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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페이스 메이커



아침 조조 영화를 일요일에 보게 되었다. 평소 심야 영화를 보게되는 나는 ( 아이들 학원 끝나고 10시 이후 것으로) 간만에 늦잠 잘 수 있는

일요일 아침에 아버지와 영화관을 가게 되었다. 영화 <페이스 메이커>는 평소 보고 싶었던 것이라 6시 반에 벌떡 일어나 아침을 집에서 먹어야한다는 아버지 뜻대로 어머니가 해주신 식사로 배를 꽉 채우고 차를 타고 가니 영화 시작 전 40분이다. 너무 일찍 도착했지만 간만에 온

아침 정막의 메가박스를 둘러보는데 항상 느끼던 밤의 군중이 없어 색다르다. 현저하게 걸음이 늦어지시는 아버지를 뵈면서 과거 골프 치시고 오셔서도 힘이 넘치던 모습이 안타깝게 오버랩된다. 영화 관람의 묘미인 음료와 팝콘을 제일 작은 것으로 사서 들어갔다. 유독 등산 복과 배낭을 매고 오신 단체가 많았는데 참 희안한 스케쥴이다. 이 시간에 그냥 산에 올라가면 더 좋은데 영화보고 올라가는 것은 저녁 시간에 맞추기 위함인지... 아무튼 재미있는 현상이다. 
                                                          ( 일본 전철 계단은 용도 따라 구분 되어있다.)

                                                                  


‘페이스 메이커’는 말 그대로 마라톤 경기 주인공을 위해 질주 속도를 조절해주면서 중간에 빠지는 도우미 경기자 이다. 처음 이런 제목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 것은 나 뿐만 아닐 것이기에 이런 조조에도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다. 세상에는 ‘페이스 메이커’가 참 많다.

아니 오히려 나 자신 보다 남을 위해 보조역할로 살아간다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 참 많다는것이 옳을 것이다. 심지어 자식을 위해서 희생만 하고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부모도 많다. 아이들이 살아오면서 그 많은 기쁨을 선물해 줬는데도 말이다. 1%를 위해 99%가 희생한다고들 떠들던 사건도 있었지만 세상은 다 상대적이다. 그 피해자라고 떠들어대는 99%속에도 1%의 상위 계층이 있고 이미 부르죠아라고 낙인 찍힌 1% 안에서도 그들을 선망하는 하위 99%에 해당되는 이들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이렇든 비교는 역시 부질 없는짓이다. 오히려 의도를 갖은 일부 불순세력에 이용되는 것 뿐이다.

 

                                                                      ( 모든것은 다 각자의 쓰임이 있다 )

 

모든 감정은 그 자체보다는 바라보는 각자 마음의 상(相)에 따라 다르다는것이라했다. 세상에 모든 이들이 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페이스 메이커‘이자 모든 이들이 나를 위한 '페이스메이커'이기도하다. 서로를 도우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사는 것이지 누구를 위해 희생한는 삶은

없다. 자칭 희생자라 떠드는 이들은 혜택 받은것은 생각전혀 안하는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닐까? 물론 억울한 일들이 있겠지만 소리없이 울고있는 평범한 시민들도 그 못지 않게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고 무조건 철탑에 올라 떠들면 생각없는 정치인들이 기름붓고 헛된 영웅심의 여론재판을 지나 결국 우야무야 되는 한심한 반복은 이제 없어질만한 선진국이 되지 않았나 싶다.

각자 자신의 쓰임이 있는 법이다. 그것이 현 시점에 허락된 각자의 운명이다. 행복을 원하면 지금의 마음을 넓혀서 살고 더 큰 욕망을 원한다면 지속적으로 핏발세워 눈을 치켜뜨며 살다 떠나는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행복과 욕망을 똑같이 소유할 수는 없다.

내가 부족함이 있는가? 분명히 있다. 아주 많다. 그럼 내게 풍족함이 없는가? 분명히 있다. 그것도 역시 아주 많다. 살아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큰 복이다. 그럼 내 위치가 부족함인가 풍족함인가? 아니면 딱 중간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것들은 다 그저 부질없는 분별일 뿐이다. 허상의 비교일 뿐이다. 그냥 오늘이 있고 내가 있고 지금의 사랑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간혹 분노가 지나가는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은 스쳐가는 신기루일뿐이다. 그렇게 사는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내 안의 것이 바뀌어야 행복해진다.

                                                                           

                                                                        ( 18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 )

 

 

만족과 욕망의 차이를 느껴야한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으며 역지사지의 심정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 그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반복 노력을 하는 발정기 망아지 같은 마음에대한 무던한 수행이다. 오늘도 부족한 나를 달래면서 자기 암시속에서 노력하며 하루를 수행해보자. 난 세상에 대한 의무보다 권한을 더 누리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니까.
적어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한 말이다.


만일
 
만일 네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 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수 있다면
 
한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너 자신의 덕을 지킬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루디야드 키플링 (류시화 잠언집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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