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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OECD 자료

의료에 관한 OECD 자료 'Health at a glance 2023'에 대한 간략한 고찰 및 의견 124
 
 

의사 증원의 가장 강력한 논거로 인용되는 자료는 OECD에서 발표하는 ‘인구 천명 당 의사 수’입니다. 뭐, 여러가지 찬반 논쟁은 있지만, 대중의 귀에 쏙쏙 박히고 그리하여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내용이 바로 ‘인구 천명 당 의사 수’일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저 ‘인구 천명 당 의사 수’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봤지만, 그 원본 자료가 무엇인지, 또는 그 자료에 들어있는 다른 내용들은 어떤지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의료에 대한 너무 뜨거운(그리고 감정적인) 논쟁은 살짝 지나간 듯 하여 ‘인구 천명 당 의사 수’의 소스가 되는 문헌의 다른 통계 자료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의견을 덧붙여보고자 합니다.(물론 저도 도표 위주로 리뷰했고, 내용 글까지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 간단히 도표를 살펴보고 자료를 공유하는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근거가 되는 문헌은 매년 OECD에서 발간하는 “Health at a Glance”라고 하는 자료이고, 최신판은 2023년판입니다. 인터넷 검색해보시면 쉽게 다운 받아서 원본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자 먼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구 천명당 의사 수입니다.

 

 

일본과 동일하게 2.6명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한의사 수를 빼면 2.4인가 2.3인가 한다고 하니, OECD 평균 3.7명에 비해서도 매우 낮고, 순위 상으로도 매우 닞은 순위입니다.

 

그런데, 인구 당 의사 수를 참고할 때에는 두 가지 부분에 유의하며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가 의사의 숫자는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의사의 적절한 숫자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는 의사 숫자가 많은 것이 절대선이라서가 아니라, 의료의 질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적절한 의사 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그 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무엇을 목표로 체계화되었고,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파인 다이닝을 하는 고급 음식점과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 필요한 손님 100명당 요리사의 숫자는 매우 다를 것입니다. 즉, 그 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목표하는 목적과 구조에 따라서 필요한 적정한 의사 수는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럼 결과적인 우리나라의 의료 평가 지표는 어떤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기대 수명입니다. 이건 뭐, 다들 아시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수위권입니다.

 

 

회피 가능 사망률이라 번역해야 하나요? 적절한 조치로 살릴 수 있었는데 사망한 경우를 의미하는 듯 합니다. 예방 가능 사망률 8위, 치료 가능 사망률 3위로, 모두 상당히 좋은 순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산부인과가 관계된 모성 사망률입니다. 8.1로 순위로는 중간보다 조금 못한 순위 정도지만, OECD 평균에 비해서는 좋은 편입니다.

 

영아 사망률입니다. 2.4로 매우 좋은 편입니다. 2.4 미만은 38개국 중 7개국입니다. OECD 평균은 4.0입니다.

 

핵심적 의료 서비스에 대한 인구 커버리지입니다. 100이니까 뭐…

 

의외로, 의료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네요. 38개국 중 8위입니다. 당연히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구요.

 

한해 1인당 진료 건수입니다. 이건 2위와도 매우 큰 격차로 탑오브탑입니다. 우리나라는 연간 1인당 진료 횟수 15.7회, 2위인 일본이 11.1회, OECD 평균은 6.0회입니다.

 

보통 정밀검사라 부르는 CT, MRI, PET scan 검사 건수네요. 아주 근소한 차이로 3위입니다.

 

인구당 병상 확보도 일본과 더불어 탑2입니다.

 

 

이 자료에는 우리나라는 나와있지 않지만, 백내장 수술, 고관절 치환술, 슬관절 치환술 수술을 받기 위해 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OECD 평균을 보면 백내장 수술을 받기 위해 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42%, 고관절 치환술을 받기 위해 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58%, 슬관절 치환술을 받기 위해 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67%입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OECD 평균적인 국가에서는 이런 수술들을 받기 위해 평균적으로 3개월 이상을 대기해야 한다는 얘기지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나는 반드시 빅 5 병원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의에게만 수술 받겠어!”라고 고집하는 경우가 아니면 이 세가지 수술 모두 늦어도 1,2주 이내에 받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거의 0%에 수렴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자료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듭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 후 30일째 사망률입니다. 이건 OECD 평균보다 조금 안좋네요. 29개국 평규은 7.0명, 우리나라는 8.4명입니다.

 

반면에 뇌경색 후 사망률은 매우 좋습니다. 순위 4위로, 3.3명입니다. OECD 평균은 7.9명입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에서 공인하는, 의료의 지역 별 격차가 가장 적은 나라입니다. (이건 아마도 우리나라 국토의 넓이가 작은 것에 기인하는 요인도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농 의료인 수 격차가 가장 적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지방에 의사를 더 보내기 위해서 가장 노력하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당 평균 의료 비용은 OECD 평균보다 살짝 낮은 수준입니다. (뒤에 기술했지만 GDP 대비로는 OECD 평균보다 약간 높습니다. 기본적으로는 OECD 평균 수준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OECD 평균 비용을 가지고 상당히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자… 이쯤 자료를 보다보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왜 우리가 OECD 평균에 집착해야 하는가. 평균적인 의료 비용을 가지고도 대부분의 수치가 의료 접근성면에서는 탑 수준이고, 결과적인 의료의 질도 거의 모든 항목에서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데? OECD 평균을 지향한다는 것은 높은 의료의 접근성과 의료의 질을 OECD 수준으로 현재보다 악화시켜야 한다는 얘긴데?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의사 수는 1000명당 1~1.3명 늘어나는 대신에, 같은 돈을 내고 평균수명은 3세가 줄어들어야 하고 예방 가능했던 사람이 10만명당 99명이 더 죽어야 하고, 치료 가능한 사람이 10만명당 36명이 더 죽어야 하고, 임산부는 10만명당 2.8명이 더 죽어야 하고, 영아는 10만명당 1.5명이 더 죽어야 하고, 급성심근경색 환자는 100명당 1.5명 더 살아나는 대신에, 뇌경색 환자는 100명당 4.6명이 더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왠만한 수술을 받으려면 3개월은 기다려야 합니다. 이게 OECD 평균의 의료입니다. 이게 과연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추구해야 하는 이상적인 의료인가요?

 

OECD 평균, 평균 운운 하는 것은, 결과가 이미 OECD 평균보다 훨씬 우수한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OECD 평균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면 모를까요.

 

게다가 지금 상태로 놔둬도 우리나라는 의사의 숫자가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구 천명당 의사 숫자 우리나라랑 비슷하고, 의사 숫자 늘렸다가 많다고 줄이는 추세라는 일본도 증가속도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느립니다. 다만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가까워지네요.)

 

뿐만 아니라 55세 이상 의사 비율이 26%로, 고령 의사의 비율이 적어 의사의 평균 연령도 낮은 편이라 앞으로도 의사 숫자의 증가 속도는 줄어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대로 놔둬도.)

 

앞서 말씀드렸듯이 의사의 수는 의료의 접근성과 의료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이 OECD 자료를 근거로 할 때 우리나라는 접근성과 질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사의 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급격하게 늘려야 한다는 주장엔 어떤 정당성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OECD 평균을 따르자는 말은 마치 반에서 2,3등 하는 아이에게 반평균 정도 하는 아이의 공부 방법을 따라하라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좀 더 흥미로운 주제로 바꿔서, 우리나라 의사들은 돈을 많이 버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자료가 있더라구요.

 

일반의(GP) 봉직(월급쟁이)의 경우에는 평균 수준, 일반의 개업의의 경우에도 평균적인 수준으로 보입니다.(아마도 우리나라 전문의 비율이 높고, 상당 비율의 일반의가 수련중인 인턴, 레지던트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반면 전문의(specialist)의 경우 봉직의 경우에도 2위 수준이고, 개업의의 경우에는 탑입니다.(OECD 전체는 아니지만 조사국 중에서는.)

 

그런데 의사 1인당 진료건수를 보아하니… OECD 평균의 대략 3.5배 진료하는군요. 2위 일본과도 거의 1.5배 차이입니다. 물론 이러면 의사의 노동시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환자 1인당 진료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을 테니 노동강도가 3.5배라고 하긴 어렵긴 하겠습니다만… 

 

아주 러프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의사들은 OECD 평균에 비해 1.5배쯤 더 벌고, 두세 배쯤 더 일한다는 느낌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 부분이 우리나라의 진료가 (최소한 현재까지는)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최대한의 의료접근성과 효율을 만들어낸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의료 제도는 매우 안어울릴 것 같은 두가지 체계가 결합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매우 사회주의적 지급 체계(전국민 의료보험, 당연지정제)를 가지고 있고, 실제 의료 공급 체계는 거의 완전히 자본주의적으로 민간에 의존(2023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병상 8.8%, 그 악랄한 의료 민영화의 굇수라고 하는 미국도 공공병상이 21%정도 됩니다.)하고 있습니다.

 

즉, 국가에서는 ‘야, 너네들 진료 해도 건당 진료비, 치료비는 이 정도 이상 못 주니까 니들이 환자를 많이 보든 어떻게 하든 알아서 돈 벌어.’라고 하는 것이고, 의사 개개인은 부에 대한 욕망을 좆아 빡빡한 수가의 틀 안에서 어떻게든 환자를 많이 보고 수술을 많이 해서 돈 벌기 위해 노동 강도를 높이고, 자기들끼리 경쟁하면서 빚 내서 병원 세우고 하는 과정에서 의료가 제공되어 왔던 것이지요. 그래도 할만한 것이, 요즘엔 내가 죽도록 일해도 큰 돈 벌 수 있는 직업이 몇 없는데, 어쨌든 의사는 내가 그만큼의 노동 강도를 감당하면, 그만큼의 수입이 보장되니까요.

 

그럼 이런 의문도 들 수 있습니다. ‘아니, 돈 좀 덜 주고, 경쟁 더 시키면 비용도 줄어들고 서비스는 더 좋아지는 것 아니야?’

 

일견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는 전체 의료 공급의 절대 비율(90% 이상)을 민간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체제가 없습니다. 치킨집 없어지면 피자 먹으면 되는 분야가 아닙니다. 

 

반드시 제공되어야 하고, 그 주체는 민간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의료 비용이 적게 계상되는 이유는, 공공 병상이 매우 적기 때문에, 의료기관의 설립, 운영, 폐쇄에 들어가는 비용이 의료비가 아닌 의사 개개인의 빚이나, 기업의 비용으로 계상되기 때문인 면도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산병원 하나 짓는데 드는 건립 비용만 해도 땅값 빼고 대략 2~4조원 이상 될겁니다.)

 

자, 50원을 내고 게임을 하는데, 50% 확률로 이기면 150원을 받습니다. 게임을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해야지요. 기회비용이 75원인데요.

 

그럼, 20억을 내고 게임을 합니다. 50%의 확률로 60억을 받습니다. 기회비용은 30억입니다. 다만, 50%의 확률로 당신의 인생은 끝장납니다. 빚더미에 올라 앉아 평생을 그 빚 갚느라 허덕이며 살아야 합니다. 50%의 확률로 추가적인 10억의 기회비용과 인생을 걸고 게임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위와는 달리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입니다.

 

대략 50~70 병상정도 되는 정형외과 병원을 개업하는데 드는 비용이 건물, 임대로 등 빼고 운영비 빼고 시작하는데 드는 비용만 공동개원을 하더라도 의사 한명당 20~30억 정도를 감당해야 합니다. 설마 의사들은 그 정도 돈은 다들 통장에 낭낭하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대부분의 비용은 빚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빚 갚으며 살 리스크를 짊어지는 이유는 이길 확률이 높든, 보상금이 크든 그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의 기회비용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 기회비용을 빼앗아버리면 병상의 90%가 민간에서 공급되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의료의 공급이 극단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증명된 것이 사라진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병원입니다.) 보상이 적은 분야에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뛰어드려는 참여자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개원이라는 옵션이 매우 제한되면, 그 인원을 수용해야 하는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해지게 되고 봉직의의 월급도 매우 낮아질 것입니다.(의외로 의사 월급의 탄력성은 매우 커서, 특정 과 의사가 조금만 과잉되도 월급이 1 ,2년만에 30%~50%씩 깍이기도 합니다. 이 역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에서 증명되었습니다.)

 

결국 그 끝에는 의사 수입이 폭락하는 속시원한 결말이 기다리고는 있겠으나, 그로 인하여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장점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면, 속시원한 거 빼고 모두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그럼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우수한 상태이니, 지금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좀 보완해서 유지할 수있으면 좋겠는데, 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두가지 측면에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첫번째로는, 의료의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에 의존하는 나머지, 의료 공급의 균형이 맞지가 않습니다. 의사 아니라 개개인 누구라도 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9to5 잘 지켜지고 급여 수준도 높은 대기업에 합격하고, 밥먹듯이 야근하고 급여도 적은 중소기업에도 합격했습니다. 그럼 누구나 대기업을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너는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윤리적 비난을 가하는 것이 합당할까요? 합당한 것은 개인으로서 주어진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비교적 열악하고 기회도 적고 위험은 높은 바이탈과(필수과라는 용어는 애초에 있지도 않았고 다분히 정치적인 용어라고 생각합니다.)를 회피하는 것이 민간이며, 개인인 의사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비용이 많이 들되, 이익이 되지 않는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폐쇄하는 것이 민간이며, 개인 사업체인 병원에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지역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이 운영이 되려면 그만큼의 환자풀, 즉 인구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서울, 경기야 인구가 많고, 이미 병원이 많다 해도 딴 병원에서 뺐어올 환자라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강원도 산골은? 애초에 병원이 들어갈 인구가 확보가 안되요. 거기에 수십억 빚져서 병원을 세우면 100%의 확률로 망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습니다. 이건 절대 민간에 강제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것은 사명감이나, 의료 윤리 등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특정 영역에는 과잉공급이 되고, 특정 영역에는 부족해지는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때문에요? 공급이 전적으로 민간에 의존하고 있고, 개인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 때문에요.

 

사실상 이 부분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바이탈과를 선택할 유인을 만들어주든가, 아니면 공공 영역 공급을 아주 큰 폭으로(최소 30~50% 이상으로) 확대하든가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보는데, 둘 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갑니다. 특히 공공병상 확보에는 설립만 해도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갈 뿐더러, 더 중요한 운영비. 수익이 안나는 지역, 안나는 과 중심으로 공공병원을 설립하면 무조건 큰 적자일 것이고(심지어 도심에 있는 보험공단 일산병원도 매년 적자.), 이건 일회성 비용이 아니라 지속적인 비용이기 때문에 추후 국가 예산에도 지속적으로 매우 큰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정치인들이 표 떨어지게 막대한 자금을 들여야 하니 세금 더 내라는 말을 할까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두번째로는 안그래도 10년 이내에 파탄날거라 공식적으로 보고서가 나온 의료보험 재정 상태인데, 우리나라 의료비가 현재는 OECD 평균에 수렴하는 정도이지만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1인당 의료비 지출은 OECD 평균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었는데, GDP 대비해서는 지금도 OECD 평균보다 약간 높습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상당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즉, 현재 의료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현 상황에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날 개연성이 있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지속 가능성과는 반대로 가는, 의료 시스템의 죽음을 앞당기는 정책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의사 숫자가 OECD에 비해 많네 적네가 아니라, 의료 시스템 자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입니다.

 

애초에 소형차에 대형 트럭 엔진을 달아놓은 꼴입니다. 처음에야 작은차에 큰 엔진이 달려있으니 엄청나게 잘 나가겠지요. 근데, 차대 자체도 엔진 출력을 감당할 수 없을 뿐더러, 기름도 엄청 먹을겁니다. 안그래도 기름 다 떨어져가서 도로 한복판에서 차 멈출 판인데, 출력을 더 높이겠다… 맞는 처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겠는가… 여기서부터는 의료계의 입장도 아니고 순수하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비용적, 질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연장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현행 시스템을 최대한 유지하되, 민간에 의존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공백(바이탈과, 지방 의료)에 대해서 지원을 늘려서 보완해가는 방향이 맞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기적으로는, 지금의 의료체계를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키고 유지시키려면 정책 방향은 의료 수요를 제한하는 쪽으로 진행되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환자의 자기 부담률을 높이고, 2차, 3차 병원의 비용을 늘리고 진료의 지역 제한을 강하게 두어 의료 전달체계를 확보하고, 의료보험료도 점진적으로 높여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금의 시스템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저는 위의 단기적, 중기적 조치조차도 임시방편일 뿐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조만간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식 자본주의적 의료시스템으로 갈 것인가(자꾸 민영화, 민영화 하는데, 우리나라는 공공 의료 자체가 거의 없어요. 애초에 절대적으로 민영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영국식 사회주의적 의료시스템으로 갈 것인가.

 

그리고 이 선택을 해야하는 핵심 이유는, 의료의 접근성을 제한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식은 비용으로, 영국식은 시간으로.

 

위의 두 표에서 보시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의료 이용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입니다. 1인당 진료 건수도 압도적이거니와, 입원 일수도 압도적으로 길어요.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끝이 없습니다. 의료의 가격이 0이 되면 의료 이용은 끝없이 늘어날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회 의료 이용 비용은 매우 싸고, 접근성은 매우 높습니다. 거기다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 병원의 특성 상 의료전달체계는 작동하지 않고, 상급병원의 이용이 매우 수월합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의료의 이용이 많은 것입니다.

 

저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에도, 유지하는 것에도 찬성하지 않는데, 왜냐면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 어떤 의료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가 먼저 결정이 되어야 거기에 필요한 의사의 수를 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 수 산정에 필요한 장기적 계획 자체가 없는데, 무슨 10년, 15년 후 미래의 의사 수를 결정하는 의대 증원에 대한 근거가 있을 수가 있습니까.

 

장기적으로 영국식 사회주의적 의료 시스템으로 이전하겠다는 플랜이 있으면, 그와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한 영국, 캐나다 등의 나라를 분석하고 그에 필요한 의사 수를 산정해야 할 것이고, 미국식 자본주의적 시스템으로 가겠다고 한다면 의사 수 자체를 시장 원리에 좀 더 맡기는 결정을 해야겠지요.

 

그런 장기적 플랜도 없이 OECD 평균 의사 수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출산률 0.7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대책을 세우지 않아 국가 소멸의 길로 가는 것처럼, 의료 시스템 역시 때 되면 지지율 목적으로 후벼팔 지언정, 아무도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플랜에는 관심이 없어 그대로 붕괴의 길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억지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책없는 붕괴는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각자도생의 상태를 만들 것이고, 그 각자도생의 결과는 아마도 미국식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표가 하나 있어서 소개해드리자면…

 

 

우리나라를 보면 기대수명, 사망회피는 매우 좋고, 만성 질환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아서 객관적으로는 건강상태가 매우 좋은 편인데도, 스스로 평가하는 건강 정도는 모든 조사국 중 가장 나쁩니다. 마치 우리나라는 치안이 매우 좋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큰 것처럼, 객관적 건강상태는 나쁘지 않은데도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국민 정서가 좀… 공포에 질려 사는 측면이 있는건가 싶기도 합니다. 의료 이용이 과도하게 높은 원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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