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살이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다. 매일의 모든 경험이 쌓여 하나의 작품이되고 어느 시기가 되면 도서관에 반납하고 떠나게 된다.
인상화를 거쳐서 추상화가 대접 받듯이 어떤 인생성향이 선호되는지는 시대 따라 다르니 그것은 각자의 운명에 맡길 뿐이다. 시대가 받아드릴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천재는 지난 역사의 연륜이 (반복되는 업의 파장이) 만드는 법이지만 영웅은 그 당대의 낙옆 태풍이 만든다. 시대의 대 운이자 민심의 장대한 흐름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가?
( 제 2차 세계 대전 일본 잠수함 가미가제 특공대원들 9명의 유서 )
득도한 고승마저도 소고삐를 잡아 끌듯이 항상 긴장하며 어디로 튈지 모를 마음을 가둔다하니 평범한 사람은 오죽 하겠는가?
열반하시기 전에 가장 중요한것 한가지 말씀해 달라는 제자들의 청에 부처님의 마지막 한마디는 ‘욕정에 대한 경고‘였다 한다.
어떤 형이상학적인 거창한 유언이 아니었다. 위인으로 추앙받는 간디도 회고록에 그 방면의 많은 고민을 토로했고 천재 과학자 아인쉬타인
역시 개인 가정사에 여러 추문이 있는것 보면 마음의 흔들림은 절대 소멸 시킬 수 없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인가보다. 그러기에 불태워 없애려 공허한 노력을 하느니 오히려 곱게 가꾸는 것이 더 가능하고 가치있는 것이다. 본능을 승화시킨다고 하면 너무 속보이는 것일까?
예술에 대한 사랑, 육체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은 삶의 활력소다.
물론 사랑에도 아가페니 에로스니 플라토닉이니 하는 구분들이 있다하겠지만 내 보기엔 다 같다.
평생 마음에 담고 곱게 가꿀 각오가 되어있으면 말이다.
예술을 단순히 재태크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들이나 아름다운 이성을 무식하게 탐하는 이들이나 자식을 패자부활용으로 다루는 부모들
사이의 사랑이란 이름의 가치가 무슨 차이가 있겠나?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책임지기를 각오한다면 모두다 아름다운것이다.
모든 사랑이 다 형이상학적이길 바라지는 말자. 그런 것은 신에게만 있다. 오만방자하게 미천한 인간이 부질없는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추구함에 목적을 둬야지 완성에 두면 너무나 허탈하지 않을까?
사람에게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악재가 우리 주위에 당연히 많다. 그것이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이라 착각하지 말자.
사람은 살아가는 그 자체가 죄의 온상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무수한 죄를 지을 뿐이고 또 겸손하게 죄의 용서를 꾸준히 갈망할 뿐이다. 다 운명이다.
사실 모든 분별에서 ( 버렸느니 가졌느니, 선하니 악하니, 아름다우니 추하니 하는 일체의 분별 )
벗어나서 감정을 제 3자 입장에서 보도록 하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라 했다.
더위나 추위는 다 분별에서 생기는 것이니 더우면 더위 자체가 되고 추우면 추위 자체가 되라 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진실된 신앙으로 사랑을 배푸는 많은 기독인들이 있고 철학적 개념에 가까운 자기 성찰의 수행으로 부처님에
도달하려는 신도들 혹은 하루 5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무슬림들 다 같은 신앙인이다. 먼 바다 건너 추구하는 삶의 최종 목적지를 도달하기 위해 도움받는 운송 수단인 배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도착하면 배(종교)는 의미가 없다고 하지...
( 꽃지 해수욕장 일몰. 전인준님 작품 )
하긴 결혼만 그렇겠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다 수행이다.
아픈 사람 진료 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애쓰는 한순간 한순간들이 다 나 자신을 갈고 닦으려는 수행의 일부일것이다. 안그렇다면 정말 의미없는 반복일 뿐이며 덧없는 종착역을 향하는 나날들이 될 것이다.
매 순간순간에 의미를 두고 가능한 기억하려 애쓰면서 살아가고 싶다. 댓가없이 받은 사랑에 감사하고 운명적으로 얻은 복에 감동하면서 가능한 나를 그 수준에 맞는 향기나는 사람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수많은 단점들을 솔직히 인정하고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가고 싶다. 그래도 적당한 (나이에 맞는) 목표를 추구하면서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나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값진 보물들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 그런것들이 다 내 삶의 진짜 이유들이니까 말이다.
항상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내 사랑하는 이들을 존경하면서 아끼고 나 자신 역시 그에 어울리는 존재로 가꾸어가야겠다.
아무리 옆에서 따스하게 해 준다 해도 인생은 어짜피 나 혼자만의 과정이니까.
결혼의 7 고개 ( 일반 책 참고 )
첫째 고개 ; 환상의 고개로 결혼후 3년쯤 모든 어려움을 비몽사몽간에 넘어가는 눈물고개
둘째 고개 ; 타협의 고개로 결혼후 3~7년째 드러난 단점을 타협하며 위험한 권태기고개
셋째 고개 ; 투쟁의 고개로 혈혼후 7~15년째 진짜 상대를 알고난 다음 투쟁하며 포용함
넷째 고개 ; 결단의 고개로 결혼후 15~20년째 현실을 인정하고 보조를 맞춰가는 고개
다섯째고개; 따로의 고개로 정신적으로는 별거나 이혼한 것 처럼 따로따로 자기의 삶을 체념하며 각자 넘는 아리랑고개
여섯째 고개 ; 통일의 고개로 있었던 모든 것을 서로 덮고 새로운 헌신과 책임을 가지고 상대방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며 사는 내리막 고개
일곱째 고개 ; 생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완숙의 자유 고개로 노력하지 않아도 눈치로 이해하며 행복을 나누는 고개
사실 어려운 4 단계를 무사히 건너면 5~7 단계는 결혼 후 시기가 각자 너무나 다양할 것 같아 생략한다.
사람마다 3~4 단계를 반복하거나 1단계에서만 짧게 반복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한번에 7단계 까지 쭈~ㄱ 가거나 막판에 5~6단계에서 정지되어 기 꺾여서 살아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경우는 일본에서 유행한다는 황혼이혼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기사회 되고있다. 이것은 여성 권익이 신장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여성운동가들이 말하듯이 남성 주의 사상의 필연적인 병폐과정이라고 항변할 것이 아니라 단순히 노년 여성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몰염치한 여성이면 모를까 지각있는 여성들에게도 전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어떤 경우가 행복하고 용감한 삶일까? 그래도 너무나 정열적인 위인이(?) 아니라면 어짜피 복잡한 삶이고 혼자인데 한번에 끝내는 것이 좋지않을까 싶다.
각자 할 말은 많겠지만 결국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과정이자 단계일 뿐이니 말이다.
나도 고개 넘길 좋아하는 산악인이니 잘 넘어가기라 믿는다.
내 배낭 속에 귀하고 사랑스런 보배들을 소중하게 영원히 간직하면서 말이다. ^_^