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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낙서

6·25때 좌익의 학살....부자·경찰 가족이라고 죽이고 아기까지 水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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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힘이 없어 치안을 안정시키지 못한 정부의 문제가 제일 크다. 치안의 붕괴된 정글세상의 약육강식 상태에서는 힘이 없는 자가 죄인일 뿐이다. 세상 어디에도 일방적인 피해는 있을 수 없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함부로 엄청나게 억울한 약자인 양 피해자 코스프레하면서 보상 장사질 하지 말기 바란다. 5.18 이나 4.3 사건 다 마찬가지다. 일방적인 사건은 없다. 세상의 모든일은 절대적 선과 악으로 간단히 구분지어질 수 없다. 억지부리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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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진실화해위원회 6·25 가족 집단학살보고서

입력 2023.02.23 03:00
 
2017년 신안 임자면 진리 백산들에 세워진 순교기념비 제막식. 6·25 당시인 1950년 10월 4일 밤 이판일 장로 일가 12명은 집에서 수요 예배를 드리다 끌려 나와 다음날 새벽 이곳에서 좌익들이 휘두른 몽둥이와 죽창, 삽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판일 장로 아들인 이인재 목사는 가족을 죽인 가해자를 용서하고 교인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용서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진리교회

전남 장흥군 대덕읍 옹암리에 살던 김기순(당시 48세) 일가 36명은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10월 초 지방 좌익에 끌려가 몰살당했다. 인민군이 퇴각하던 무렵이었다. ‘부유하다’는 게 빌미가 됐다. 김기순 부부와 아들, 동생 부부, 조카 등 35명은 동네 앞바다에 수장됐다. 시신은 옹암리 앞바다 갯벌에서 발견되거나 바닷가에 떠밀려 왔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 신입생이던 김씨 장남 김수현은 고향 마을로 돌아오다 같은 동네 출신인 좌익들을 만났다. ‘다 아는 사람들인데 설마 우리를 죽이겠어’라고 했지만, 김수현은 이들에게 맞아 죽었다. 10남매 중 타지에 있던 남동생 둘만 겨우 살아남았다. 희생자 36명 중 10세 미만이 10명이나 됐다. ‘아기들을 수장하려고 가마니에 넣어서 가는데, 장난치는 줄 알고 웃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좌익의 가족 집단학살 사례

◇주민 모아놓고 죽창으로 가족 몰살

전남 영광 백수면에 살던 김진원(당시 68세)씨 일가 20명도 1950년 10월 3일 동네 저수지 인근 정자나무 아래로 끌려 나갔다. 지방 좌익이 마을 주민들을 모이게 한 뒤 ‘부유하다’ ‘기독교인이다’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식구가 있다’는 이유로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 김진원은 이 동네 백수교회 장로였고, 가족 모두 교회 신자였다. 희생된 가족 중에는 여섯 살 손녀를 비롯, 미성년자도 여럿이었다. 이날 박모씨 가족 7명, 임모씨 가족 10명도 함께 희생됐다.

본지가 입수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까지 진실 규명을 마친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1039명 중 김기순 일가처럼 좌익·빨치산 등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한 경우는 308명이었다.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의 윤형수 일가 18명, 학산면 상월리의 김윤찬 일가 17명, 장흥군 대덕읍 연정리의 강주삼 일가 16명, 전남 화순군 북면의 김상규 일가 14명 등 10명 이상 떼죽음당한 사례도 많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2022년 말 펴낸 보고서 중 일부다. 전남 신안 임자면 진리교회, 영광 백수면, 장흥 대덕읍, 영암 학산면에서 좌익 등 적대세력이 죽인 민간인 희생사건을 다뤘다.

◇'軍警이 가해자’ 신청 사건이 좌익보다 2.5배

진실화해위는 가족이 7명 이상 희생당한 사건을 집단적 가족 희생 사건으로 분류했다. 군경·우익 단체에 의해 가족이 집단 학살된 경우는 40명이었다. 7명 이상 희생은 없었고, 3명 이상으로 기준을 내려 얻은 숫자다. 좌익의 민간인 학살은 가족을 집단적으로 죽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이번 가족 집단 학살 통계는 위원회가 지난 1년 6개월간 진상 규명을 마친 사건(1039명)만 기준으로 했다. 위원회에 접수된 6·25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은 군경, 우익을 가해 주체로 지목한 사건(9957건·1만256명)이 좌익·인민군을 지목한 사건(3885건·4032명)보다 2.5배쯤 많다. 민간인 희생 사건 진상조사가 끝나면, 군경, 우익 단체가 가해 주체인 사건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전체 조사 기간 절반쯤 지난 상태에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면서 “좌익의 민간인 학살은 가족을 몰살시키는 경우가 많고, 여성, 어린이, 고령자의 희생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경찰 가족의 집단 희생 많아

진실화해위의 민간인 희생 사건 보고서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경찰·공무원 가족’ ‘기독교인’이라거나 ‘잘산다’는 이유로 좌익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가족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영암 학산면 일대에선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다. 상월리 김동진·김윤제(19명), 김윤찬(17명) 일가, 묵동리 고승환(11명) 일가, 독천리 박정안(7명) 일가, 용소리 곽사원(7명) 일가 등이다. 김동진의 사촌은 경찰이었는데, 빨치산들이 토벌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 앞산, 냇가에서 일가족 19명을 죽창으로 찔러 몰살시켰다고 한다. 김윤찬 일가도 아들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마을 뒷산에서 지방 좌익에 의해 희생당했다. 좌우 대결의 선두에 있던 경찰을 가족으로 뒀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가 많다는 사실이다.

6·25당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좌익에게 목숨을 잃은 임자 진리교회 신자 48명을 추모하면서 세운 기념탑(1990년). 진리교회 입구에 있다.

◇임자 진리교회 신자 48명 집단 학살

신안군 임자면 진리교회 이판일 장로 일가 12명은 1950년 10월 4일 밤 집에서 수요 예배를 드리던 중 습격을 받았다. 지방 좌익이 예배당을 폐쇄했기 때문에 집에 몰래 모였다. 일가는 포승줄에 묶여 근처 대기리 백산들로 끌려갔다. 좌익들은 이들을 죽창과 몽둥이로 살해한 뒤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매장했다. 진리교회 신자 35명도 이판일 일가 피살을 전후해 희생됐다. 임자 진리교회는 당시 희생당한 신자 48명을 순교자로 기념하고 있다.

 

이판일 일가 희생자 중 일곱 살 조카 이완순을 비롯, 19세 미만 미성년자는 7명이다. 이완순은 그날 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가족이 끌려가는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이판일 일가를 죽이고 돌아오던 좌익에게 발견돼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다른 가족은 시신을 수습했지만 갯벌에 버려진 이완순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진실화해위가 작년 말까지 조사를 마친 전남 영암 학산면, 장흥 대덕읍, 영광 백수면, 신안군 임자면(진리교회), 화순, 함평 등 여섯 지역에서 벌어진 좌익·인민군 학살의 공통점은 희생자 중 10세 이하 어린이가 많다는 점이다. 학산면(32명·24%), 대덕읍(21명·17%), 백수면(11명·17.7%), 임자면(10명·16%), 화순(10명·20%), 함평(3명·15%) 등이다. 살아남은 유족의 고통도 컸다. 위원회 보고서엔 ‘부모가 죽창에 찔려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평생 힘들게 살다가 사망했다’ ‘일가족 14명이 희생된 후 평생 악몽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실려있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교과서에서 보도연맹 사건이나 노근리 사건 등을 부각하고 좌익·인민군의 학살은 얼버무리기 때문에 6·25 당시 민간인 희생은 우리 군경이 주된 가해 주체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번 조사는 좌익의 학살이 어린이와 여성, 고령자를 가리지 않는 비(非)인도적 가족 집단 학살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왜 식구 학살당한 교회에 돌아왔을까…”

“아버지는 해군이 상륙할 때 부역자 색출 위원장으로 함께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족을 죽인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이들을 살리는 데 앞장섰다는 거예요.”

이성균(60·사진) 전남 신안군 임자면 진리교회 목사는 1950년 10월 초 지방 좌익에게 희생당한 이 교회 이판일 장로의 손자다. 장남인 이 목사의 아버지(이인재·1922~2009)는 결혼 후 분가해 목포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하지만 부모, 동생, 숙부·숙모와 사촌 등 일가 13명을 잃었다.

이 목사는 작년 3월 할아버지 등 일가 13명과 교회 신자 35명이 6·25 당시 희생당한 사건 진상을 밝혀달라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했다. 위원회는 작년 11월 29일 진리교회 신자 48명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지방 좌익이 휘두른 몽둥이, 죽창, 삽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냈다.

이 목사는 “아버지가 혹시 가해자들이 피해를 볼까 봐 광목천에 태극기를 그린 완장을 만들어 나눠주면서 일종의 신원 보증을 해주셨다고 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에도 ‘이인재가 좌익 가해자의 아들을 살려줬다’는 증언이 나온다. 원래 목수였던 아버지는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가 마흔 무렵 목사가 됐다. 1956년 전도사로 진리교회에서 3년쯤 일했고, 1983년 다시 이 교회 담임 목사로 돌아와 10년 가까이 목회했다. “아버지는 가해자를 용서하고 교인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가해자의 아들 주례도 서줬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성균 목사는 2016년부터 진리교회 담임 목사로 일하고 있다. “생전에 아버지께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부모님과 동생 등 가족을 몰살한 가해자를 용서한 것까지는 그렇다쳐요. 그런데 왜 두 번이나 이 교회에 와서 가해자를 교인으로 받아들이고 섬겼는지…. 저도 목사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진실규명결정서

진실화해위원회는 항일 독립운동과 6·25 전후 민간인 희생, 권위주의 시기에 일어난 인권침해 등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설립한 독립적 조사 기관. 1기 (2005년~2010년)에 이어 2020년 12월 2기 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회는 접수된 사건을 조사한 뒤, 위원회 의결을 거처 ‘진실규명’을 결정한다. 진실규명결정서는 위원회 조사 과정과 사실 확인 내용, 피해자 및 유가족에 대한 피해 및 명예회복을 위해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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