 월남전, 중동 특수,무 역상사를 통한 전세계 무역 등 武人과 商人의 시대로 급성장하였다. 87년 체제 이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산업화 이후 민주화, 민주화 이후 조선화의 경로를 밟았다.
이제 다시 과감히 리스크를 짊어지려고 하는 이들이 주인이 되는 商工農士의 세상이 되어야한다. 仁義禮智信이 아니라 信義禮智仁의 나라가 되어야한다. 도덕의 프레임으로 모든 문제를 따지지 말고 과거에서 벗어나야한다. 경제 민주화가 아닌 경제 자유화의 원칙을 헌법에 넣고 경자유전의 원칙을(헌법 121조) 헌법에서 폐지해야한다.
선비와 농민이 아니라 상인, 공인, 장인, 전문가가 권력을 쥐고 이끌어가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고 시험과 공부에 많은 보상을 주는 게 아니라 변화 와 혁신에 보상을 주고 자유와 창의력이 적극 권장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