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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기록집

‘의료대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尹 대통령, 의료 카르텔에 속고 있을 수도…”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 분만 중 태아에게 장애 생겼다고 의사에게 16억원 배상 판결… 의사들, “미용하지, 뭐”
⊙ “성남의료원 작년 적자 600억원… 지역의료원은 노조들의 밥”(우봉식 전 의료정책연구원 원장)
⊙ “시골 의사·의료기관 모두 포화 상태… 새로 개원할 자리 찾기 힘든 실정”(김창훈 전남 함평 한빛의원 원장)
⊙ “공공의대와 지방의료원은 좌파의 차세대 먹거리”(서울 모 의대 교수)
⊙ “윤 대통령이 현실 인식 잘못하고 있어”(노환규 전 의협회장)
⊙ 안상훈 국힘 의원,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등이 ‘의료 개혁’ 추진자로 지목돼
지난 6월 17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최 휴진 관련 집회에서 교수, 전공의,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조선DB
  참새가 곡식을 쪼아 먹는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참새를 가리키며 말했다. ‘농민의 식량을 빼앗다니 참새는 나쁜 새다.’ 그때부터 참새 사냥이 시작됐다. 1955년에 시작된 제사해(除四害) 운동이다. ‘나쁜 새’가 없어지자 해충이 창궐하고 곡물 수확량이 급락했다. 3년간 4200만 명이 아사(餓死)했다. 결국 중국 공산당은 소련 연해주에서 참새 20만 마리를 몰래 수입해풀었다. 참새는 ‘해로운 동물’ 목록에서 슬그머니 빠졌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지 10월이면 1년이다. 진통 끝에 2025학년도에는 의대생을 1497명 더 뽑기로 결정했다. 전국 39개 의과대학에서 4610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이사이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났다. 전공의 1만3531명 중 1만2380명이 병원을 떠났다. 전체의 8.5%인 1151명만 수련병원에 남아 있다.(보건복지부 통계, 8월 기준) 의대생들도 휴학에 들어갔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 집계 자료를 보면, 1만5216명이 휴학계를 냈다. 의사국가고시에도 응시생이 없다. 결국 내년 초 자연히 배출될 예정이던 일반의 3000명이 배출되지 않게 됐다. 현재 돌아가는 걸 보면 내후년에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정부는 의사를 늘리겠다고 했지만 증원 발표 후 결과적으로 의사가 1만5000명 줄었다. 배출되어야 할 전문의도 안 나오게 되니 전문의도 줄어든 거다. 전공의들의 강경한 자세를 보면 역시 내년에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유례없는 독특한 의료 시스템
 
  일단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살펴보자.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워낙 독특해 이걸 모르고서는 지금의 난국을 이해하기 힘들다. 전 세계 의료 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미국식 자유 시장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이 없고 민간 시장 위주로 돌아간다.
 
  둘째, 유럽식 의료 시스템이다. 국가가 모든 의료를 공급하고 관리하는 사회주의 의료 제도다. 영국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나라들에도 민간 시장은 존재한다. 진료비가 무료인 공공의료기관과 공공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민간 병원이 함께 존재한다.
 
  셋째, 대한민국 의료다. 겉으로는 의료가 자유 시장 경제인 것 같은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정부가 의료 체계를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다. 감기에 걸려 동네 의원에 간다고 해보자. A의원에 가든, B의원에 가든 환자가 내는 치료비는 기본적으로 같다. 의사는 환자에게도 진료비를 받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도 치료비를 청구해서 받는다. 두 가지를 합친 게 바로 의료수가(醫療酬價)다. 의료 개혁 논쟁에 단골로 등장하는 ‘수가’가 바로 이걸 뜻한다. 의사의 경력이나 의술 등등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같은 질병이면 같은 수가를 적용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마음대로 진료비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수가가 낮은 이유
 
  수가를 두고 ‘수가가 낮다’ ‘수가를 올려야 한다’ 이런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수가는 어떻게 정해졌을까. 1976년 처음 수가를 책정하면서 당시 의료비에서 55% 인하한 가격으로 정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를 들어 맹장염 수술을 할 때 원가가 100만원이라면 정부가 수가를 정하면서 ‘건강보험 환자들 치료비로는 55만원만 받아라’고 강제했다는 얘기다. 이때는 의사들이 가만히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건강보험 가입자 자체가 많지 않았다. 5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만이 대상이었다. 직장의료보험조합이다.
 
  건강보험 가입자가 아닌 일반 환자들에게는 1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일반 환자들 진료비로 보험 가입자들 진료로 본 손해를 메울 수 있었다. 정부는 의사들에게 ‘보험 가입자가 늘어나면 수가를 올려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십수 년이 지나도록 수가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문제는 1989년에 일어났다. 차츰차츰 건강보험 가입 대상자가 늘어나더니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이 완성됐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건강보험 가입자가 됐다. 의사들은 더 이상 비보험 가입자들의 진료비로 손해를 메울 수 없게 됐다. 그런데도 수가는 제자리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6년 낸 보고서를 보자.
 
  〈의과의 경우, 원가보전율이 최종 추정 결과 73.9%로 계산이 되었으며, 진료과별로는 소아과가 34.2%로 가장 낮았고, 치과의원의 경우 급여행위 원가보전율이 61.2%로 매우 낮게 나왔으며, 진료과별로 큰 편차를 보이지 않았음. 한의원의 경우 원가보전율이 92.7%로 계산되었으며, 특히 기본 진료 관련 의사 업무량과 진료비용이 낮아서 기본 진료의 원가보전율이 200%가 넘는 것으로 일차적으로 추계되었음.〉
 
  소아과의 경우 100만원의 원가가 드는 치료를 해도 진료비를 34만원만 받는다는 얘기다. 치료를 하면 할수록 소아과 의사는 손해인 셈이다.
 
 

  이후로도 수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뇌동맥류 수술의 수가 얘기가 나왔다. 뇌동맥류 수술은 수술 시간만 5~6시간 걸린다. 의사 여러 명에 간호사 여러 명이 달라붙어 대여섯 시간 수술하면 296만원을 받는다. 20분가량 걸리는 시력 교정 수술인 라식수술 비용과 비슷하다. 일본의 경우, 뇌동맥류 수술 수가는 1200만원, 미국은 6000만원 정도다. 똑같은 수술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하면 의사는 20배를 벌 수 있단 뜻이다. 296만원이면 반려견 수술 비용보다 낮다. 뇌 수술도 아니고 강아지 슬개골 탈구 수술이 서울 기준 200만~300만원 선이다.
 
  그러면 의사들은 어떻게 손해를 메워왔을까. 당시 진료를 했던 외과 의사 A씨의 얘기다.
 
  “2000년 당시 개인병원에서 맹장 수술을 하면 의사는 수술비로 12만5000원을 받았습니다. 마취료 조로 2만5000원을 따로 받았고요. 총 15만원 받은 거죠. 그런데 개인병원에 마취과 전문의가 있겠습니까. 마취과 의사를 부르면 따로 8만원은 줘야 했어요. 그럼 대체 의사가 받는 수술비가 얼마인가요? 7만원이죠. 맹장 수술을 의사 혼자 합니까. 간호사며 병원 인력들이 있어야죠. 그러니 안 써도 될 약을 더 쓰고 약값 리베이트 받고, 환자 오래 입원시키면서 손해를 메웠어요. 그런데 2000년에 김대중 정부가 의약분업을 실시한 겁니다.”
 
 
  DJ 정부의 의약분업
 
 
의약분업, 진료권 폐지 등 김대중 정권의 의료 정책은 지방 의료의 몰락을 가져왔다. 사진=조선DB
  2000년은 한국의 의료재정 역사에서 중요한 해다. 그해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이 시작됐다. 그때까지는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로 나뉘어 있었던 것을, 이때 재정을 한 곳으로 합쳐버렸다. 의약분업으로 의사가 처방전을 발행하면 환자가 약국에 가서 약을 사는 식으로 바뀌었다. 건강보험 재정이 본격적으로 파탄 나기 시작했다. 의사로서는 효과가 같으면서도 좀 더 저렴한 약을 처방할 유인(誘因)이 없어지고, 약국의 운영비, 인건비 등을 실질적으로 건보가 대주게 되면서 건강보험 적자 폭이 2조원으로 급증했다. 이 결과 건강보험에 대규모 국고 지원이 이뤄졌다.
 
  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이 경질되고 김대중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의약분업에 항의하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진료수가를 올려줬다. 진료수가는 얼마 후 다시 내렸다. 이때부터 개인 병원에서는 더 이상 맹장 수술을 하지 않게 됐다.
 
  ‘3분 진료’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환자와 길게 상담하지 않는 진료 방식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박리다매(薄利多賣)’라도 해야 손해를 메울 수 있다. 외국과는 수가가 얼마나 차이 날까. 우리나라의 의원급 외래 초진 진찰료는 2020년 기준 1만6410원이다. 미국은 13만2001원, 일본은 3만2069원이다.
 
  여기에 비급여 진료가 가세했다. 비급여 진료는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대한 치료’를 뜻한다. 각종 성형수술, 시력교정술 등이 다 비급여 진료다. 도수치료도 비급여다. 실비보험 제도와 맞물려 비급여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종합병원의 경우 검사비로 수입을 올렸다. CT, MRI, 초음파 검사 등이다. 흔히 ‘의사 되면 돈 번다’고 할 때 돈 버는 수단으로 비급여 진료를 생각하면 된다.
 
 
  진료권 제도 폐지 후 지방 의료 몰락
 
  김대중 정부가 우리나라 의료에 미친 영향은 심대하다. 당시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정책 담당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이 정도로 영향을 미칠지 알았을까? 의약분업 못지않게 중요한 게 진료권 제도 폐지다.
 
  1989년 전 국민으로 건강보험이 확대될 때 노태우 정부는 지역 간 균형적 의료 발전을 위해 진료권 제도를 시행했다. 진료권 제도는 환자가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분만, 응급, 기타 부득이 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건강보험증에 표시된 중진료권 내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했다. 가족의 간호를 받기 위해 다른 진료권에서 진료를 받고자 하는 경우에도 보험자로부터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건강보험 혜택을 부여했다. 진료권은 138개 중진료권과 8개 대진료권으로 편성돼 있었다. 1단계 진료는 중진료권의 의원 등을 이용하고, 1단계에서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야 대진료권의 2단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춘천시에 산다면, 일단 춘천시 안의 의원에서 진료를 본다. 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의사가 판단하면, 강원도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는 식이다. 이러지 않고 별 이유 없이 바로 서울로 가서 진료를 보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었다. 이 제도 덕에 지방에 의원, 병원들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도 줄었다.
 
  그런데 1998년 7월 김대중 정부는 진료권 제도를 폐지했다.
 
  1998년 10월엔 모든 병·의원을 1단계 진료기관으로 하고 상급종합병원만 2단계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병원 분류 체계를 바꿨다.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모든 병·의원 사이에 경쟁이 시작됐다. 결국 빈익빈 부익부였다. 동네 의원들이 급속히 사라지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비교적 경증의 병이라도 서울 등 대도시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려가기 시작했다. 2004년 KTX가 개통되며 서울 쏠림 현상이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암 등 중증 질환의 경우 집 근처에 대학병원이 있어도 서울로 올라와 진료 보는 게 마치 최선을 다하는 환자와 가족의 자세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진단은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장례는 삼성서울병원에서’라는 말이 2000년대 들어 유행했을 정도다.
 
 
  전문의 되려면 14년 걸려
 
  이제 1명의 의사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자. 의과대학에 입학하면 6년간 공부를 한다. 원래 전에는 일반 교양과 전공 과목을 함께 공부하는 의예과 2년, 본격적으로 전공 공부를 하는 의학과 4년으로 구분되었는데, 지금은 그 구분이 없어졌다. 의대생들이 공부해야 할 것들이 이전보다 더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제는 6년 동안 전공 과목을 가르친다.
 
  공부량뿐 아니라 학비 역시 만만치 않다. 대학의 모든 학과를 통틀어 의대가 가장 학비가 비싸다. 의대 중 학비가 가장 비싼 이화여대 의대는 1년 학비가 1289만원이다. 고려대는 1241만원, 연세대 의대는 1210만원, 서울대는 1007만원이다. 가장 낮은 곳은 전남대로 625만원이다.(2024년 기준)
 
  의대 등록금은 왜 이렇게 비쌀까. 학생을 교육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 일단 실습 수업이 많다. 해부학 실습이 대표적이다. 혈관이 어디에서 어디로 지나가는지, 각종 장기는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사람의 신체를 구석구석 살펴봐야 한다. 숭고한 뜻으로 기증한 기증자의 신체를 보며 공부한다. 병리과 수업을 들으려면 각자 현미경도 있어야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진의 연봉도 타과보다 높다. 대부분 임상을 하면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의사와 교수 역할을 다 한다는 얘기다. 외국의 의과대학은 어떨까. 의대 학비를 국가가 전액 대주는 곳이 많다. 유럽만 봐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의대 학비가 무료다.
 
  5년 차(본과 3학년)부터 수련병원으로 실습을 나간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의료 현장에서 직접 접하기 위해서다. 본과 4학년이 되면 의사국가고시를 치른다. 실기와 필기를 본다.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일반의가 된다. 일반의도 환자 진료를 하고 병원을 개업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의대생이 전문의 과정으로 들어간다. 수련의(인턴) 생활 1년, 전공의(레지던트) 생활 4년을 한다.(전공의 기간이 3년인 과도 있다.) 인턴 기간은 전문 진료 과목을 정하기 위한 탐색 기간이다. 전공의 기간 동안 전문 과목 1과목을 정해 임상 수련을 한다. 전공의 기간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전공의들이 혹사당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주 80시간씩 근무하며 진찰, 검사, 수술, 처치 등 다양한 업무를 감당한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24시간 당직도 전공의의 몫이다. 내과와 외과의 1년 차들은 주 120시간 근무하기도 했다. 참고로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주 40시간 근무하는 것이다.
 
 
  “출산 장면 한 번도 못 보고 산부인과 전문의 될 수도”
 
  지난해 말 기준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는 740명이었다. 서울대병원 전체 의사의 46.2%다. 다른 ‘빅5’ 병원도 다르지 않았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40.2%, 삼성서울병원은 38%, 서울아산병원 34.5%, 서울성모병원 33.8%다. 고려대(안암·구로·안산) 병원의 경우 35%다. 이러니 전공의들이 사직하자 대형병원이 잘 안 돌아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병동부터 수술실, 중환자실, 응급실 모두 마비될 수 있다. 일본 도쿄대병원의 경우 10.2%다. 미국 메이요클리닉(로체스터 본원)은 10.9%다.
 
  물론 전공의 기간에는 월급을 받는다. 2020년 기준 같은 해 전공의의 평균 연봉은 7280만원, 인턴의 평균 연봉은 6882만원이었다. 만약 전문의를 고용한다면 병원 입장에선 인건비가 서너 배 더 든다. 최대한 전공의들을 활용하는 게 경영 수지상 좋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돈이 아니다. 수련을 해야 할 기간에 수련을 받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외과 의사 B씨의 얘기다.
 
  “예전엔 산부인과 전공의라고 하면 아이를 여러 번 받고 전문의가 됐어요. 이제는 출산 장면 한 번도 못 보고 산부인과 전문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산모의 항의 때문에 남자 전공의는 분만 참관도 못 합니다. 의료 소송 우려 때문에 전공의들에게 수술을 맡기지 않기도 하고요. 결국 교수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전공의 기간을 보내는 거죠.”
 
  더구나 요즘엔 전공의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바로 펠로(fellow) 과정이다. 전임의, 임상강사라 부른다. 세부 분과별로 일종의 추가 수련을 하는 기간이다. 펠로 제도에 대한 비판도 많다. 전공의 기간에 수술기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펠로가 되어야 가르친다는 식이다. 병원 내에서 펠로의 지위 자체도 불안하다. 계약직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7000명 이상
 
 
우봉식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
  전공의 과정을 끝내고 전문과목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비로소 전문의가 된다. 대학 입학부터 전문의가 될 때까지 11년이 걸린다. 남자라면 중간에 군대에 가야 한다. 인턴 과정 전에 군대에 가면 보통 공중보건의로 복무한다.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엔 군의관으로 복무한다. 두 경우 다 복무기간은 3년이다. 남자의 경우 전공의로 사회에 나오기까지 총 14년이 소요된단 얘기다. 물론 공보의나 군의관 복무를 포기하고 일반 사병으로 입대한다면 시간이 단축된다.
 
  정부의 입장을 살펴보자. 정부는 의사 숫자가 부족하다고 했다. 2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사 수가 부족해 많은 국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보건 산업 수요에 대응할 의료 인력까지 포함하면, 2035년까지 약 1만5000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추산된다.”
 
  정말 의사 수는 부족한 걸까.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7월 25일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3〉을 분석해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수준을 발표했다. 의료 인력 부문에서 한국의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 인구 1000명당 2.6명)가 OECD 국가(평균 3.7명)보다 낮다고 밝혔다.
 
  여기에 의사 측은 이렇게 반론한다. 우봉식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아이엠재활병원 병원장)의 말이다.
 
  “국가마다 다른 제도, 공급 구조 등을 감안하지 않고 단지 숫자에만 집착하는 것은 고차 방정식을 단순 덧셈, 뺄셈으로 결정하자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의 도화선이 된 필수의료는 젊은 의사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환경이 문제입니다. 저수가와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 때문이지요. 형사처벌을 감내해야 하는데 누가 그 과에 가겠습니까. 의대 정원을 안 늘려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 수치를 빠르게 따라잡습니다. 2040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4.60명으로 OECD 평균 5.09명과 격차가 줄어들다가 2047년 OECD 평균을 넘어서요. 2047년 1000명당 한국의 평균 의사 수는 5.87명으로 OECD 평균 5.82명을 앞지릅니다.”
 
  복지부의 OECD 통계 분석을 다시 보자.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6년으로 OECD 국가(평균 80.3년) 중 상위권에 속한다. 회피가능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42명으로 OECD 국가(평균 239.1명)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회피가능사망률은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망자의 비율을 뜻한다. 낮을수록 좋은 수치다.
 
 
  “미용하지, 뭐”
 
  의사 수 부족을 논하며 주로 문제로 삼는 건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 필수과다. 그런데 이런 과들도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다. 산부인과 전문의는 7249명,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7680명이다.(2022년 기준)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의원 자체가 적지도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전국 의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산부인과는 전국에 1319곳, 소아청소년과는 2147곳이 있다. 문제는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 병원이 없다는 점인데, 이 문제는 수가, 의료 소송 문제와 관련이 깊다.
 
  의사 D씨는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후 현재는 미용 피부과를 운영하고 있다. D씨는 원래 외과 전문의를 지망해 전공의 과정을 밟았었다. 그런데 응급실 당직근무 중 CPR(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환자는 살아났는데 CPR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러자 환자는 D씨에게 소송을 걸었다. D씨는 충격을 받고 레지던트를 그만뒀다. 외과 전문의의 꿈을 버리고 가정의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도 소송거리가 될 만한 진료는 아예 안 한다. 이런 건 아주 소소한 경우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교수 E씨의 말이다.
 
  “의사들에게 사법리스크는 굉장히 크게 다가옵니다. 여기는 좁은 사회라 특히 바이탈과(필수의료과) 하는 의사들은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알아요. 누가 이런 일로 재판에 걸려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머지 의사들도 위축됩니다. 지난해에 분만 과정 중 아이에게 장애가 생겼다고 산부인과 의사가 16억 배상 판결을 받았어요. 산부인과 의사가 평생 16억을 어떻게 모읍니까? 이런 판결 한 번 받으면 파산이에요. 대학병원은 좀 나을지 몰라요. 2차 병원에서는 소송에 걸리면 모든 책임을 의사 개인에게 덮어 씌웁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필수과에서 의사들이 떠나는 거예요. 대안이 있잖아요. ‘미용하지, 뭐’ 이렇게 되는 겁니다.”
 
 
  “병원이 생기면 관료들은 좋겠죠”
 
  지역 의료 문제는 어떨까. 우 전 원장은 지역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OECD 자료(Health at a Glance 2021)를 보면, 우리나라는 도시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 지방은 2.1명입니다. 도시 대비 시골 지역 의사 밀도가 80.7%예요. OECD 평균 61.8%보다 훨씬 높습니다. 도시 지역 의사 2.5명에 시골 지역 의사 2.3명으로 시골 지역 의사 밀도가 92%인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편차가 작은 나라예요.”
 
  우 전 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지역 의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봐야 됩니다. 응급인가 비응급인가예요. 이런 예가 있어요. 보건복지부가 의료소외 지역에 예산을 줬어요. 2018년에 ‘분만취약지’로 강원도 철원군이 선정돼서 2020년에 철원병원이 문을 열었어요. 철원에서 한 해 244명이 출산을 했거든요. 그런데 철원병원에서 출산을 한 경우는 27명이었어요. 다 다른 지역에 가서 낳은 겁니다. 출산이 응급입니까? 다 예정일이 있어요. 그러니 임박하면 가고 싶은 병원으로 다 가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산모 1명에게 300만원씩 출산 지원금을 준다고 해봅시다. 200명이면 6억원이지요. 산모들은 그 돈으로 어디든 자신이 낳고 싶은 곳에 가서 산후조리원까지 이용할 수 있어요. 그게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몇십억원을 들여 무조건 병원을 지어놓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비용 대비 효과가 너무 떨어져요.”
 
  ― 지역에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요.
 
  “그 문제에 대처를 잘하고 있는 나라가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앰뷸런스를 처음 만든 나라예요. 프랑스는 응급 환자 분류를 잘하는 방법과 환자를 얼마나 빨리 후송하는지에 집중했어요. 지방에는 119 택시처럼 응급 수송 체계를 잘 갖춰놓는 게 더 낫습니다. 헬기는 기후가 안 좋으면 못 뜨거든요. 후송 시스템과 매뉴얼이 더 필요한 거죠. 시골에 병원 지어놔 봤자 의사도 없고 환자도 없어요. 평상시 병원이 운영되려면 환자가 있어야 되잖아요. 병원이 생기면 관료들은 좋겠죠. 자신들 일자리가 생기니까요. 지역 의료의 정책은 생각을 바꿔야 돼요.”
 
 
  인구 3만 명 지역에 의원 14곳
 
  의료정책연구원이 발간하는 《의료정책포럼》에 전남 함평군의 개업의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김창훈 전남 함평군 한빛의원 원장이 썼다. 제목은 〈시골에 실제로 의사가 부족할까?〉 글의 일부다.
 
  〈시골에 실제로 의사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의사와 의료기관은 포화 상태이며, 새로 개원할 자리를 찾기가 힘든 실정이다. 인구 3만2000명 규모 함평군에는 14개의 개인 의원이 있다. 원래는 17개였으나 4곳이 경영 악화로 폐업하고 1곳이 개업해 14개로 줄었다. 전문과목별로는 일반과, 가정의학과, 응급의학과, 내과, 흉부외과, 외과 등 다양한 편이며, 과거에는 산부인과와 정형외과도 있었다. 다양한 전문과목을 가진 의사가 함평군에 있지만, 건강검진을 담당하는 내과를 제외한 모든 의원이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와 일차진료, 통증, 물리치료 위주 진료를 하고 있다. 필수의료를 담당할 전문의는 있지만, 전문과목을 살리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시골에서 의료기관 경영이 힘든 이유로 ▲진료를 주 업무로 하는 보건소 운영 ▲병·의원 입지 선정 어려움 ▲고질적 구인난 ▲노인 환자 외래정액제 문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규제 ▲장거리 출퇴근 ▲군청 복지과의 규제 ▲비싼 치료는 도시에 가서 받는 환자 등을 들었다.
 
  〈의약분업 예외 지역의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에서는 약제비가 모두 무료인데, 거기에 더해 보건소에서는 이동식 진료센터라고 하는 버스에 각종 검사기기를 싣고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물리치료사 등과 동행해 매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회관에 환자들을 모아서 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함평군에는 보건소와 보건지소, 진료소 등 진료 업무를 담당하는 공공의료 시설이 30개 가까이에 달한다.
 
  함평군의 의료기관들은 지속적으로 환자 감소를 겪고 있으며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열거한 사항은 12년간 시골에서 진료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시골 지역 의료기관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시골 주민들은 왜 시골에는 특정 전문의가 없냐고 불만을 품게 되고, 의사가 부족하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지역의료원은 암 조직”
 
  지방에는 지역의료원이 있다. 기자가 접한 의사들은 모두 지역의료원이라면 고개를 내저었다. 우봉식 전 의료정책원장은 지역의료원을 암덩어리에 비유했다.
 
  “지역의료원은 암 조직이에요. 아무리 돈을 투입해도 해결 안 됩니다. 지역의료원 의사 연봉 평균이 얼만지 아세요? 2억5000만원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의사들 다 가겠다고 줄 설 것 같지요? 아무도 안 갑니다. 의사로서의 가치나 자존감이 전혀 없는 곳이에요. 국립중앙의료원이 499병상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운영하는 병상은 320병상이에요. 나머지는 놀고 있어요. 왜 그러겠어요? ‘야 적당히 해’ 노조가 반대하면 의사가 아무것도 못 해요.”
 
  우 전 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충청도의 한 지역의료원에 젊은 내과 전문의가 한 명 있었어요. 막 전문의 따고 나와서 열심히 환자를 보고 싶었던 거예요. 병원에서 배운 시술들도 해보고 싶고요. 그래서 병원에 신청을 한 겁니다. ‘내가 이러이러한 환자도 진료할 수 있으니 장비를 좀 사주십시오’ 그랬더니 노조에서 오더니 그랬답니다. ‘과장님 살살하세요. 여기는 공공의료원이에요.’ 의사가 안 꺾였어요. 세상 물정 몰랐던 거죠. ‘내가 환자를 열심히 보겠다는데 당신들이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 그러면서 또 장비 구입 요청을 했대요. 어느 날 의료원장에게 불려 갔답니다. ‘살살하세요.’ 자신을 지지해줄 줄 알았는데 의료원장마저 그런 겁니다.”
 
  ― 그래서 그 의사는 어떻게 했나요.
 
  “의료원 사직하고 개업했어요. 그러니 의사들이 지방의료원은 경력의 무덤이라고 생각하고 안 가는 겁니다. 지방의료원은 완전히 노조의 밥이에요. 의사들은 계약직이고 노조는 정규직이잖아요. 원장은 왜 그랬겠습니까. 원장이 쓰는 판공비 영수증이며 내역을 다 노조가 따져 봅니다. 원장이 말썽 없이 잘 지내려면 노조 얘기를 들어줘야 하는 거죠. 그러니 민간 병원과 비교해 중증도 치료는 5분의 1만 하는데, 입원 재원 기간은 2배죠. 요양병원화되어 있어요.”
 
 
  “복지부 공공의료과가 하라는 대로 해야”
 
 
민주당은 7월 2일 보건의료노조, 의료산업노련, 한국노총, 경실련 등과 함께 공공의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 그래도 지역의료원이 행려병자 같은 의료취약층의 진료를 담당하지 않나요?
 
  “행려병자 치료도 잘 안 해요. 민간 병원에 행려병자 진료를 하라고 돈을 주면 더 열심히 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국립중앙의료원이 서울시내 경찰서와 소방서에 ‘행려병자의 이송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에서 근무했던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국립중앙의료원은 의료의 질 향상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최 대변인의 말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은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병원이었어요. 한국전쟁 시기 스칸디나비아 3국의 의료진이 세운 병원이거든요. 제가 학교 다니던 1980년대만 해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트레이닝을 하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가질 만큼 질이 높았던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관리를 하고 난 후 서울시 중구 소재 일반 종합병원 수준으로 추락한 거예요. 저는 산부인과 개업의를 14년 한 후에 이제는 공공의료에 기여하자, 출산 정책이나 난임 관련 정책을 돕자는 마음으로 국립중앙의료원에 들어갔어요. 국립중앙의료원에 들어가는 의사들이 돈 많이 벌려고 가는 게 아니거든요. 비급여로 돈 벌어야 되는 걱정 없이 제대로 된 의료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겁니다.”
 
  ― 들어가 보니 어떻든가요.
 
  “의사가 제대로 된 진료를 하게 하지 않아요. 복지부 공공의료과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해요. 뭐라도 하려고 하면 ‘아니 그냥 두면 되는데 왜 그걸’이란 식이에요. 국민들의 세금으로 병원 직원들 월급 주려고 병원 운영하는 게 아니잖아요. 의료의 질을 관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물론 공공병원이 다른 병원보다 진료비가 더 싸고 지원도 많으니 경제적 형편이 안 좋은 환자들이 오기는 합니다. 그런 환자들이 온다고 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받는 평균 의료보다 낮은 수준의 진료를 받는 게 당연한가요? 오히려 높은 수준의 진료를 받아야죠. 국립병원으로서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장기 비전 자체가 없어요.”
 
 
  “접수하는 곳에서부터 거의 오지 말라는 분위기”
 
  서울의 한 의대 교수 E씨의 말이다.
 
  “지방의 의료원은 노조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입니다. 도덕적 해이가 너무 심해요. ‘지방에는 의사가 안 온다’ ‘4억원 줘도 안 온댄다’ 이런 곳이 다 지방의료원입니다. 의료원에 의사가 부족한 건 의사 수 절대 부족 때문이 아니에요. 의료원에서 일하려는 의사가 없는 겁니다. 그런 곳은 연봉 10억을 줘도 안 가요. 지방의료원엔 환자가 안 갑니다. 환자가 가면 노조에 속한 직원들이 돌려보내요. 환자가 오면 귀찮잖아요. 진주의료원은 접수하는 곳에서부터 거의 오지 말라는 분위기였어요. 여기는 의사 별로 없다면서 환자에게 틱틱거렸어요. 그러면 환자가 거길 왜 갑니까. 차로 15분 거리에 경상대병원이 있는데요.”
 
 
  “지자체장, 의료원 동원해 사전 선거운동”
 
 
신상진 성남시장. 사진=조준우
  ― 지방의료원의 노조가 힘이 센가요?
 
  “보건의료산업노조는 민주노총의 핵심 조직이에요. 금속노조와 함께 양대 산맥입니다. 일단 병원에서 차지하는 인원 수가 많아요. 아산병원 한 곳에서만 간호사가 1만 명이에요. 의사들도 병원 노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특히 지방의료원 같은 데서는 의사들이 못 버팁니다. 2001년 원자력병원에서는 노조가 노사협상 도중 의사를 폭행했어요. 얼굴을 때려서 코뼈가 부러졌어요. 한때 수준 높았던 원자력병원이 그렇게 된 건 노조 탓이 크다고 봅니다. 의료기기 구입에도 이권이 많이 얽혀 있고요.”
 
  ― 감사를 하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지자체장들이 사전 선거운동하고 치적 쌓기에 제일 좋은 게 의료원 동원이거든요. 공보의들 동원해 주말 방문 진료한다고 쓸데없이 약 주고 돌아다녀요. 게다가 병원이라는 게 인력 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지방에선 고용창출 효과가 커요. 그러니 적자가 엄청나도 세금으로 메꿔주면서 유지하는 거죠. 그러니 지방의료원 직원들의 목소리가 커요. ‘몇억원을 준다 해도 지방의료원엔 의사가 안 온다’고 하는데 의사들은 왜 안 가는지 내막을 알죠. 일을 못 하게 하는 걸 아니까요. 거기에 민주당은 공공의대와 지방의료원을 절대로 양보 안 할 겁니다. 좌파의 차세대 먹거리거든요.”
 
  의사 출신인 신상진 성남시장 역시 지역의료원의 문제를 지적했다.
 
  “시장이 돼서 보니 시립의료원에 진보당 세력들이 깊숙이 개입해 있는 겁니다. 시립의료원 추진위, 운영위에 포진해 설립 과정부터 운영까지 관여한 거죠.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좌파 이념단체 수장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재명 시장 시절에 그리된 겁니다.”
 
  박석운 대표는 촛불집회 설계자다. 한미FTA 반대 투쟁, 광우병, 박근혜 대통령 퇴진, 후쿠시마 처리수 등을 주제로 한 촛불집회들을 주도했다. 그런 인물이 이재명 시장 체제에서 시립병원에까지 관여했단 얘기다. 애초에 성남에 의료원을 짓는 것부터가 아주 독특한 발상이었다. 성남에는 분당서울대병원을 비롯해 종합병원이 여러 곳 있다. 그러니 성남의료원은 지난해 적자가 600억원이었다.
 
  민주당은 지난 7월 9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와 함께 ‘공공병원 지원과 역량 강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을 비롯한 12명의 민주당 의원과 1명의 조국혁신당 의원이 참석해 공공병원 지원을 약속했다.
 
  이날 민주당 김윤 의원은 지역필수의료특별법과 발의 예정인 지방의료운영법, 공공보건의료법 개정안을 소개하며 공공병원이 예비타당성 조사 제약을 받지 않고 병상 규모를 확충할 수 있도록 하고, 더 이상 공공병원이 착한 적자에 시달리지 않게 적절한 보상을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공병원을 전국에 더 짓겠단 뜻이다. 문제는 막대한 세금을 들여 공공병원을 지어놔도 국민들이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민주당은 언급하지 않는다.
 
 
  안상훈, 박민수, 장상윤
 

  정부의 의료 개혁을 두고 많은 이가 개혁 추진의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몇 명의 인물과 몇 가지 이슈가 언급된다.
 
  일단 정부의 이번 의료 개혁을 이론적으로 끌고 온 이들이 있다. 대통령실 사회수석이었다가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등이다.
 
  안상훈 의원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던 시절부터 윤 대통령에게 의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대통령 인수위에서도 사회복지문화분과 위원을 맡았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를 보면 보건복지부와 관련해 현재의 의료 개혁이 들어가 있다. 2000명 증원이라는 숫자는 없지만 말이다.
 
  박민수 차관은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이던 2012년 포괄수가제 도입을 이끈 이로 의사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포괄수가제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진찰료, 검사료, 처치료, 입원료, 약값 등의 의료 서비스 종류와 양에 상관없이 질병마다 정해진 금액만을 지불하는 일종의 정찰제 수가다. 당시 복지부는 제왕절개 수가를 초산 산모 기준 의원의 경우 43만3620원, 병원은 39만1530원으로 정했다. 반려견 제왕절개술의 수가가 50만원인 것과 비교해 ‘개만도 못한 분만 수가’로 화제가 됐다. 이후 분만실이 있는 산부인과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김윤 민주당 의원도 있긴 한데 그는 너무 자주 이랬다 저랬다 의견을 바꿔서 고려 대상이 못 된다. 2020년 전까지는 의대 증원에 반대했다가 2020년 전후로는 매년 4500명씩 30년간 증원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또 윤석열식 증원에 반대하고 있다.
 
 
  대학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설립
 
  의사들은 대학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설립 움직임에도 주목한다. 9개 대학병원이 수도권 곳곳에 분원 11개를 짓기로 했다. 만약 이들의 계획이 모두 실현된다면 2028년 이후 수도권에 최소 6600개 병상이 더 생긴다. 연세 세브란스병원은 인천 송도(800병상), 서울아산병원은 인천 청라(800병상), 서울대병원은 경기 시흥(800병상)에 대형병원을 짓는다. 가천대 길병원과 인하대병원은 각각 서울 송파와 경기 김포로 진출한다.
 
  고려대, 경희대, 아주대, 한양대 의료원도 경기도 곳곳에 분원을 낼 계획이었다. 김윤 의원은 학자 시절, 수도권 병상이 6600개 확대되면 의사는 약 3000명, 간호사는 약 8000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대형병원들에 의사를 공급해주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는 이유다.
 
  수도권에 대학병원이 11곳 더 들어서면 지방 의료는 아예 고사할 수도 있다. 지방 환자가 더욱더 수도권 대학병원으로 몰려서다. 지방 의대도 초토화될 수 있다. 교수진이 수도권으로 옮겨가면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송도와 청라에 세브란스와 아산이 들어서는 것에도 눈길이 간다.
 
  그런데 의료 개혁으로 인한 사태가 지속되면서 변화가 생기는 모양새다. 박민수 차관은 “복지부가 병원 측과 좀 더 긴밀히 협의해 가급적 분원 설립 형태로 진행되지 않도록 지도해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가천대 길병원과 고려대의 분원 설립이 좌초됐다. 지자체와 합의가 안 돼서다. 분원 설립은 지자체들이 개별적으로 결정한다. 정부 차원의 병상총량제가 필요한 이유다.
 
 
  복지부 카르텔
 
  복지부 고위 공무원들과 종합병원, 보험회사 사이의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경상도의 한 의대 교수 F씨의 말이다.
 
  “복지부 관료들이 퇴직 후 대학병원이나 대형 로펌, 제약회사, 심평원으로 많이 옮겨갑니다. 공무원으로 재직할 때는 병원 평가와 수가 산정을 담당하던 이들이 퇴직 후엔 그들이 평가하던 기관에서 월급을 받는 거죠.”
 
  공직자윤리법(제17조, 제18조)에 따라 취업심사 대상자가 퇴직 일로부터 3년 이내 취업심사 대상기관에 취업하려는 경우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를 받아야 한다. 취업심사 대상자는 재산등록 의무자인 4급 이상 및 감사와 회계직 5~7급 공무원, 유관단체 임원 이상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퇴직 공무원 30여 명이 대학병원과 공공기관, 로펌 및 유관단체에 재취업했다. 복지부 장관정책보좌관은 법무법인 광장으로 옮겨갔다.
 
  2022년 질병관리청장을 역임한 차관급 공무원은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취업 승인을 받았고, 2023년 보건주사보는 서울아산병원으로, 보건연구관은 강북삼성병원으로, 전문임기제 공무원은 중앙보훈병원으로 취업 가능 결과를 통보받았다. 양병국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대웅바이오제약 대표로 옮겨갔다. 주목할 점은 대학은 취업심사 대상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교수로 취업하면 재취업 사실이 감지가 잘 안 된다.
 
  한동안 가천대 길병원과 차병원그룹은 복지부 고위 공무원들의 단골 재취업처였다. 가천대 교수, 차의과대학 교수로 취업하면 취업심사를 안 받아도 된다. 지난 2018년 가천대 길병원은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되기 위해 보건복지부 고위 간부에게 3억5000만원어치 뇌물을 제공했다. 퇴직 후 길병원으로 옮겨간 전직 보건복지부 고위 공무원들이 로비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 알려졌다. 이 관료는 구속됐다.
 
 
  “환자 버리고 간 의사가 누가 있어요?”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
  차병원그룹 역시 관료 출신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차병원그룹에는 전병률 전 질병관리본부장,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문창진 전 보건복지부 차관, 엄영진 전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 이신호 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본부장, 문병우 전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 이동모 전 복지부 의정국장 등이 차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거나 하고 있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공무원들에 대해 착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국민들은 공무원이라고 하면 박정희 시대의 공무원들을 생각합니다. 똑똑한 엘리트 공무원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죠.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관료들도 자신들의 퇴직 후와 노후(老後)를 위해 눈치를 보지요. 이번 의대 증원 사태 뒤에도 이권 카르텔이 존재할 수 있어요. 대통령이 선의(善意)를 갖고 있어도, 카르텔에 포획되어 속고 있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실이 균형적으로 정보를 접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는 “‘의료계는 단일한 의견을 가져오라’는 정부의 말 자체가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시기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의료계란 말은 굉장히 모호한 용어입니다. 정부가 근로자 정책을 논의한다면서 한국노총, 민주노총, 경영자 총연합회에 대고 단일한 의견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잖아요. 통상적으로 의료계를 대표하는 곳이라면 의사협회, 의학회, 개원의협의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같은 곳이에요. 대한병원협회 같은 곳은 사용자 단체거든요. 병원협회도 사안에 목소리를 낼 수는 있겠죠. 그러면 그걸 조정해야 하는 게 정부의 책임인데 그걸 하지 않고, ‘단일한 의견을 만들어와라. 단일한 의견이 없으면 입 다물고 있어라’ 이런 식이거든요.”
 
  9월 12일 한덕수 총리는 “전 세계 어디에도 중증 환자를 떠나는 의료 파업은 없다. 의료대란 책임은 전공의에게 있다”고 말했다. 일반 국민들도 전공의들의 사직을 두고 한 총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의대 교수들과 의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박형욱 교수의 말이다. “환자를 버리고 간 의사가 누가 있어요? 지금 의사들 다 진료하고 있어요. 개원가부터 대학병원까지 진료를 안 하고 있는 곳이 없습니다. 전공의들만 사직을 한 거예요.”
 
 
  “의정 갈등 9번 모두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 발표”
 
 
노환규 전 의협회장.
  노환규 전 의협회장은 “의사들이 정부를 이기려고 하는 것 같냐”고 말했다. 노 전 회장의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했어요. ‘지난 아홉 번의 의정 갈등에서 의사들이 다 이겼다’ 저는 이 말에 가장 화가 났어요. 아홉 번의 의정 갈등이 있었던 게 맞는데, 아홉 번 다 의사들과 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한 건이었거든요. 의사들이 저지에 성공한 적이 딱 2번 있었어요. 2014년과 2020년이죠. 이게 의사들이 이긴 겁니까? 겨우 제자리로 돌린 거죠. 그동안 의사들은 협박받고 매출 손실을 봤어요. 나머지 일곱 번은 전부 정부 뜻대로 됐어요. 의약분업 도입을 보세요. 윤 대통령이 현실 인식을 잘못하고 있어요.”
 
  의대 증원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기자가 취재 도중 만난 이들이 모두 동의하는 게 한 가지 있다. 현재 한국 의료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저비용 고품질의 우수한 의료 수준이라는 점이었다.
 
  OECD 통계를 보면 영아사망률, 심근경색·뇌졸중·위암 사망률에서 우리나라는 OECD 평균을 크게 밑돈다. 예를 들면 백내장 같은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 대기 시간 통계를 낼 때 한국의 경우는 아예 고려하지도 않는다. 한국은 수술 대기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의료 현장에 필요한 건 ‘나쁜 반개혁 집단’을 지목하는 개혁이 아닌, 개선이 아닐까. 참새는 수입할 수 있지만 의사는 수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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