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면 고교 졸업 30주년이다. 1983년 어느 추운 겨울에 검은색 답답한 교복을 벗어 성인이 된다는 희망으로 졸업식 한지 벌써 30년이다.
육십갑자가 돌아오는 환갑이나 졸업 혹은 입학 몇십주년, 유명인들의 서거 혹은 위인의 탄생 몇 백년, 국가적 독립 몇 백주년기념등 기념하기 좋은 것들은 딱 떨어지는 숫자일 경우가 많다. 그러니 그냥 널길 수도 없는것이 인지상정이다. 선대분들이 해오던 것을 세대차례가 되어 주인공인 우리가 직접 개최한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그런 분위기를 등에 엎고 한바탕 으쌰으쌰 어깨동무하면서 체온을 느끼며 애국심, 애교심, 애향심등을 매개로 혼연일체가 되는 흐뭇한 과정의 연속이 삶이라 생각한다. 일부는 이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짓이라 폄하하고 자신의 길만 가는 시니컬한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작은 도움이라도 서로 나눠주면서 노년의 중요한 보물인 친구나 동료를 아끼는 마음에 바쁜 와중에도 합심하여 큰일을 이뤄낸다.
( 2002년도에 개봉한 20주년 타임켚슐속의 각자의 20년후 자화상 내용들 )
( 당시 김재규 교장선생님께서 친히 개봉할 년도까지 써 주셨다. )
이번에도 우리 여의도 고교 8회는 졸업 30주년 행사를 위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한때 20주년을 앞두고 과열 현상까지 보이면서 신나게
모였었던 것이 10여년 전이다. 내가 2001년도 한반도 끝자락의 여수 애양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컴퓨터 인터넷으로 여의도 동문 홈페이지
통해 만나는 친구들의 소식은 정말 큰 기쁨이었다. 여수에서 올린 글을 스페인에서 보고 바로 답장을 주면 미국에서 보던 친구가 또 댓글다는 참 신기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환자 진료를 계속 보면서도 중간 중간 인터넷을 하니 힘든줄도 모르게 시간이 그냥 지나가곤했다. ( 아마 원장님 보시기엔 참 밉상의 젊은 의사였을 것이다.) 그동안 소문없이 성공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산전 수전 다 겪은 친구들도 있었고 벌써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의 소식도 있어 지나온 많은 세월을 느끼게 했다. 간혹 번개 모임을 서울에서 하거나 등산, 골프등 취미활동을 같이 하면서 더욱 친해지곤했다. 동문이라는 것이 뭔지 학창 시절에 같이 대화한번 해보지도 않은 사이도 그냥 동문이라는 울타리 하나로 바로 편하게 말 놓고 대화할 수 있었다. 솔직히 남녀 공학이라는 특수성이 더욱 모임을 활성화 시킨것도 있을 것이다. 중년이 되어 여동의 말에 감히 거부할 남동은 없을테니까말이다. 요즘같은 여성 상위 시대에 말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당시 여의도에는 인물들이 참 많았다.
( 30주년 준비위원들과 얼굴 환한 회장님 )
각자의 기억에 있던 수많은 사연들이 퍼즐게임처럼 하나씩 맞춰가는 대화속에서 추억을 공유한 동창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남녀공학의 특성상 재미나는 일들도 많이 일어났다. 한참 뜨겁게 달아오르다가도 간혹 인간 본성의 질투와 시샘으로 분위기가 확 반전되기도 하고 애틋한 첫 사랑의 기억들로 각자의 마음을 은연중에 따뜻하게 해주곤 했다. 과거 기억의 어여쁜 여학생의 변한 모습에 허탈해 하면서도 똑같이 변했을 자신을 생각하는 자숙의 기회가 되었고 지나간 세월의 흐름을 거부하며 건강관리를 잘하고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좋은 자극을 받기도 했다. ‘너 하나도 안 변했다’ 라는 시작 멘트는 제3자가 보기엔 우습겠지만 우리에겐 그만큼 활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모든 것이 그렇듯 점점 식어갔으며 최근 몇년간은 자취조차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일부는 그런 상황을 걱정했지만 일부는 솔직히 모든 일에는 굴곡이 있는 법이니 좀 쉬어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싶어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몇몇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도 다 지난 10년전 졸업 20주년 행사때 같이 어울려 준비하면서 10년뒤의 30주년때 개봉할 타임켚슐을 만들었었는데 이렇게 덧없이 먼저 떠날 줄 어느 누가 알았겠나? 물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있을 것이겠지. 다 운명이다. Carpe Diem !
( 이번에 중간 개봉될 타임켚슐. 교장선생님께서 2022년으로 해 놓으셨다.)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고 흘러 30주년이 올해로 다가왔다. 조용하던 물결은 조금씩 파도로 일어나기 시작하다가 쓰나미(^_^) 준비를 위한 모임이 몇 일 전에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잊혀진채 구석에 먼지 쌓여있었을 기억의 한 토막들이 대화속에서 살아나는 마술이 이어지는 동문 모임이었다. 지금 이 나이 까지 각자가 건실하게 성장했으니 다행이고 죄 지은것 없어 숨을 필요 없으니 더욱 다행이고 무엇보다 미래를 같이 계획할 수 있는 건강이 있으니 더더욱 감사할 일이다. 30주년 행사를 위한 회장으로 다방면으로 우수하고 인기 최고의 친구가 선출되고 또한 많은 이들이 참모로서 돕게 될것이니 또 한번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노력없이도 소리없이 다가온 행복한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 수준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보자 한다. 유머를 잃지 말고 계속 눈을 뜨고 어느정도 땀은 흘려보자.
그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많은 이유중 중요한 하나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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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 해 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 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고운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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